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엔 네가 보낸 강물소리를 들어야지

시가 내 시간을 흔들었다 4/황동규-시월

by 초린혜원

10월의 동네 산책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단연 '은목서 나무 향'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지구 상의 나무들 중 가장 강한 향기를 뿜어내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매혹적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방향제 중 으뜸인 은목서 향을 맡으며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오래 간직해온 타임캡슐이 열려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의 한 지점에 내가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이 순간, 서서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보기로 한다.


가을빛이 바람에 실려 세상 모두에게 따스한 평안을 나누어주던 9월 말의 어느 공원이었다. 아마 망우당공원이었던가? 기억으로는 그렇다. 멀리로는 물소리 비슷한 게 들렸고 적지 않은 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 벤치에서는 각 학교에서 시와 수필께 나 쓴다는 아이들이 몰려와 저마다 뽑힐 글을 만들어내느라 바쁘고 분주한 오후 시간이었다.


그곳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인 커트머리의 나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고, 이미 시인이 된 것 마냥 허세로 가득한 재능을 뽐내면서도 인근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시인 지망생 여고생'이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분지는 대대로 여러 유명한 시인을 배출해낸 고장으로 각 학교마다 '시동인' 이 있었으며, 그 시동인들을 주축으로 각 학교에서 모인 '연합 동인' 모임도 상당수였다, 하지만 나는 신생 학교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런 시동인에 들어가 활동을 한다는 것이 왠지 마뜩잖았고, 자기가 뭐라고 '홀로 시인됨'을 고수했다.


당연히 다른 아이들과는 잘 섞이지 않고 호랑이처럼 혼자 떠돌아다니던 그런 아이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백일장을 나가게 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음에도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이런 연유로 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희한한 상황들을 스스로 감내해가는 중이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우리 모교의 모던한 교복 스타일과 톰보이 같던 내 머리 모양도 한몫을 했겠지만.


이날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웃고 떠들면서 서로의 시에 대해 평가를 하고 도움을 주고받고 있는 동안에도 난 여전히 혼자 벤치에 앉아 그날 시제 중 하나였던 '길'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씨름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키만 멀대처럼 큰 두 남학생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중 한 녀석이 자꾸만 나를 보면서 웃는 게 아닌가? 세상 까칠하다면 두 번째가 서러울 나였기에 '흥!' 하고는 외면을 하던 찰나였다. "야! 김혜원! 나 모르겠냐? 나 너랑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두 녀석 중 한 녀석이 그렇게 아는 체를 하기에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녀석의 말대로 과연 안면이 있었고 더군다나 6학년 시절 나란히 회장 부회장을 했던 사이였던 것이다.


'이런! 오늘 시는 다 썼군!'


그들의 등장이 반가울 리 없던 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동창 녀석 아닌 다른 한 녀석이 허락도 없이 내 원고지를 보더니 어라,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길이 일어선다!.. 흠, 이건 뭐 강은교 아닌가요?"


"아니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시를 읽고 그래요?"


"아, 미안합니다. 읽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보여서"


나는 이내 샐쭉해져서 두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에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녀석이 지적한 강은교 풍의 시라는 말이 너무 폐부 깊숙이 들어와 내 감정을 헤집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강은교 시인의 시들에 푹 빠져 있었고 은연중에 그런 시풍의 시들을 써 내려갔었기에 말이다. 감추어야 할 무언가를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지만, 어떻게든 시를 완성해 제출하고는 부리나케 짐을 싸 집으로 돌아왔었다. 집으로 오는 길 버스 안에서 나는 아마도 눈물을 흘렸던 거 같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어도 어쩔 수 없이 새 나오는 울음 때문에 내려야 할 정류장을 그만 지나쳐 버렸다. 그렇게 터벅터벅 낯선 동네를 걸으며 '시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도 없이 했던 것 같다.


부끄러움으로만 남은 당시의 짧은 만남은 며칠 뒤 한 통의 편지를 받음으로써 완전히 반전이 된다. 편지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그때 본 것은 나비, 커다란 날개를 가진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였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편지글에는 바로 이 시 황동규의 시월이 덧붙여져 있었고.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 소리 목금 소리.



3

며칠 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갯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 내 며칠 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멀대처럼 키가 컸던 녀석, 내 시 첫 구절을 보고 강은교 풍임을 알아챘던 바로 그 녀석이 보낸 편지였다. 녀석이 어떻게 우리 집 주소를 알아냈는지, 왜 이런 편지를 보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다.


막 10월로 들어선 순간에 받아 든 편지에 동봉된 황동규의 시 '시월' 은, 서걱대는 소리만 내던 내 시심에 강물을 흐르게 했다. 특히 4연의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라는 시구는 가히 절창에 가까웠다.


읽는 순간 내 곁으로 고요한 강물 한 줄기가 흘러들어 새벽잠을 깨우고, 낙엽이 지는 어느 산사의 풍경소릴 듣게 만들었다. 시인이 약관 스물에 썼다는 시가 시적 내재와 외연을 완벽하게 갖춘데 우선 놀랐고, 10월의 고즈넉함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낸 사실화 한 점을 눈 앞에서 보는 듯 한 문장들과 ,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길을 이토록 서정적인 시어들로 적확하게 표현해내고 있음에

한 번 더 놀랐다.


낭송을 해 보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리듬감이 입에 달라붙어 몇 번 읽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외워지는 신기한 경험마저 하게 됐다. 강은교 시인의 니힐과 실존을 오가는 시풍에 빠져 허덕이던 내게 이토록 유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정성을 가진 시가 있다는 걸, 이게 바로 시의 본연이라는 걸, 녀석은 애써 각인시키고 싶었던 걸까?


이 한 통의 연애편지가 내게 던져준 파문은 적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착하던 연애편지는 석 달 열흘이 지나도록 그칠 줄을 몰랐고, 어김없이 그날 그 시간과 상황에 맞는 시들을 골라 동봉해 보내는 녀석의 치밀한 시집 리스트는 잘 숙련된 라디오 DJ의 선곡표 같기도 했다.


녀석이 당시에 무엇을 의도했든 간에 그래, 반쯤은 성공을 한 셈이다. 모든 걸 다 떠나 편지 첫 장에 등장한 '나비 운운' 때문에 '마담 버터 플라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이 일생의 별칭 덕에 문우들 사이 왠지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인물로 착각할만한 신비한 아우라가 만들어졌으니까.


그리고 나의 10월은 항상 황동규의 '시월'을 꺼내 낭송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니까 말이다. 이 한 편의 낭랑한 시에 내 시간은 아니 내 가을은, 고스란히 박제가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머물러 있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더욱 고귀하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순수한 순간의 결정체를 포장해두고 가을이 올 때마다, 은목서 향을 맡으며 걸을 때마다 선물로 열어 주곤 한다. 그래서 이 가을 '시월'을 다시금 읽는 내 눈은 귀하고 시를 여전히 사랑하는 내 흙 가슴도 그 어떤 보물보다 가치가 있다, 감히 얘기할 수 있으리라.


"황동규 시인의 10월이 영원히 늙지 않는 것처럼, 그대의 시월도 이렇게 매양 같은 모습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의 한 때에 모자람 없이 머물러 있는가...?"


온통 향을 내뿜으며 은목서 나무가 묻고, 나는 답한다


"물론, 그렇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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