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푹푹 찌는 찜통더위라 해도, 그 찜통더위 탓에 몸이 절인 배추처럼 흐물거린다해도, 미룰 수 없는 일 이하나 있으니 바로 냉장고 비우기다. 아이가 한 달여 방학을 맞아 본가로 내려오게 되면 평소보다 이것저것 장을 많이 볼 수밖에 없어서 맘을 굳게 먹고 김치냉장고까지 깨끗이 비워내기로 한다.
사실, 김치 냉장고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언제부턴가 여기엔 김치보다는 상하기 쉬운 채소나, 한번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나 곰국, 콩이나 잡곡 등속이 자릴 차지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그 때문였을까, 가장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통 하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두어달여.
김치 냉장고 속, 숨바꼭질하는작은 아이처럼 숨어있던
오이지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소금으로 절인 거라 방심하고 있던 내게 시위라도 하듯 당당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얗게 올라온 곰팡이를 보며, '어떻게 담근 오이 진데' 싶은 아쉬운 마음 하나와, '요즘 많이도 게을러진 거로군! 더위 탓을 하며'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돌보지 않으면 이내 제 모습을 잃고 마는 것이 어디 냉장고 안에서 처량히 시들어가다 발견된 오이지
뿐이겠는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궤도이탈하지 않고 앞으로 향해가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지 않으면 때로 구차하다 싶은 조각난 삶조차 각양각색의 곰팡이에 스멀스멀 잠식당해간다는 걸, 모르지 않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해 담갔지만 아깝게 버려야 하는 오이지처럼, 생의 영역에서 잘라내거나 덜어내는 아픔을 겪을 때까지 해결해야할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팡이 핀 오이지의 흉물스러운 모양새와 퀴퀴한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든 하루다.
새삼 세상 모든 것들이 스승이란 생각으로 숙연해진건, 그나마 가사노동으로 흘린 땀이 준 선물이라 치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