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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Nov 04. 2018

스웨덴에서 느끼는 고독

스톡홀름살이 5

스톡홀름으로 오게 된 것은 온전히 이직 때문이다. 단 한 명의 친구도 없고 인터뷰를 보러 오기 전에는 올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라다. 그래서 기대했던 변화는 대부분 회사에 한정된 것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른 언어로 일하고 회사 문화를 배우고 커리어를 쌓는 것, 그러면 또 다른 기회가 내 앞에 보이리라. 예상한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현실은 예상보다 험난했다기보다는 달랐다고 말해야할 것 같다. 회사는 물론 이전과 많이 다르지만 모든 것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일상에서 더 큰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만나거나 연락할 사람이 없는 '혼자'로 지내는 다름은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런던을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웨덴이 사람을 극단적이게 하는 것 같다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이방인으로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극단은 혼자됨이다. 핸드폰으로 받는 연락도 없고 시차 때문에 한국과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다. 혼자 있는 시간 자체가 엄청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도 문득 혼자임을 느낀다.


스웨덴은 나를 극단적으로 혼자 있게 한다.



혼자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

만날 사람이 없고 모든 시간을 혼자서 채우는 것. 혼자서 한국의 어느 도시고 유럽의 어느 나라고 잘 다녔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는 순간 자유보다는 공허함을 크게 느꼈다. 외국에서 일하면서 사는 것은 꽤 멋진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히 이방인이 느껴야하는 외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상당히 잘 하고 이런 성격이 독립심을 키워서 혼자 스웨덴까지 오게 된 것을 알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끔 영화도 혼자 봤고 혼자 여행도 잘 다녔다. 모든 사람들이 짝꿍을 데리고 오는 곳이라도 내가 가고싶다면 혼자라도 가는 것이 바로 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든 순간 혼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을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친구를 만났고 가족들과 모여 밥을 먹었다.

그러나 종종 만나던 사람들이 없어지니 나도 모르게 외롭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외롭다는 감정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마음이 허전하고 우울해진다. 회사 사람들이 퇴근하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부럽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나만 혼자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작아지고 자신없어진 것 같다. 내가 아무와도 가까운 관계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은 난생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주변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가 들리면 고독감은 증폭된다.

얼마전에 회사 동료들과 여성들을 위한 코딩 행사를 열었다. 같이 하는 동료들도 모두 여성이었는데 주로 준비한 사람들 중 나만 (그들의 입장에서) 외국 사람이었고 참여한 여성들도 거의 대부분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행사는 영어로 진행해서 문제가 없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일부가 남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자 나는 낄 수 없는 스웨덴어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눈치껏 오늘 재미있었다, 많이 배웠다, 도와줘서 고맙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언어가 바뀌자 나는 갑자기 소수였다. 내가 조금만 물러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이에 의도치않게 소외될 것 같았다.


이 상황은 회사에서도 심심치않게 경험한다. 스웨덴 사람들과 대화하던 중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그들이 스웨덴어로 말하는 사이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갑자기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 스웨덴어로 말하는 동료들을 우연히 쳐다봤다가 오히려 'Sorry' 라는 대답을 받았을 때.

처음에 왔을때는 흠칫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동료들이 나를 신경써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스웨덴어로 대화한다면 나와 관련없는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넘긴다. 하지만 의연하게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가 나를 신경써주어서 스웨덴어로 대화한 것을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면, 오히려 이런 순간에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외롭다는 혼자다와 동치가 아니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 생기고 스웨덴어를 알면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외로움은 온전히 감정적인 문제이며 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덜 외로울 수 있겠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친구나 가족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여기서 만나게 될 친구들과는 어릴 때 부터 만나온 한국 친구들과 전혀 다른 관계를 만들 것이다. 한국에서의 나와 스웨덴에서의 내가 다르고, 사람들이 나를 보아온 시간이 다르고, 언어와 대화 주제가 다르므로. 새로운 친구들은 내 마음에서 새로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일 뿐 어느 누구도 무엇도 헛헛한 구멍을 딱 맞게 채울 수 없다.


요즘 도움을 받고 있는 방법은 생활의 루틴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나는 규칙적인 행동 패턴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하고 이 안에서 작은 명상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시간에 운동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집안일을 하는 것. 출근하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퇴근하면 마트에서 조금씩 먹을것을 사는 것도 나만의 사소한 루틴 중 하나다. 몸을 움직이면서 마음을 비우고 현재에 집중하면 신기하게 머릿속에 심각했던 고민들이 작아지는 것 같다. 


사람들과 같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듯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고독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고독한 시간을 잘 보내면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보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으로. 스웨덴으로 온 목적은 커리어였는데, 놀랍게도 인생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음을 새로이 배우고 있는 것 같다.



31st October 2018

#개발자 #해외취업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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