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강제성도 없지만, 땅거미가 거실 안쪽까지 몰려드는 시간쯤이면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걸으러 나갈 채비를 한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고갈돼 있을 때, 받아 든 운동처방이기도 하고워낙 걷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다. 가벼운 운동복과 간편한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면 묵었던 하루의 감정이 어느새 풀어질 준비를 하는데, 그렇게 동쪽에서 출발해 서쪽 방향으로 움직이며 하루 동안 동네의 풍경들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세찬 비에 꽃잎을 떨군 능소화나 꽃댕강나무 꽃잎들의 산란엔 한참을 멈춰 서서 묵도를 보내기도 한다.
전나무 군락을 초토화시키는 왜가리 떼의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다 보면, 서쪽 하늘의 얼굴이 이내 나타난다. 매일 비슷한 시각에 만나게 되는 얼굴이건만, 신기하게도 똑같은 표정을 본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날은 맑디 맑은 아이의 웃음을 보여주다가 요즘처럼 우기의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을 땐, 악마의 눈꼬리를 닮아있어 은근히 미움을 싸기도 한다. 한판의 변검 공연을 보는 듯 그 짧은 순간에도 그야말로 변화무쌍이다.
변화무쌍 그 자체, 서쪽 하늘의 얼굴들
이틀 전, 눈앞에 펼쳐진 서쪽 하늘은 갓 시집온 새악시를 닮아 있었다. 홍조 띤 얼굴엔 수줍음과, 터지기 직전의 한껏 물오른 도발이 공존하고 있어 가슴을 두근거리게도 했다. 나는 속절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잊고 있었던, 이제는 다시 살려낼 수도 없을, 화려했던 내 정점의 한 시절을 직면한거 같아서 말이다.
해가 떨어지기 바로 직전의 서쪽하늘만큼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자연의 모습이 있을까? 그 시간의 장관을 위해 어쩌면 태양은 하루 종일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설익은 동쪽 하늘은 말해줄 수 없는 소멸의 아름다움,농밀한 걸음걸음의 궤적과, 生보다는 조금 더 死에 가까운 삶을 호위하는 장엄함.
매일 마주 보는 그 하늘에서 나의 현재를 읽고, 나의 삶을 긍정한다.아쉬움과 환호 사이에서 오늘의 나를 직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왜 철학자들이 걸으며 단 하나의 진리를 탐구하고 고갱이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지 느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