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오면 여기저기서 잔치 소식이 들려오고는 했다.'잔치'라는 말에는 질펀한 풍성함이 녹아 있다. 요즘의 결혼식이나 돌, 회갑연, 칠순 등을 축제처럼 치르는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이를테면 온 동네가 들썩들썩 거리는 흥겨움이 예전의 잔치에는 있었다. 아마도 먹을거리가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잔치라도 열리는 날에는 음식 나눔이 당연한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부족했던 단백질 음식(고기)을 조금이나마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동네는 전에 없이 떠들썩한 기운으로 며칠씩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 어어지곤 했었다. 잔치를 치르는 형식을 '소 한 마리를 잡네, 돼지 한 마릴 잡아도 모자랐네.' 하는 건 빈 말이 아니었던 거다. 그야말로 온 동네 식솔들을 배부르게 하는 그날이 바로 잔칫날이었으니.
누구네 집에 몇 월 며칠에 잔치가 열린다는 예고가 동네에 전해지기라도 할라치면 그때부터 우리 삼 남매의 내장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곤 했다. 마음이 먼저 부풀어 올라야 할 텐데, 내장이 저 먼저 알고 부풀어 오르는 건 순전히 엄마의 '돼지고기 두루치기'의 맛 때문이었다. 엄마는 잔칫날이면 꼭 상에 오르곤 하던 삶은 돼지고기로 두루치기를 하곤 했는데, 그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이런저런 음식을 두루두루 다 잘하는 엄마였지만, 특히 이 '잔칫날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육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입맛을 다실만큼 맛이 있었다.
"엄마. 저 끄티(끝쪽) 사는 쌍둥이 집 할무이 칠순 잔치 내일 있다 카더라, 그라마 우리 내일 돼지고기 두루치기 먹을 수 있재?"
한껏 들뜬 나는 잔치에 대한 기대감보다, 그 집 할머니가 당시로서는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셔서 칠순잔치를 거하게 치른다는 기쁜 소식보다, 잿밥인 '삶은 돼지고기'에 시선이 쏠려 있었다.
"아이고, 야이야..벌씨로 돼지고기 타령이고! 고마 칠순잔치라가 손님도 어마어마할낀데, 돼지고기 쪼가리나 좀 얻어올 수 있을랑가 모르겠다....."
엄마의 말은 불확실성으로 끝이 그렇게 흐려지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큰 욕심이 없이 살았던 엄마이지만 적어도 자식들 먹일 음식에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를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어떻게든 돼지고기와, 떡 몇 조각과 약과 같은 주전부리들을 반드시 가져간 보자기에 싸서 돌아올 것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매번 어떤 잔치가 열릴 때마다 엄마의 손에 들려온 묵직한 먹을거리들에 환호하고는 했었으니까.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보자기는 한눈에도 묵직해 보였다. 일손을 도우고 얻어온 칠순 잔치음식은 왠지 더 푸짐해 보이기까지 했다. 동네에서도 제법 잘 사는 축에 속했던 집의 잔치음식이었으니 그럴만했다. 하루 종일 허릴 펼새 없이 일했을 텐데도 엄마는 잔치 음식이 상하기 전에 부지런하게 저녁상을 준비하고는 했다. 그 부지런함에 배어있었을 약간의 움츠림을 그때는 왜 못 읽어 냈을까.
아무리 잔치라고는 하지만 유독 엄마의 음식 보따리가 왜 다른 집의 그것보다 불룩했었는지, 그렇게 음식을 챙겨 오면서 자꾸만 잔치집의 주인들에게 억지웃음을 웃었는지를 철이 덜 들었던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고, 그랬기에 그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때마다 채근했던 것이다. 눈치가 백 단은 못 돼도 오십 단쯤은 됐던 나였는데.....
