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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Jun 23. 2019

방탄소년단 (또) 유럽 투어 후기

스톡홀름살이 9

18th June 2019


이번에도 BTS의 런던 공연을 보고 왔다. 유럽 예매와 공연이 가까워질 때마다 이전 글들

1) 방탄소년단 유럽 투어 예매 후기 https://brunch.co.kr/@ggool/20

2) 방탄소년단 유럽 투어 후기 https://brunch.co.kr/@ggool/21

의 방문자수가 야금야금 느는 것이 신기했다. '굿즈 줄'같은 검색어를 보면서 이번에는 좀 더 정보 지향적으로 정리해볼까 했지만 덕질 블로그도 아니고 재미로 올리는 거니까 일기처럼 적으려고 한다.




D-?


예매를 하다


웸블리 공연은 원래 토요일 하루뿐이었는데 처음 열린 예매에서는 표를 못 구했다. 유럽 투어를 예매할 때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유럽 공연의 예매가 한 날 한 시에 전부 열리는 것이다. 나라 간 시차 때문에 한 시간 간격이 있긴 하지만 티켓팅도 기다림이 필요한 법, 운이 좋으면 몇 분 안에 끝나지만 대부분 기다림과 끝없는 새로고침의 고통 속에 티켓을 얻기 때문에 한 시간이 절대 절대 충분하지 않다. 이 날은 파리, 런던 두 번의 기회가 상처로 끝났다.

파리 공연을 잡은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ticketmaster 말고 다른 사이트-심지어 작은 웹사이트-에서 표를 오히려 쉽게 구할 수도 있다는 것도 배웠다. 우리나라에 비해서 정보 검색이 쉽지 않은 것은 정말 사실이다. 인터파크야 일단 우리나라에서 덕질을 하려면 몇 번씩 쓰게 되고 익숙하니까. 하지만 유럽은 여러 공연을 잡으려면 나라마다 더 꼼꼼하게 잘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귀찮다고 ticketmaster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실망하고 프리미엄을 얹어서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일요일 공연이 열리게 되어서 3월 8일에 다시 예매에 도전했다. 심지어 매일 아침에 하는 팀 스탠드업 양해를 구하고(우리 팀 사람들은 내가 BTS 팬인 것을 전부 알고 있다) 회사 카페테리아 구석에 박혀서 비장한 마음을 다졌다. 두번째는 실패하지 말자.

회사 일정을 빠지는 과감함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일요일 공연은 무려 두 장을 차례로 잡았다. 결제 단계에서 한국 신용카드를 썼다가 막혀서 침착하게 스웨덴 은행 카드로 바꿔서 성공성공!! 한국 신용카드가 문제가 된 적은 처음인데 한국의 친구도 나 같은 문제가 있어서 좋은 자리를 놓쳤다고 한다.

작년에는 중간에 스웨덴으로 배송지를 바꾸고 편의점 주인과 싸우듯 우겨서 티켓을 받아오는 등 티켓을 손에 쥐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잊고 있다가 갑자기 티켓을 받았을 정도로 배송이 완만했다.


아미밤 커스텀 :) 런던으로 가기 전 거의 유일한 준비


D-1


Merch를 사다


나는 공연보다 이틀 먼저 런던에 가서 토요일(공연 첫째날) 아침에 굿즈를 사러 갔다. 작년에 O2 공연장에서 굿즈를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고, 이번에는 숙소가 웸블리랑 멀어서 왕복도 쉽지 않았다. 스톡홀름에서 런던까지 비행기로 두시간반이 걸린다. 공연 전날이 아니라 이틀 전에 간 것은 오로지 굿즈를 미리 안전하게 사기 위해서였다.

늘 야매 덕질, 야매 아미를 자청하므로 이번에도 몇 가지 정보를 런던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투어 굿즈를 금요일부터 팔기 시작하고 팝업 스토어가 런던 시내에 두 종류(BT21과 방탄 공식)나 있다는 것을 포함하여. 나는 투어 굿즈가 중요해서 팝업 스토어는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투어 굿즈를 금요일부터 팔기 시작했고 금요일에 줄이 거의 없었다는 정보에는 바로 별표를 쳤다. 도대체 토요일에 언제부터 줄을 서야 할 것인가! 공연 티켓이 있는 사람들 중에 금요일에 먼저 굿즈를 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건은 전부 있었을까!!!



