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깊어지면서 여름 향기가 사방을 큰 진폭으로 울리며 퍼져 나간다. 코를 킁킁거리며 넘치는 향기를 몸으로 가져오는 작업을 하다 보면 여름의 한낮도 짧게 여겨질 때가 많다.
여름 향기를 맡는 일은 개망초나 금계국 같은 여름꽃들을 애정 하는 걸로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여름향기란, 나무들이 연 초록에서 점점 더 색을 더해 진초록으로 바뀌어 가며 뿜어내는 나뭇잎들로부터 비롯되곤 한다. 푸름을 더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잎맥을 따라 물을 끌어올리고 나르는 그들의 수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아야 하겠고.
생각해 본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나무'를 바라다보게 됐을까? 바라보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랑하고 교감하게 됐을까? 세월을 지난하게 견뎌낸 감나무와 오동나무가 제법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하던 유년의 집, 거기에서부터 였을까.
대학 캠퍼스엔 언제나 신록이 무성했다. 푸름의 그늘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고, 특히 한 여름이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강의동은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보색의 대비로 한껏 더 돋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푸름' 그 자체라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나는 나무들의 '싱그런 푸름'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의 삶이 햇살을 받은 윤기 나는 잎들을 닮았던 그때, 꽃이 피고 지거나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제 옷을 갈아입는 일 따위는 나와 무관한 것이라 여길 때가 태반이었으니. 기껏 목련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때면 잠시 속울음을 우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런 내게 어느 날 나무는 생명의 근원, 원시의 힘으로 진중하게 다가왔다. 시작은 한통의 짧은 메일로부터였다.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지금 귀농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 농부의 삶을 살고 있을 거야"
대학 학보사 문화부 선배의 전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배는 한 메이저 신문사에 적을 두고 서울에서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소식을 가끔 다른 선배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워낙에 시골 출신이기는 하지만 선배의 귀농 선언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입성하기 어렵다는 메트로폴리탄에서의 삶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던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선배는 바로 위 기수들이 없어 수습기자 생활을 어렵게 이어가던 내게 다정한 눈빛과 상냥한 말투로 이것저것을 가르쳐주던 문화부 부장이었기에 제도적으로는 멀었지만, 심정적으로는 가까울 수밖에 없는 다소 어정쩡한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차였다.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었고, 늘 무언가를 생각하는 안경 너머 눈망울에선 가끔 누렁소의 잔영이 비치기도 했었다. 현실에 몸을 담고 있지만 발은 늘 다른 곳을 탐하고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 그래서 가끔은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뒷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 선배였기에 뒤늦은 귀농 선언은 마치 오래도록 기다려오던 편지이거나,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된 편지 같기도 했다. 메일을 열어본 후 한참 동안 첨부된 파일이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선배의 지난 세월과, 수많은 갈등과, 자신을 향한 채찍질과, 슬픔과 고통이 뒤섞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다, 드디어 첨부파일을 열어 보았다.
김광석의 노래 '나무'였다. 같은 문화부 출신이라 어느 정도는 감성의 결이 비슷한 점이 있단 걸 알았지만 선배도 김광석의 노래들을 좋아하는지는 이때 처음 알았던 거 같다. 김광석을 그렇게 매일 같이 들으면서도 자주 눈길이 가던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날, 파일을 열고 창문도 연 채로 여름 향기와 함께 듣게 된 '나무'는 완전히 다른 노래로 내게 다가왔다.
든든한 몸과 무성한 잎을 가진 나무처럼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눈부신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소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소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움직이지 않아도 좋소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소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소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 하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 하오
-김광석/ 나무 가사 전문
참 많은 노랫말들이 김광석을 통해 재해석돼 새로운 생명을 얻기도 하고, 살아나 가슴속에 젖어들어 울음 울게 하지만 이 노래 '나무'의 가사들처럼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생동감을 가진 노랫말들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라는 자존감,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겠다는 자기 확신, 그러면서도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치겠다는 순한 마음을 동시에 전해주며, 언젠가는 나도 나무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서게 한다. 찾는 이도 없고 기억해주는 이도 없으며, 더해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한 자리에서 生과 死를 맞지만 이 얼마나 결연하고도 웅장한 꿈의 전시인가!
선배가 짧은 전언과 함께 이 노래를 첨부한 이유와 그 의도를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거 같다. 회색의 빌딩 숲을 떠나, 부대끼고 서걱거리는 사람의 숲을 뒤로 하고 진짜 나무들의 숲으로 가고자 했던 선배의 의지가 노래 한 곡으로 완전하게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 이후 나무는 내게 참 그윽한 숨결을 지닌 오랜 친구의 의미로, 완성해야 할 어떤 그림의 밑그림으로 여태 곁을 지키고 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中
선배는 스스로 나무가 돼 오늘도 아름다운 그늘을 만들어가며 살고 계실 거다. 매일을 한결 같이 이 시구절을 낭송하며, 김광석의 노래 '나무'에 나오는 가사처럼 삶의 황홀경에 자주 도달하는 생을 살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부지런한 농부의 삶과, 푸른 시인의 삶을 잘 조율해 가며 굵직한 나이테를 한 땀 한 땀 자신의 심장에 아로새기기도 할 것이고,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하늘에, 맑은 공기에 뿜어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 속, 수십 년째 햇볕에 검게 그을린 그의 피부가 어느새 견고한 나무껍질을 닮아 있어 참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