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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Oct 29. 2018

한국 회사를 욕하는 가벼움

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8

자기도 모르게 어떤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영어를 쓰다 보니 자연적으로 말수가 줄어들고(...)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많이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적당히 할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뭐 언어의 한계 때문에 반강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영어로 말하는 나를 관찰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 회사는 어때'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100%의 확률로 '한국 회사는 너무 힘들었다' 라고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나의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너무 가볍게 한국 회사를 욕하고 있는건 아닐까?



나의 가벼움


객관성을 잃어버렸을 때

시간이 지나면 나쁜 기억은 없어지고 좋은 감정만 남는다고들 하는데 회사에 관해서는 반대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직 3개월이 넘은 사고 흐름을 보면 확실히 지금 다니는 회사를 (어쩌면 너무 가볍게)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일을 전 회사(A)와 현 회사(B)가 다른 방식으로 할 때 B회사의 방식이 더 좋다고 너무 빨리 인정하는 나를 가끔 발견한다. 하지만 좋고 나쁨은 적당한 척도가 아니다. 두 회사 모두 상황에 따라 자기들만의 방법을 최적화한 것일 뿐. B회사의 방법이 더 좋아보이는 이유는 내가 B회사에 있기 때문인 것 아닐까?


내 경험을 예로 들어, A회사는 클라우드 환경이 아니었고 개발 스택 선택부터 설치와 운영 모두 직접 했다. B회사는 클라우드 환경을 사용하며 컴퓨팅 엔진 뿐만 아니라 DB, 메시지 큐, 데이터 분산 처리 플랫폼 전부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한다. 이런 차이에 대해 이직하고 나서 한동안 ‘개발자는 서비스에만 신경쓰면 되니까 훨씬 깔끔할 것이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A회사에서는 각종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해결하고 버전을 올리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돈 내고 서비스를 쓴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A회사에서 삽질하던 만큼의 시간을 그들의 제품을 이해하고 고객문의를 쓰고 답변을 기다리는데에 소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직접 설치해서 운영하는 경험은 나에게 아주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cloud-driven 이 좋다/나쁘다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A회사의 좋았던 점과 B회사의 나쁜 점을 정확히 볼 수 있을 때 몇 년의 경험들이 하나로 이어져 통찰력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나쁘다를 최악이다라고 말할 때

스웨덴에서 한국의 업무 환경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하는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회사들의 긴 노동 시간은 여기에서도 꽤 유명한 것 같다. 동료가 관련 기사를 읽는 것을 본 적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주 40시간 근무제도를 시작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보았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나는 징징대기 너무 쉬운 환경에 있다. 한국에서 야근하고 주말에 일하는 것이 너무 너무 힘들었다고 불평 불만 하는 것은 정말 쉽다. 왜냐하면 지금은 나도, 내 주위의 아무도 그렇게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7일을 출근하거나 새벽까지 회사에 남아있는 날이 유럽인 동료들의 인생에 과연 몇 번이나 일어났을까. '너 정말 힘들었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4년 넘게 매일같이 새벽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한 것도 아니면서 과장하는 것은 아닌지.




변명을 해보자면 객관적인 시각을 잃을 이유는 많다. 이직을 준비하고 인터뷰를 보고 이사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감정적인 소모를 생각한다면 이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길 바랬다. 아무리 몇 년 동안 원하던 해외 이직이고 회사에서 이주 도움을 주더라도, 진짜 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큰 결정이었다. 나는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고 실패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실패가 아니길 바라는 나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현실을 바라볼 때 나도 모르게 좋은 것만 생각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아니다.

스웨덴에 오기 전에 스웨덴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으면서 찬양에 가까운 내용이 너무 많아서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가 스웨덴에 얼마나 만족하고 책을 쓰던 당시가 현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모르겠지만, 북유럽이라고 북유럽의 회사라고 모든 현실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정작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의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때, 내가 바로 스웨덴을 찬양하던 책이 된 느낌이 든다.



그런데 한국 회사는 정말 최악이었나


지금 회사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공유 문화와 회사 스터디 / 한국 IT 회사에서 사내 스터디는 꽤 보편화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회사는 각자 하는 분위기 같다. 입사한 이후 스터디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은 본 적이 없다. 컨퍼런스나 문제 해결같은 주제는 가끔 한두시간 정도 시간을 마련하곤 하는데, 간단히 '내가 요즘에 공부한 것'에 대해 공유하는 사람은 없다.

강한 동기 부여 / 이 곳은 사람을 별로 힘들게 하지 않는다. 편안하다가도 더 잘하도록 동기를 주는 분위기가 가끔 그립다.

연봉 / 돈을 많이 벌고싶으면 한국에서 일해야한다. 높은 세금과 낮은 연봉 인상률은 한국에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 평생 스웨덴에서 먹고 살겠다! 고 결심하더라도 화가 날 것이다.

동기나 동료와 끈끈한 사이 / 간질간질하지만 동료들과의 관계는 한국에서보다 좀 건조하다. 대화가 없거나 사람들이 건조한 것은 아니지만, 퇴근하고 맥주 마시면서 서로 수고했다고 다독여주는 느낌은 없다. (물론 내가 외노자여서 이렇게 느낄 수도)

한국어로 일한다 / 설명이 필요없다.



부정적인 나에 대하여


요가를 하다보면 똑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몸의 왼쪽과 오른쪽의 느낌이 다를 때가 있다. 나는 오른쪽 다리의 힘과 유연성이 더 좋다. 그렇다고 오른쪽 동작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힘들어도 왼쪽 다리로도 똑같은 동작을 연습한다. 마음도 비슷한 것 같다. 전 회사에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분명 좋은 일도 많았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기억은 말로 술술 쉽게 나오지만 긍정적인 기억은 일부러 말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부러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 않으면 마음은 자꾸 쉬운 쪽으로만 쏠릴 것만 같다.


누구에게는 내가 처음 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일 수 있고 그 사람들에게 '한국 회사는 일 많이 하고 나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 애국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일했고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 곳에 대한 자부심같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단한 곳에서 왔다'는 자랑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이 싫어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함을 원했기 때문에 외국으로 왔다. 그렇다면 한국 회사가 나를 개발자로 이만큼 키우고 가르쳤으니 너무 힘들기만 했다고 깎아내리지 말자고 생각한다. 가르침을 알아보고 뽑은 다른 회사가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가치가 있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꽤 다른 두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이런 개발자로부터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런 개발자만 낼 수 있는 의견은 무엇인가? 한 쪽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듣기엔 재밌지만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이야기는 정보가 되며 에너지가 된다. 그 다리가 되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자.




17th October 2018

#개발자 #해외취업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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