결전의 날. 부스 오픈은 아침 9시였고 나는 8시 정도 부터 줄을 선 것 같다. 원래 6시나 7시 도착이 목표였는데 별표 친 내용에 마음이 조금 놓였고 호텔에서 프로듀스 X 101를 보느라 평소보다 늦게 잤다^^ 동행이 없어서 읽을 책, 헤드폰,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는 것 정도를 챙겨갔다. 굿즈 부스는 계산대가 많았고 둘로 나눠서 양쪽으로 줄도 따로 세웠다. 나는 중간쯤이었던 것 같다. 9시가 가까워질수록 줄이 순식간에 길어졌다. 시내 팝업스토어가 없으면 훨씬 치열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굿즈는 실망스러웠다. 투어가 급하게 잡혀서 물건을 뽑을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 프리미엄 포토 말고는 사고 싶은 것이 없었고 심지어 프포도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면서 목록을 받았을 때 주변에서 이번에 부채가 없어서 실망하는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물건의 절반 이상인 티셔츠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안 예뻐서 그중에 고르고 고르느라 결제하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첫 LY 굿즈에 감사하다고 인사해야 할 정도. 내 순서 전부터 키링이 품절이었는데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키링이 그나마 살 만했기 때문이다.


왼쪽 - 굿즈 미리보기, 오른쪽 -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두 명의 프리미엄 포토와 티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바로 지금 하필 나부터 둘의 프포가 동시에 품절이라는 거다. 네?????? 이거 거짓말?????? 오픈 전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하나라도 못 사면 안되지.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해달라고 사정을 해서 스탭이 물건을 찾아보러 갔는데 이미 심각하게 실망한 나는 다른 멤버의 프포를 사는 사람들을 초조하게 보고만 있었다. 그 사이 옆에 서 있던 팬이 다른 스태프가 내가 사려던 프포를 들고 다니는 것을 먼저 보았고, 멀리까지 걸어간 스태프를 부르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나는 평소 아주 침착함을 유지하지만 그때만큼은 손에 들려있던 프포 두 개 중 하나를 내가 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 품절이라고 말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한국 사람이었던 그녀들이 내 블로그를 읽을 리 없지만 진짜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프포를 샀고 2주의 여행을 거쳐 집까지 안전히 왔다.

품절을 비껴가려면 일지감치 줄을 서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줄을 설 작정이라면 순위권에 있어야 품절 걱정도 없고 기다리는 시간도 결과적으로 제일 짧다. 새벽같이 길바닥에서 기다리는 게 빡세 보이지만 굿즈를 살 때는 어쩌면 제일 효율적인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프듀 보지 말고 바로 잘걸 그랬다.


홍콩 아미


굿즈를 사고 스타벅스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옆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고 최애가 누구고 자리가 어느 구역이고 숙소가 어디고... 그녀 M은 홍콩 사람이었는데 혼자 왔고 나는 한국에서 친구가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이 비어서 둘 다 자리를 금방 뜨지 않고 계속 대화가 이어졌다. 난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대화를 트는 법이 거의 없어서 모르는 사람과 이 정도로 오래 이야기한 것이 오랜만이었다.


유럽 공연에 가면 정말 유럽 사람들이 많냐고 친구가 물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쫓아온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진짜로 유럽 사람들이 대부분일뿐더러 연령대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어리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이긴 해도 전체 관객 중엔 소수다. 더군다나 한국인이 영국까지 오려면 지불 능력이 있는 20대 중후반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종간 나이차가 꽤 분명하다. M과 내가 오후를 같이 보내고 다음날도 만난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이도 있고 아시안이고 혼자였으니까.


M은 홍콩 사람이지만 결혼하고 남편의 친척들이 있는 스코틀랜드에 와서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 연예인을 좋아한 역사가 길었고 심지어 한국어도 배워서 짧은 문장은 정확하게 말했다. 그래서 한국어로 했다가 M이 못 알아들으면 영어로 다시 말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어 과거 시제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오기도 하고, '이런 말은 어떻게 알지'싶은 말을 하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팝업스토어에 갔다가 긴 줄을 보고 학을 떼고 기다리기를 포기했다. 이 날은 날씨가 맑고 더웠다. 원래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더위에 지쳐서 공연장 주변으로 돌아와 스파게티를 사 먹었다. M도 나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 사람을 사귀고 강제적인 여유를 배우는 것들에 대해. 나는 공연장 바로 옆 M의 호텔방에 맡겨둔 짐을 찾아서 나의 숙소로, 그녀는 공연을 보기 전 잠깐 쉬겠다고 했다. 웸블리 첫날은 M과의 포옹으로 끝났다.


