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방송국을 떠나 공식적인 일자리에서 모두 물러나게 되면서, 나도 은퇴 후 버킷리스트란 걸 작성해 보았었다. 우선은 방송작가라면 누구나 겪었던 '여행에의 갈증'을 신나게 해소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내 주변 이웃들에게 '읽고 쓰는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일을 하면서는 양껏 마음먹은 대로 행할 수 없던 것이었기에 늘~갈망의 흔적으로 자리 잡고는 무시로 가슴을 무겁게 흔들곤 했다.
처음의 버킷 리스트는 의외로 쉽게 이뤄졌다. 여행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그동안 떠날 수 없었던 시간적 제약이 해결되자 그야말로 봇물이 터지듯 여행의 기회도 순식간에 밀려왔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떠났고, 가끔은 동네 구석구석을 여행자의 눈으로 훑어보기도 했다.
아이와 약속했던 둘만의 해외여행도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으며 여행을 하는 내내, 자유인의 모습으로 회귀한 내 자신이 왠지 사랑스럽기조차 했다.
태생적 노매드의 근원을 탐구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여행을 하지 않는 동안,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우울과 불안에 힘껏 대항하며 진을 빼는 날이 소리 소문 없이 차곡차곡 쌓이는지도. 그렇게 한 2년 여가 무가치하게 지나버린 것이다. 틈틈이 독서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고, 명상으로 마음을 다지기도 했지만 알맹이가 빠진 과실처럼 일상은 늘 흐물거린 채로 마감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대망의 버킷리스트 두 번째 항목을 달성할 기회 말이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예상치 않게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시도조차 해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그것도 '공공 프로젝트' 사업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이 있나! 오래, 진심으로 열망하면 어떻게든 이루어진다더니 선의는 어디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받아들여지게 돼 있나 보다.이렇게 의외의 방법으로도.
프로젝트 명은 '공공의 뉴턴 사과 프로젝트', 강좌명은 '일상에서 길어 올린 글쓰기'로 정해졌다. 매일같이 생방송에 나갈 원고를 쓴 라디오 방송작가만큼 일상 글쓰기를 전하기에 적합한 인물은 없다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든 다른 시선으로 보고 글을 엮어냈던 수십 년의 내공은, 비록 어깨를 한껏 들썩거리거나 엄지 손가락 두 개를 당당히 척, 하며 내세울 만큼은 아니어도, 머리와 가슴이 기억하는 '쓰기의 힘'으로, 그 동력을 제공할 잔근육으로 자리하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현업을 유지하고 있을 때도 종종 특강으로 강단에 서곤 했으니까.
겨우 4회 차만에 대단한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수강하시는 분들이 그들의 일상에 숨어 있는 보물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스쳐 지나쳤던 일상의 언어가 손 끝에서 문장으로 완성되는 기쁨은 덤일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제자의 글이 스승의 결을 닮아가면 둘 다 망하는 거라고. 적어도 이 강좌를 통해 각자가 지닌 고유한 목소리, 색깔들을 발견하고 발현하는 방법만은 꼭 얻어가셨으면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통해 나도 살고, 그들도 사는 '공생과 공존'의 한 장을 펼쳐나가기를 또한 소망한다.
글쓰기란 일련의 고통을 통해 그 존재 가능성과 생명력을 더 높여가는 법이다. 글쓰기의 과정에서 대면하게 될 낯선 자신을 단련해내고, 때론 낙담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앞으로 밀어내는 작업을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흔한 얘기지만
모두들 멋진 결과로 과정을 입증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나는 그저 기대와 그득한 설렘을가지고, 우리의 일상을 탐험하고 글로 구현해낼 수업 준비나 즐거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