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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May 02. 2019

영어로 처음 일하니까

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17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쉽게 티가 난다.


나의 직업인 프로그래머에게도 유창한 의사소통은 강력한 무기이다. 개발자가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편견이다. 개발은 개인전이 아니라 팀워크라 합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화를 거치기 때문에 좋은 의사소통 능력은 개발자의 덕목 중 하나다. 그리고 개발자의 업무에서 협업과 정보 공유가 빠질 수 없으므로 잘 말하고 잘 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개발자들보다 쉽게 능력자의 이미지를 가져간다. 그중에서도 회의는 의사소통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회의에서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하고 질문을 하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에 탁월하다.


한국에서 신입으로 입사하고 한동안 회의는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오가는 말의 무게를 너무 크게 생각한 것 아닐까. 그리고 안정기를 지나 혼자 우리 팀을 대신해서 회의에 참여하고 때로 이끌게 되면서 다시 한번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혼자 대단한 논의 자리에 간 것은 아니지만 그 작은 회의 하나를 해내기 위해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개발을 시작하면 버그를 만들고 고치면서 점진적으로 목표로 나아가고 버그는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시작 같은 것이다. 하지만 회의에서는 질문에 대답 한 번 잘못하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이런 시간을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스웨덴 회사에서 회의는 영어라는 변수를 추가해서 새롭게 나를 시험한다.



회의에서 조용한 사람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하고, 한국인 친구와 만나는 날이 아니면 한국어로 말하는 시간이 하루에 총 한 시간이 안 되는 날도 있다. 이렇게 지낸 지 반년이 넘었으니까 영어가 늘기는 늘었으나 여전히 나라는 컴퓨터 안에 한국어는 CPU에 있고 영어는 메모리에 있는 수준이므로 이해하고 단어를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까지 버퍼링이 필요하다.


언어 간 latency는 늘 존재하지만 특히 회의에서 극단적으로 나를 제한한다. 아주 잘 아는 내용이 아니면 두뇌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는 일에 모든 리소스를 할당하기 시작한다. 나는 우리 팀에 가장 최근 입사하고 유일하게 영어로 일한 지 채 1년이 안 되는 사람인데, 처음 느꼈던 언어의 속도 차이가 꽤 컸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얼마간 회의에 들어가서 말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말을 시작했다가도 머뭇거리다가 말이 가로채 지거나, 허둥지둥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뱉었고, 하려던 말을 누군가가 똑같이 말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회의는 모여서 당장 결정(또는 비슷한 것)을 내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무슨 말이라도 해야 결정에 힘을 주던 반기를 들던 할 텐데 회의에서 강제 벙어리였던 나는 ‘의견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최근까지 고민이 많았다.


여기에 쐐기를 박는 일이 있었다. 한창 설계 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네 명 중 두 명만 열을 올리며 말을 하고 나를 포함한 두 명은 듣고만 있었다. 열심히 말을 하던 한 명이 나와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자기들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때 문득 회의에 대한 내 의견이 비어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말을 열심히 듣긴 했는데 정말 듣고’만’ 있었던 것. 한국에서는 잠자코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회의에 참여하는 방식이 바뀔 수 있다 치고, 더 중요한 문제는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순환이 머릿속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대충 둘러댔지만 앞으로 모든 회의를 둘러댈 수는 없는 일이다.



100%는 욕심일까

세상에는 앞당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바로 앞으로 끌어올 수 없어서 와 줄 때까지 기다리면서 끝없이 구애해야 하는 것들. 해외 이직도 요가도 30대에 시작한 일들은 쉽게 오지 않았다. 영어도 처음이니까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당연히 잘 알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한 변화를 느끼지만 내가 소극적인 사람으로 비치거나 의사소통의 제약 때문에 능력이 제한되고 혹여 폄하될 것을 걱정하는 것만으로 자존심이 깎여나갔다.


