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을 거스르는

드롭백과 컴업

by 개발자 꿀

8월에 드롭백과 빈야사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ggool/43 그로부터 4개월, 드롭백이 과연 나아지고 있는지 나아지기는 하는 건지 긴가민가했다. 의심이 여지없이 월요일이 되면 허리가 뻣뻣했고 금요일에는 등과 어깨가 피곤했다. 팔을 쭉 펴고 강하게 버텨라, 가슴을 펴라, 올라올 때 팔을 일찍 구부리지 말아라, 발을 바닥으로 눌러라, 똑같은 교정을 수없이 받았다.




그간 나아진 것이 있다면 드롭백에 대한 접근 정도다. 동작이 불편할수록 집중이 어렵고 호흡이 잘 뜨는데, 여기에 끌려가면 매일의 연습이 너무 감정적으로 되기 쉬운 것 같다. 매일 다른 몸 상태에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동작을 접근하는 방식도 때때로 달라진다. 나의 경우 이럴 때 체크리스트가 있으면 불편함이 주는 감정적 동요를 가라앉히기 수월했다. 의식적으로 머리로 연습을 해보는 거다.


체크리스트는 별게 아니라 선생님에게 교정받았던 것들을 내게 잘 먹히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매번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상적으로는 몸이 전체적으로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동작이랑 친해지기 전까지는 몸의 조화가 쉽게 느껴지지 않아서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하려고 한다.

1) 발과 다리 전체로 바닥을 누른다

2) 척추를 위쪽부터 펴는 상상을 한다 - 상체를 길게 할 때 아래부터 위로 느끼기 쉬운데 팟캐스트(글 마지막에 링크1)에서 반대로 써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하기 시작했다. 위쪽부터 느끼면 허리가 덜 긴장되는 것 같다.

3) 상체는 그대로, 엉덩이를 최대한 앞으로 민다 - 원래는 엉덩이를 밀면서 동시에 상체가 내려가는 것이 맞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가슴을 펴면서 내려가는 게 잘 안 돼서 가슴을 피라는 이야기를 거의 매일 들었다. 그런데 우연이 내 앞에서 드롭백을 하던 사람이 두 가지를 차례차례 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4) 가슴을 들어 올리듯 펴면서 바닥으로 내려간다. 바닥이 보이기 시작할 때 엉덩이와 골반을 한 번 더 앞으로 밀어서 깊이 내려간다


최근 두어 달은 체크리스트를 정확히 지키는데 집중한 것 같다. 그리고 드롭백을 시작한 지 10개월을 꽉 채운 이번 달, 무언가 바뀌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는 여러 명의 선생님이 계신다. 거의 매일 마이솔 첫 두 시간을 가르치는 큰 선생님(?)이 있고, 그 선생님이 없는 시간에는 나머지 세네 명의 선생님이 나눠서 가르친다. 때문에 스케줄에 따라서 어떤 선생님은 아주 가끔 만나기도 한다.

큰 선생님이 일주일 동안 워크숍을 간 사이, 거의 한 달 만에 드롭백을 잡아준 두 명의 선생님이 내 변화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보았고 "super light"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리곤 선생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잡아줄 때 힘을 빼고 약간의 도움만 주기 시작했다. 강한 어시스팅이 없어지니까 내 힘을 더 많이 써야 하긴 했지만, 선생님의 손에 몸을 기대고 내려가고 올라올 때 잡아당겨주는 힘이 있어서 여전히 온전하게 내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특히 컴업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큰 선생님이 돌아오시고 그동안 다른 선생님들과 혼자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하루인가 이틀이 지났을 때, 준비 자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매트 앞에 서서 가슴 앞에서 손을 합장) 선생님이 멀찍이 떨어져서 혼자 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백을 드롭했고... 컴업. 너무 자연스럽게. 얼떨결에 올라와서 진짜 놀랐고 얼떨결에 눈도 감았던 것 같다 ( .Y .

두 번째에는 손이 바닥에서 떨어졌다가 다리로 못 버티고 등으로 바닥에 넘어졌다. 이때 선생님이 와서 더 많이 걸어 들어오고 너무 오래 버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셨고, 세 번째에는 또 쑥 올라왔다. '올라와졌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이가 신체적인 활동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기운이 약해지고 변화가 더디다. 또 늦게 요가를 시작했다는 것은 보통 몸이 그만큼 오래 구부러지고 딱딱해져 있어서 다시 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오랜 시간이 필요한다. 서른 즈음에 아쉬탕가를 시작한 나는 20대의 어린 yogi들을 보면서 종종 그 차이를 통감한다.

그러므로 드롭백처럼 구체적인 변화들이 보이는 순간, 몸이 바뀌어야 하는 아사나(동작)들이 되기 시작할 때 느끼는 감정은 단지 성취감이나 뿌듯함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 여정은 나이듦을 거스른다. 소모하지 않고, 몸을 해치지 않고, 숨어있던 힘을 구체적인 형태로 밖으로 끌어내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가를 훈련이 아니라 수련(修鍊)한다고 말해왔나 보다. 修 닦을 수 닦다, 꾸미다, 고치다, 다스리다.

나는 나이 드는 것이 전만큼 무섭지 않다. 수련과 함께 나이가 들면 10년 후의 늙은 내가 지금보다 더 아사나를 잘하고 있을 것이라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확신으로.




얼떨결에 컴업을 하게 된 이후 이틀은 기복 없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매일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잘 안 되는 아사나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하는 만큼 갑자기 아사나가 좋아져도 너무 기뻐하지 말자는 것이 기본적인 나의 생각이라. 엊그제인가는 두 번 겨우 올라왔고 한 번 만에 완전히 지쳐버린 날도 있었다. 컴업은 잘 올라올 때는 너무 쉽게 되는데 될 듯 안돼서 버티기 시작하면 허리에 피로가 와서 점점 올라오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하다 보면 리듬을 타게 되겠지.

그런데 정말 맞다. 하다 보면 된다. 그래서 매트에 서는 것 만이 내가 해야 하는 전부다.



링크1 The Ashtanga Dispatch Podcast Episode 30: Harmony S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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