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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절 생각나는 눈물 나게 매운 그 맛

대구 10味 그 두 번째/ 매운 찜 갈비

by 초린혜원

연애의 맛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맛일까? 초콜릿처럼 달콤 쌉싸름한 맛, 한 여름 빙수처럼 시원하면서도 상큼한 맛, 그것도 아니면 동공이 갑자기 확대되고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맛,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것 말고도 얼추 열 가지는 넘을 듯하다. 연애의 맛이라는 건, 한 가지로 규정할 수도 없고 섣불리 규정해서도 안 되는, 각자가 가진 감정에 따라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칭 타칭 '연애 도사'인 나여서일까, 위에 열거한 숱한 맛들을 여러 번의 연애를 통해 경험해 봤지만, 어쩐지 남편과의 짧은 연애기간 동안 내가 느낀 연애의 맛은 '매운맛'으로 귀결되고는 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만났기 때문에 불같은 연애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톡 쏘는 매운맛으로 그와의 연애를 떠올리게 됐을까? 원인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와 연애할 때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 바로 '매운 찜 갈비' 때문이었다.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매운 찜 갈비'( 꼭, 갈비찜이라 하지 않고, 찜 갈비라 부른다)를 소개할라치면 매번 내 연애사의 한 토막을 들려주고는 하는데, 연애할 때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중 하나가 매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연애기간 내내 이 매운 찜 갈비를 가장 많이 먹었다고 하면 다들 눈을 휘둥그레 하게 뜨고는 " 왜 그랬대?" 반문하고는 한다. 거기엔 어떤 심각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심플하게 '매운 찜 갈비'로 유명한

동네(동인동이다)에 남편의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구의 도심인 그곳에는 시청이 가까웠던 이유인지 몰라도 오밀조밀 '매운 찜 갈비'를 주 메뉴로 하는 식당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워낙 밖에서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려니와 매운 음식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한 번은 먹어볼 만할 거라는 남편의 말에 이끌려 발목이 꽤나 시렸던 초겨울 무렵 그곳을 처음 찾게 됐다.


갈비찜이라면 보통, 간장의 짠맛과 꿀이나 설탕의 달콤한

맛을 베이스로 하면서 엄청나게 정성을 기울여 단짠의 조합, 그 극강을 이끌어내는 특별한 음식이라 생각하고 있던 내게 눈앞에 나타난 '매운 찜 갈비'는 아주 생소했다. 우선은 마늘이 과하게 들어가 싸~한 냄새가 그득했고, 갈비에 붙어 있는 살은 조금 빈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기대와는 달랐던 비주얼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니 남편은 예의 무뚝뚝한 한 마디를 던지는 것이었다.


"함 무(먹어) 봐라, 쫌 색다른 맛이 느껴질끼라."


"색 다른 맛? 나는 너무 매울 거 같은데."


"아이다, 보기보다 안 맵다"


보기보다는 덜 매울 거라는 남편의 말은 첫 갈비를 입안에 넣을 때,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고춧가루는 둘째치고 마늘 특유의 알싸하고 매운맛이 혀끝을 탁 쏘면서 선전포고를 하는데,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매운맛이 몸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걸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와, 씨, 이게 안 맵다고?" 순간, 거친 말이 정제되지도 않고 입 밖으로 나와버리는 거였다.

동인동 매운 찜 갈비

그런 내 꼴이 우스웠는지 남편은 얼굴을 구겨가며 큰소리로 웃는다. 매운맛에 예상치 못한 비웃음이 더해지니 그 세기는 이내 증폭이 돼 버린다. 그렇다고 입안에 있는 음식을 뱉어내지는 못하고 꾸역꾸역 씹어 삼키는데, 어라 이게 웬일인가? 씹을수록 가늠하기 힘든 감칠맛이 함께 느껴지는 게 아닌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갈비찜이 가진 내력을 한 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아주 무시무시한 맛의 향연, 매우면서도 고소한 맛! 그래서 그 맛의 느낌을 조금 더 길~게 끌어가는 맛이라고나 할까. 양푼이에 담겨 있던 찜 갈비 2인분 중, 내게 할당된 양을 눈물 콧물 빼며 먹고 나서, 남은 양념에 밥까지 쓱~쓱 비벼 먹었더니 남편은 아주 거만하게 '거봐라, 내가 뭐랬노!'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매운 찜 갈비'를 접한 그 이후, 음식에도, 삶에도 이런 반전과 혁신이 존재하는 것이 매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모험심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궁금함을 자극하는 맛, '익숙한 맛이 가장 맛있는 것, 좋은 것'이라는 편협을 깨버리는 음식, 그리고 삶의 자세를 15도쯤 고쳐 앉게 만든 음식, 그 음식이 내겐 '매운 찜 갈비'였던 거 같다. 이후에도 종종 이 매력적인 한방을 지닌 음식이 생각날 때면 , 남편 사무실 근처로 가서 "오늘, 매운 찜 갈비 묵자!'라는 주문을 했던 거 같다.


하루의 일을 마무리한 늦은 시간에 둘이 마주 앉아, 위장을 자극하는 매운맛에 몸을 내 맡기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도 나눴던 거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지금은 거의 기억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애써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와 산 세월을 따져보니 그 안에는 '연애'의 맛들을 추억하게 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현실이라는 프레 임안에서 큰 오차 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신산스러워질 때면 아주 오래전 아직은 '남편과 아내'가 아닌, 오직 두 사람의 이름으로 마주 앉아 매운 찜 갈비의 맛을 중화하기 위해 곁들여진 물김치를 그릇째 마시며 웃고 있던 우리를 떠올려 본다. '연애의 맵고도 감칠맛' 나던 시절이 그리워서라기 보다는, 싫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도 도전해보곤 했던 그 사랑스러운 마음이 내게도 있었다는 안도감, 그걸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굳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치부하지 않더라도 함께 했던 많은 것들이 그저 즐겁고 희망찼던, 어떤 소중한 순간을 기억에서 꺼내 스스로에게 전시해 보이는 것이기도 할 테고.


고기를 멀리하는 식습관을 가지게 되면서 '매운 찜 갈비'는 이제 정말 내게는 다시 맛보기 어려운 '추억의 음식' 이 돼 버렸지만, 혀끝에 남아 있는 기억은 놀라운 것이어서 알싸한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의 앙상블로 연주되던 그 고유의 맛만큼은 추억으로 끝내 넘어가지 않은 채 '연애시절' 그 어디쯤에서 서성이며, 자주 나를 불러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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