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수련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인터미디엇 시리즈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간다. 매트 위에서 보낸 시간들 - 땀과 온갖 감정이 범벅되고 가끔 길을 잃은 것 같았던 그 시간들이 결국에는 변화로 귀결될 때, 내가 의미 있는 어떤 일을 하긴 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처음 목격한 변화는 프라이머리 시리즈에 베카사나까지 아사나 네 개를 더했을 뿐인데 체력적으로 엄청 힘들다는 거다. 살라바사나와 베카사나를 시작한 뒤로 얼마간 하루 종일 배고픔에 시달렸다. 그리고 수련 시간이 계속 길어져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 당겨야 했는데 아침에 평소보다 10분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Jumping into Trianga Mukha Eka Pada Paschimottanasana, love yoga anatomy
크론차사나를 배울 때는 아사나보다 연결 동작에서 더 애를 먹었다. 크론차사나 in, out 연결 빈야사는(위의 사진) 프라이머리에도 똑같이 한 번 나온다. 나는 기본 빈야사도 아직 잘 못한다고 생각해서 따로 연습해본 적이 없다가 크론차사나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해봤다. 처음에는 당연히 못 따라 하고 이상한 다리찢기가 되어서 전혀 힘든 게 아닌데 왜 못하는 거냐는 선생님의 웃음을 샀고 알아서 해결 해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신기하게 하다보니까 어설프게 모양이 만들어져 갔다. 처음에는 다리를 뻗기 시작하는 타이밍을 몰라서 다리가 절반쯤 펴졌을 때 이미 앉아버리기 일쑤였는데 점점 점프하는 공간 안에서 다리를 원을 그리면서 뻗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너의 크론차사나를 내일 시험 보겠다'라고 하셨고, 시험날! 크론차사나 차례에서 두리번거렸을 때 선생님이 이미 뒤에서 '어서 해보거라'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ㅋㅋ
수련은 대부분의 시간을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을 반복하면서 몸이 준비될 때를 기다리는데 쓴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몰라서 하지 않는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크론차사나 빈야사는 나를 믿고 무작정 해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아직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외부의 누군가가 먼저 눈치채 주고 너는 이미 충분하다고 알려줬을 때, 그런가 보다 받아들이고 그냥 해보는 거다.
반대로 베카사나는 아사나를 거의 따라 하지 못했다. 손으로 발을 감쌀 때 선생님과 똑같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교정을 받았는지 모른다. 다행히 그립에 혼란은 대부분 겪는 것이라고 그 날의 베카사나 씨름을 목격한 사람들이 위로해주었지만.
아직 베카사나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발이 덜 내려오는 것은 당연하고, 그립을 만들 줄 알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양발을 동시에 잡을 수 있으려면 힘이 더 좋아야 하고 가슴도 더 열려야 하는 것 같다. 기다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크론차사나 빈야사를 연습하면서 프라이머리 시리즈에서 미처 채우지 못한 디테일에 대해 생각한다. 일단 아사나를 거의 다 할 수 있게 되면, 나바사나 다음 나오는 아사나 세 개의 디테일이 결국 난이도를 결정하고 인터미디엇에서 재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팔로 균형 잡는 동작에 자신이 없어서 바카사나라던가... 바카사나같은... 아사나가 아직 너무 어렵다. 5번 호흡 동안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게 되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고 이제는 뒤로 발을 차서 바로 점프할 수 있게 되는 게 다음 목표다. 숩타쿠르마사나는 손만 잡을 뿐 갈 길이 멀고, 가르바 피다사나는 손이 턱에 닿을 듯 아직 닿질 않는다.
예전에는 인터미디엇을 시작하려면 프라이머리 시리즈를 결점 없이 완벽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심지어 인터미디엇을 처음 시작하던 날 내가 가르바 피다사나에서 손을 대지 못하는걸 선생님이 모르시는 줄 알고 괜찮냐고 물어봤었는데, 선생님이 '뭘 그런 걸 물어보니'라는 표정으로 진도를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한동안 내가 인터미디엇을 할 때가 맞는 건지, 선생님이 내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같은 의심에 시달렸고, 같이 수련하는 친구들에게도 여러 번 고민을 털어놨다. 나를 1년 넘게 봐온 선생님인데도 그의 결정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참 동안 했다.
의심과 불안은 규칙적으로 수련 속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시험한다.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고. 너는 자신에게 얼마나 강한 용기를 줄 수 있느냐고. 생각을 비우고 시작할 수 있냐고. 이럴 때일수록 묵묵하게 수련하는 것 밖에 답이 없다. 모순처럼 들려도 그것만이 혼란을 가라앉히고 용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니까.
선생님이 나에게 인터미디엇을 약간 빠르게 주었다면 그 이유는 체력을 기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프라이머리 시리즈 뒤에 아사나를 세네 개 더 붙이는 것은 절대 체력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마 오랫동안 프라이머리 뒤에 인터미디엇을 연장하면서 수련하게 될 거다. 이렇게 점점 길어지는 수련으로 체력과 힘을 기르고, 인터미디엇의 더 깊은 아사나를 연습하면서 프라이머리의 빠진 부분을 채우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막상 시작해보니 두 시리즈를 딱 잘라 생각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프라이머리 안에 순서가 있는 것처럼 시리즈 사이에도 순서가 있을 뿐이고, 그것이 하나의 수련으로 합쳐질 뿐. 비록 새 시리즈를 시작하는 변화는 처음 겪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프라이머리 시리즈 안에서 내 수련이 변한 것과 같은 결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즐거워할 이유도 안절부절할 이유도 없다.
프라이머리 시리즈에서 아직 못 하는 것들도 있지만 잘하게 된 아사나들도 있다. 우선 마리차사나D에서 한쪽만 잡히던 손목이 양쪽 다 안정적으로 잡히는 게 제일 기분이 좋다. 파사사나를 하면서 뒤트는 동작을 얼마나 더 깊이 할 수 있는지 다시 배운 것 같다.
그리고 자누시르사아사나에서 발가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턱을 정강이에 대면 발등이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새끼발가락이 보인다. 아사나는 도대체 얼마나 더 깊이 할 수 있는 걸까? 이미 꽤 끝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시야가 바뀌는 게 너무 신기하다.
수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황이 허락하는 최대한 매일 수련하고 호흡과 시선이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유일하게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기필코 언젠가는 또 한 번의 도약이 올 것이다.
수련에서 성실한 반복이 주는 확실한 믿음을 직접 확인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것은 인생을 단순하지만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강한 동력이 된다. 지난 스웨덴 생활로부터 인생의 중심을 내 안의 낮은 곳에 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절하게 배웠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서 마음이 뜨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흔들리고 공허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Laruga Glaser 워크샵에서 인터미디엇 시리즈는 신경계를 강하게 만들어서 'be less reactive' (less emotional, stable)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 말이 담고 있는 보편성, 모든 수련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일반성이 좋았다. 아직 목에 다리를 걸지 못하고 팔로 몸을 들 수 없어도, 노력하는 과정 안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less reactive'는 내가 해외 생활에서 끊임없이 바랐던 삶의 마음가짐이 아닌가.
그러니까 들뜨는 감정들을 중심으로 가져오기 위해 내일도 수련을 하자.
7th March 2020
#스웨덴 #아쉬탕가 #마이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