공연장으로 걸어가는 길


D-DAY


지구는 넓고 세상은 좁다


공연을 보기 전에 전 회사 친구가 소개해준 분을 만났다. 둘이 같은 팀에서 일하는데 나처럼 백엔드 개발자이니 공연장에서 만나보라며.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퇴사하기 전에 분명 그 빌딩 어딘가에서 마주쳤을 것이다. 한국에서 만났을 때 런던에 방탄을 보러 간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자기 동료를 소개해준 친구의 다정함과, 선뜻 만날 장소를 정해주고 별 볼 일 없는 블로그를 읽어준 그분의 마음씨가 고마웠다.

한국에 없기 때문에 넓어지는 인연들이 있다. 한국 사람이 한국 공연에 가는 건 특별할 일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에 살고 런던씩이나 가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고 친구와 전에 없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스톡홀름에 살다 보면 핸드폰이 없으면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한국 사람들과의 관계는 사람 냄새가 적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10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온 덕분에 허무함이 가신 기분이었다. 세상은 충분히 가깝더라.


공연을 보다


나는 1층에서 무대 중앙을 바라보는 좌석이었는데 사실상 2층에 가까웠다. 웸블리는 9만 석 규모의 경기장이기 때문에 사람을 가까이 보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무대와 전광판이라도 잘 보이길 바랐다.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고 두근거렸다.



공연만 이야기하면 기대 이하였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좀 미화되었지만 이유가 몇 개 있다.

우선 LY 투어를 여러 번 봐서 공연 사이사이에 놀라움이 없었다. Speak yourself로 바꾸면서 신곡이 들어갔어도 큰 틀과 대부분의 영상이 그대로라 복습이 너무 많이 된 것 같다. 기대한대로 모든것이 흘러가서 심심하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개인적인 문제는 이미 스탠딩에서 가까이 봐서 좌석에서 큰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이걸 깨려면 새로운 투어를 가거나, 더 가까운 좌석으로 가거나, 공연 자체와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가 넘치거나 셋 중에 하나가 필요하다.

가수 컨디션과 공연장 에너지가 이 날은 둘 다 중간 정도이지 않았을까? 미국->북미->유럽 순서로 도니까 유럽에서 당연히 가장 피곤할 것이고 막콘이 아니었으니 체력 안배를 했을 수도 있겠다(파리는 불태우는 분위기라고 들음).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공연이었지만 흥이 덜 오른 느낌이 끝까지 갔다.

나는 야외 공연에 좋은 기억이 많고 실내가 절대 줄 수 없는 속 시원한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웸블리에서도 그 넓은 공간을 마음껏 쓰고 돈 냄새가 나는 장치들을 기대했었는데 장치가 공연장을 못 따라간 것 같다. 다음 스타디움 투어에서는 돈 잘 버는 가수의 화려함을 마음껏 자랑하길.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밤이었다.


나는 더 이상 10대처럼 처음 가수를 좋아하는 팬처럼 간지러운 마음으로 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의 중심을 줘버리고 사랑하고 쉽게 상처 받는 시절이 꽤 오랫동안 있긴 했어도. 나는 계속 변해왔고 '팬으로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으며 크기를 조금씩 줄여갔다.

그래도 수많은 팬들이 같이 노래를 부르고 가수와 서로 행복해하는 순간은 나의 10대부터 지속되어 온 사랑의 정의다. 반응하는 형태가 달라질지언정 정의는 바뀐 적 없고 흥미가 떨어져도 없는 상태로 살 수 없는 감정이다. 그만큼 누군가의 팬이라는 것은 10대와 20대를 한결같이 관통하는 인생의 소제목이었다. 콘서트장에 있으면 순간 순간 10대의 처음 가수를 좋아하던 팬이 된다. 과거의 나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이 새롭게 솟아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충분히 사랑스러운 밤이었다.




#BTS #방탄소년단 #투어 #투어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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