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가 다가오면 모든 의식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련한 한 지점으로 빠르게 달려간다. 온몸에 있는 핏줄이란 핏줄은 모두 다 푸른 창포 색깔을 띠기 시작하고 발바닥을 간질이는 유월의 초여름 바람이 좋아서 자꾸만 옅은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옛날 사람 취급받기 딱 좋겠지만 단오가 내 의식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그 어떤 묘한 느낌이 있기에 올해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거 같다.
요즘에야 풍습을 이어가려는 몇몇 지방의 '단오제'를 제외하고는 단오라고 해서 온 국민이 의식적으로 동일한 풍습을 행하는 일이 드물지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이 '단오'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큰 명절이어서 단오 아침이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 윗동네에 씨름 장사 뽑는 대회를 하니 구경 가자, 놀이터 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를 타러 간다, 여기저기서 어른ㆍ 아이 막론하고 분주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중에서도 내 어머니의 '단오 마중' 은 단연 '수리취떡'으로 시작해, '수리취떡'으로 끝나곤 했다. 이른 새벽 누구보다도 먼저 부지런히 새 단오를 맞은 그녀는 외가에서 얻어온 창포삶은 물로 머리를 감은 다음, 역시나 외가 뒷산에서 캐어와 고이 잘 저장해둔 쑥을 듬뿍 넣어 떡을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내 생일 즈음 만들던 쑥반 쌀가루 반의 떡이 아니라 쑥이 80에 쌀가루는 20 정도인 그야말로 진정한 쑥떡이었다.
"엄마, 단옷날 만드는 쑥떡은 와 뚱그리한데?(둥근데?)"
"아, 와 뚱그리 한가 하마는...그기, 모르기는 몰라도 이 떡 맹키로 둥글둥글 잘 살아라꼬 그런 거 아이겠나?"
아주 어린 시절이었으니, 또한 지금처럼 검색 기능을 사용해 말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경험치가 나보다 훨씬 높은 엄마의 말이 내겐 곧 백과사전이었다. '아~단옷날에 먹는 쑥떡이 둥근 거는 둥글둥글 잘 살아라는 기원이 담긴 것이었구나' 한참을 클 때까지 그렇게 믿을 수밖에!
단오를 '수릿날'이라고 달리 부른다는 것과, '수리'가 우리말'수레'를 뜻한다는 걸, 그래서 단오에는 수레바퀴를 닮은 둥근 떡을 해 먹는다는 유래를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알게 됐을 때, 그 허탈함이라니! 아무튼 어린 시절 단오에는 쑥 외에도 수리취로 절편을 만들어 이 집 저 집 나눠먹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엄마의 뚱그리하면서도 두툼한, 쑥 뭉치인지 떡인지 모를 수리취떡은 언제나 산을 이룰 만큼 풍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엄마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파랗게 데친 쑥을 곱게 찧은 다음, 거기에다 맵쌀가루와 약간의 찹쌀가루를 섞어 쪄낸 것과 합치고 안반에 있는 힘껏 친다. 그런 다음 하나씩 분량만큼 떼내, 크고 두툼한 엄마 손으로 둥글게 만든 다음 꾹, 꾹 누르면 단오 수리취떡이 완성된다. 물론 참기름을 발라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단옷날 아침, 부엌에서는 익숙한 쑥향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더해져 코끝을 오래 자극하곤 했다. 여전히 낮고 어두운 부엌은 세월을 그대로 안고 있어 군데군데 손볼 곳 투성이었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던 산더미 같은 단오떡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손수 만든 떡보다 더 둥근 얼굴로 환히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 덕분에 '부자가 별거겠어, 우리도 이만하면 부자네'라는 위로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숫기가 없어 온 동네 아이들 다 순서대로 돌아갔던 그네를 뛰지 못해도, 다가 올 더위를 대비해 부채를 식구수대로 만드는 재미를 누릴 순 없어도 왠지 단오가 참 좋았다. 하여 어린 마음에 단오는, 뚱그리한 쑥떡처럼 모나지 않은 행복으로 가득한 날이라 비밀스레기록하고 싶었다.
창포물 대신, 창포 향을 첨가했다는 샴푸로 머리를 깨끗하게 감고, 엄마의 정성이 배인 수리취떡이 없어 시장에서 사 온 쑥떡과 얼음을 띄운 오미자차 한잔 만들어 나만의 소박한 '단오 의식'을 치른다. 엄마의 부지런함과 경건함엔 발끝도 따라갈 수 없지만, 단옷날 신 새벽 가족의 삶이 더 이상은 상처받지않고 둥글게 이어지길 바라며 떡을 만들었을 당신의 염원만큼은 고스란히 내 이력으로 전승하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저녁엔 달빛마저도 그때 당신의 마음을 닮아 투명하고 푸르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