대단한 다양성 덕분에 우리 팀에는 미국인도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영어 콘텐츠를 보면서 자란 나이 때의 유럽 사람들도 있었다. 고민과 걱정을 하면 할수록 당장 없는 능력을 끝없이 비교했고 순간순간 열등감에 빠졌다. 그 대단한 다양성이 나의 영어를 빠르게 키우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유럽 사람들이라고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으나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이 때에 상관없이 모두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한다. 요가원에서 만나는 흰머리 난 할머니도 영어를 한다. 나 같은 우리나라의 평범한 30대가 받은 영어 교육과 비교하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또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배운다. 나라마다 공중파 채널이 있어도 적은 인구 때문에 자체 제작하는 방송의 수요가 적어서 미국이나 영국의 프로그램을 트는 것이 흔하다고 한다.


팀에 스톡홀름에서 잠깐 공부를 하고 여기에 가족을 데려와 자리 잡은 중국인 동료가 있다. 그는 우리 회사에서 5년 넘게 일했는데 이러한 그도 영어로 일하면 자신의 퍼포먼스가 절반이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너무나 겸손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아직도 언어에 제약을 느낀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유럽, 특히 스웨덴 사람들의 평균적인 영어가 수준급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가끔 미국인의 유창한 언어에 밀린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팀의 미국인 동료는 영어가 모국어인 데다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학문적인 글쓰기 경험이 유난히 많았고 small talk를 좋아하는 귀여운 수다쟁이다. 자신의 의견을 강조할 때면 매우 화려한 화법을 구사해서 듣는 사람이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게끔 했고, 그와 같이 오래 일한 사람들에 따르면 자신의 이런 강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를 좋아했지만, 모국어로 말하는 사람의 거침없는 의사소통에 말이 턱 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좋은 경험이 아닌 것 같다. 


Kungsträdgården의 벚꽃


콤플렉스가 아니야

그리고 2주마다 돌아오는 매니저와의 면담에서 영어와 특히 회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면담에서는 보통 2주 동안 있었던 일을 회고하고 일과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정리했는데, 이때가 처음으로 회사에서 '힘들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내뱉은 시간인 것 같다.

나는 영어로 일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회의가 힘들다, 회의 내용을 미리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회의 주제와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팀에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서로의 장단점을 알아가지만 그들이 얼마나 나의 콤플렉스를 눈치채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날의 면담을 잊을 수 없고 눈물을 보이고 만 것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힘들지는 않은지, 그리고 미국인 동료와 말하는 것이 평소 괜찮은지 매니저가 콕 짚어서 물었기 때문이다. 못 알아들었으면 다시 물어보라, 고 들어왔지만 막상 영어로 생활을 시작하니 이건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best practice일 뿐이었다. 잡담, 특히 여러 명이 한꺼번에 말을 하면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순간들이 있었다. 눈치껏 이해하거나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영어를 더 배워야 하는 사람의 기준으로는 알고 넘어가는 것이 나은 행동일 것이다. 그래서 매니저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가'라는 질문은 내가 못하는 것을 남들에게 말하냐 하지 않냐의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게으르고 안일한 나의 선택에 대한 실망과 여러 목소리 뒤에 숨어 아는 척 조용히 있었던 나를 밖으로 드러내는 부끄러움처럼 더 내면에 깔려있는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고맙게도 그 자신도 영어 네이티브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인 동료와 이야기할 때(그는 미국인의 매니저이기도 하다) 잠자코 듣고만 있어야 하는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말로 휘어잡는 때가 오면 매니저도 도무지 말에 끼어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머리가 정지하는 기분과 그러면서도 웃고있는 나를 돌아보는 자괴감 같은 감정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한창 영어 때문에 고민하던 2월에 쓰기 시작한 이 글을 마무리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그 사이에 스트레스를 얼마간 내려놓았고 보시다시피 (놀랍게도 여전히) 회사도 잘 다니고 있다. 마무리에 뜸을 들인 이유는 해외 취업을 원하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도전도 해보기 전에 사기가 꺾이는 것을 염려한 탓이다. 해외 취업을 원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영어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과목인지 알기 때문이다.

내가 알리고 싶었던 내용은 오히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나처럼 세상 평범한 사람도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긴장을 풀으라는 것이다. 일의 기반을 옮기는 것은 더 이상 시험이 아니라서 '결국' 영어를 얼마나 잘하게 되었다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우당탕 부딪히는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23rd February 2019

#스웨덴 #개발자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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