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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Dec 02. 2018

첫 스웨덴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

스톡홀름살이 7

겨울이 왔다.

12월. 이제 오후 3시면 해가 진다. 3시부터 계속 밤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보다 낮이 3시간 이상 짧다. 사계절이 공평하게 햇빛을 나눠가지는 나라에서 평생 자란 나는 북유럽의 겨울이 어떤지 아직 잘 모른다. 스웨덴 사람들 중에도 긴 밤을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라면 후천적으로라도 밤을 좋아하게 될 것 같은데, 스웨덴 사람들은 후천적으로 적응하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어둠이 없는 나라로 피신하는 방법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겨울에 어둠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말은 여름부터 지겹게 들어왔다.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한 지침도 많이 들었다. 비타민D를 먹고, 일부러 밖에 나가려고 노력하고, 방에 촛불을 둘러놓고, 아침에 해가 뜨는 것처럼 서서히 밝아지는 무드등을 사고,... 



나는 머리도 몸도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예민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천재들을 동경하던 어린 시절에는 나의 무던함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웨덴에 오고 바뀌는 계절을 느끼면서 비로소 이 성정을 감사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예민하지 않아서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을 때 감정이 바닥을 쳤다가 금방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솔직히 좀 이상했다. 좋고 싫다는 감정이 몸에서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웃음이 잘 안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뀐 것은 해가 짧아졌다는 것 뿐인데 기분이 곤두박질치는게 가능한가. (PMS 제외^^ 주의) 웃어 넘겼던 어둠에 대한 조언과 약간의 공포는 모두 사실이었나.



하지만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겨울의 노란색이 도는 햇빛이 좋다. 오래된 건물의 벽과 지붕, 도시를 둘러싼 바다가 여름처럼 여전히 아름답지만 훨씬 따뜻한 빛깔을 띤다. 해가 낮게 떠서 빨리 지기 때문인지 아침이나 낮에도 노을지기 직전처럼 햇빛이 노르스름하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나라 귤보다 훨씬 작고 오렌지에 가까운 귤, 카페 테이블마다 놓인 촛불, 생강 쿠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풍경.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는 12월 24~26일, 12월 31일과 내년 1월 1일이다. 이 기간에는 집에 가는 동료들이  많다. 나는 한국에 다녀오지 않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스웨덴에 있어보기로 했다. 우리 회사에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쉬지 않으면 다른 때에 대체 휴가를 쓸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아마 출근을 할 것 같다. 연휴를 앞두고 회사에서 code freezing 한다고 들었는데, 혼자 개발하고 배포를 하는 건 아니라도 몰아서 공부라도 할 생각으로.


출근하는 길의 금색으로 빛나는 Dramaten


나는 이 겨울에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언제나 개발과 그 밖의 생활에 어떻게 시간을 배분할지 고민했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론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평범한 개발자임을 알고 있다. 남들보다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것, 그것은 평범한 머리로 인정받고 내 영역을 굳히기 위해 배운 불문율이다. 중심이 다른 쪽으로 넘어갈 것 같으면 파드득 놀랐고 개발이 삶의 전부인 사람처럼 코스프레를 해댔다.

미련하지만 헌신적인 시간들 덕분에 이직이라는 방점을 한 번 찍은 나는 개발자로서 다음 목표를 찾으며 숨을 돌리는 중이다. 그래서 네다섯 살 어린 똑똑한 사람들을 보며 내 머리를 쥐어뜯을지언정 예전처럼 전투적일 수 없다. 바라는 것은 오늘의 내가 편안한 것, 그것뿐.


그래서 뼈 개발자 코스프레만 하기엔 너무 긴 북유럽의 겨울에 취미를 늘리기 시작했다. 생활은 일부러 입체적일 필요가 있다. 회사 동료에게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했고, 개인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오래전에 생각했던 것이라 12월에 속도를 내면 올해 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을 두려워하기에는 어둠이 너무 기니까.



1st December 2018

#개발자 #해외취업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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