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살이 10
이틀 뒤면 스웨덴에 온 지 딱 1년째 되는 날이다.
1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돌아올 때를 정하지 않고 출국하던 날. 꿈이 현실로 바뀌기 바로 직전, 누구도 말해준 적 없는 꿈의 사생활 같은 진실을 직접 몸을 던져 보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밍밍했다. 30대의 초입에 떠나는 새로운 모험이 좀 더 감정적이어도 괜찮았을 텐데, 대놓고 기쁘거나 슬프다는 느낌이 없었고 오히려 나 지금 기뻐야 하나? 아닌가 울어야 하나?라고 물어보고 있었다. 거의 10년 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갈 때 마지막으로 엄마와 인사하며 눈물이 팍 터지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떠나기 위한 준비와 반복되는 인사에 지쳐있었나 아니면 그 사이에 밍밍한 어른이 되어버렸나. 분명 원해서 떠나는 길이었고 원하던 것이 현실이 된 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어서 가라고,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등을 떠밀어서 그 말에 굴복하며 어쩔 수 없이 가는 것 같았다.
사람만 쏙 들어다 다른 땅으로 갖다 놓듯 끝나는 이사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동네에 정을 붙이고 살 때 발바닥에 접착제를 묻히고 걸어 다니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이사를 하면 딛고 섰던 주변의 땅과 흙, 위에 지어 올린 공간들이 발바닥에 붙어 같이 들어 올려질 것만 같다. 하지만 접착제가 붙은 채로 억지로 뜯어내려면 어느 정도 상처, 몸과 마음이 좀 아프거나 땅 위에 올려진 무언가가 부서지는 일들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내가 아픔을 감수하며 한국에서 묻혀온 발 밑의 땅은 어느 정도일까. 1년 동안 그마저 털어내고 살갗에 딱 붙어버린 그 흙과 냄새는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원래 맹숭맹숭한 사람이고 사는 것도 딱 이렇다. 여기서 나를 가까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하는데 아마 어디서 살아도 지금과 비슷할 것 같다. 내 인생에는 절대적인 호불호는 흔치 않다. 고향이 당연히 좋아도 우리나라가 훨씬 좋은지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스웨덴을 영업하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지도 않다.
하지만 가끔 목 아래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그 흙 때문인 것 같다. 가족들의 얼굴, 명절의 식탁, 엄마 산소, 그 앞에 심은 감나무, 친구들, 친구들의 새로운 가족들, 헤어진 사람, 그와 같이 듣던 노래, 매일 출근하던 길, 회사 1층 커피 향기, 오피스텔 밖 소음 같은 것들이 계속 까끌까끌하게 만져진다.
내 기억 속의 스웨덴 첫날은 아름다운 여름이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아주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여름에는 휴가 간 사람들이 많아서 회사가 조용한데, 이러한 시기에 내 입사 첫 날을 확정하고 자기도 여름휴가에 가버린 매니저의 과감한 결정(!)이 고마워진다. 사실 여기는 겨울이 훨씬 길어서 어두운 겨울이 강한 인상을 주기 쉽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게 스웨덴은 여름이고, 여름마다 이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작년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은 스웨덴도 피하지 못했는데 그 뜨거움 속에서 평생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 하늘과 물은 고르고 고른 가장 아름다운 파란색이었고 햇빛은 얼음을 깨서 만든 것처럼 눈이 부셨다. 사람들의 짧은 옷 밖으로 팔다리를 감싼 타투가 또 다른 옷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 걷더라도 시선 끝에는 잔디가 걸리고 공원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여름을 하루도 허투루 쓰지 말라는 듯 지지 않는 해.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백야를 경험하며 햇빛 아래서 잠들었다 깨어났고, 햇빛을 잔뜩 받아 살짝 들뜬 기분 그대로 스웨덴에서 첫 두어 달을 보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1년'이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뭉뚱그리기 아까울 정도로 제각각 살아 숨 쉬는 날들에 내가 한 것들이 적어보니 이렇게나 많다.
* 다른 나라의 총 8군데 도시를 갔다.
* 오스트리아에 살아서 만나지 못하던 친구를 만났다.
* 스키를 배웠고 수영 수업을 등록했다.
* 샤랏 조이스의 아쉬탕가 워크숍에 갔다.
* 한국에서 못 하던 마리차사나D, 머리서기를 혼자 할 수 있다. 우파비스타 코나사나까지 진도를 받았고 드롭백을 시작했다.
* 요가원에서 휴일에 만나 같이 커피를 마시는 친구가 생겼다.
* 같이 살던 한국 친구의 학교 과정이 끝났고 공항으로 배웅을 나갔다.
* 관심 있는 분야의 영어 팟캐스트를 듣는다.
* 회사의 6개월 수습 기간이 끝났다.
* 집으로 팀 사람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했다.
* 우리 팀에 세 명이 나갔고, 두 명이 새로 왔고, 매니저가 출산 휴가를 갔다. 임시 매니저가 왔다.
* 인턴이 왔고 멘토링을 시작했다.
* Scala days 10주년 컨퍼런스에 가서 마틴 오더스키를 만났다.
* 작은 발표를 했다.
* 블로그에 30개의 글을 올렸다.
* 토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완성도는 90%. React를 배웠다.
* 블로그를 통해 스웨덴에서 친구가 생겼다.
* 몬스테라, 산세베리아, 선인장을 키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분을 나누고 영양제를 사봤다.
* 뜨개질로 양말과 테이블 덮개를 만들었다. 지금은 코바느질로 강아지 인형을 만들고 있다.
몸으로 부딪혀 알아낸 '꿈의 진실'은 해외에서 일하는 쿨한 개발자가 되고 그런 것이 전혀 아니더라. 한국 회사와 좀 다르게 일하고 영어를 많이 배웠을지언정, 커리어 때문에 시작된 이 모험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재정립하면서 나의 주변을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과정인 것 같다. 홍수가 쓸고 간 자리에 새로 집을 짓듯, 내가 서있는 땅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질문하며 1층부터 새로 지어 올린다. 너한테 중요한 것들을 말해봐. 꼭 있어야 되는 것들을 골라봐.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 맛있는 것을 많이 사 먹는 게 좋아? 어떤 옷을 좋아해? 물이 좋아 산이 좋아? 외로움을 많이 타? 연애를 해야 해? 일이 얼마나 중요해? 언제 스트레스를 느껴?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
대부분 예상 답변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간간히 예상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이 나는 좋았다. 생각했던 만큼 미식을 즐기지 않고, 개봉 영화는 안 보고 지나가도 괜찮고, 무난하고 비싼 아이템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고, 일보다 중요한 것이 생길 수도 있다는 예외들을 배웠다. 내 취향이 섬세하게 바뀌는 순간을 눈치채는 것이 즐거웠다.
*
여기까지가 1년 요약본이다.
나는 한국인 30대 여성의 삶도 다양할 수 있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블로그에 글을 쓴다. 평범하고 아주 맹맹하고 대부분의 일에 아마추어지만 천천히 나만의 서사를 쓰고 있다. 나처럼 자신만의 서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내 아마추어 같은 이야기가 닿는다면 기쁘겠다.
8th July 2019
#스웨덴 #개발자 #해외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