자존심이 굉장히 강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난했던 엄마는 그렇게 남보다 조금 더 챙겨 온 돼지고기로 '두루치기'를 만들어 주셨다. 이미 한 번 삶은 돼지고기로 만든 두루치기가 무에 맛이 있을까, 의심하지 마시라. 기름기가 쏙 빠져서 오히려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 물론 나는 한참 자라서까지도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생고기로 만든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저 잔치 후에 얻어온 삶은 돼지고기로 후루룩 먹기 좋게 볶아 먹는 것이 '돼지고기 두루치기'의 유래인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엄마의 돼지고기 두루치기에는 반드시 신 김치가 들어가야 했다. 신 김치가 기름기 빠진 돼지고기의 부족했던 무엇을 빈틈없이 채워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신김치를 국물 조금과 함께 엄마 표현대로라면 '드글드글' 볶다가, 썰어 놓은 대파와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고춧가루, 다진 마늘, 조미료 약간을 넣고는 다시 볶는다. 이때는 이미 돼지고기가 익었기 때문에 섞는다는 느낌으로 살살 볶아야 한다. 그리고 불을 끄고 참기름 한 바퀴, 끝.
레시피랄 것도 없이 세상 간단한 음식이다. 재료가 충분하지 않아도, 다소 모자란 것이 있어도 항상 최상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엄마의 솜씨 비결이 몹시도 궁금해서 물어본 일이 있었다.
"엄마, 엄마는 같은 재료로도 우짜면 그렇게 음식 맛을 잘 내는데?"
"그기 궁금했더나? 비결은 딴 거 없다. 재료 아끼지 말고 팍팍 쓰고, 정성을 기울이면 된다. 음식 먹을 사람 생각하민서.. 마, 그리고 엄마 손을 함 봐라 음식 한 번 잘하게 생깄잖아"
과연 그랬다. 어떤 음식이든 하나를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엄마였다. 얻어온 잔칫집 돼지고기로 만든 '신김치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상위에 올라오면 그 어떤 일류 음식점의 단품요리보다 맛있었다. 두툼하고 마디가 굵은 엄마의 손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몇 대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음식이 곧 엄마고 엄마가 곧 음식인 삶을 참 오래도 살아오셨다. 아마도 거기엔 '삼 남매의 성장'이라는 절대 함수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의 이토록 맛있는 '신 김치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나는 이후오랫동안 먹질 못했다. 어린 시절 병약했던 나는 입도 짧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심한 알레르기가 생겨버린 거다. 너무 심한 나머지 돼지고기나 닭고기의 냄새만 맡아도 두드러기가 돋고, 입술이 부풀어 오를 정도였으니이를 두고 엄마는 '고기를 많이 먹이지 못해서 그렇다'며 본인 탓을 하셨지만 어디 그렇겠는가, 알레르기의 원인은 명확히 구분해 내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는데 미안함에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는 당신조차 내 앞에서는 고기를 잘 챙겨 먹지 못하시고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드시던 뒷모습이 지금 와서는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마냥 그리울 뿐이다.
나이가 들면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먹고 싶다고 한다. 인생은 어쩌면 어떤 일정기간을 지나고 나면 '레트로'로 지향점이 바뀌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맛에 열광하고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 헤매는 발걸음도 딱 한 때였고,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음식, 그것도 유년에서 청소년기까지 먹었던 가난했던 날의 음식이 어쩐지 슬금슬금 생각나는 거다. 나를 성장시키고몸이든 정신이든 유약함에서 벗어나 강인함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음식, 결핍과 고난이 함께 버무려졌지만 내일을 희망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음식 말이다.
엄마의 손 맛을 그대로 대물림했다고 동생은 내 음식을 평가하지만, 얻어 온 돼지고기 몇 점으로 봄날 저녁 밥상을 마법의 식탁으로 둔갑시켜 버렸던 엄마의 그 솜씨에는 아직 한참 이르지 못함이다. 봄이 깊어간다. 오래전 그 봄이 다시 그리워 먹다 남은 돼지고기 수육 몇 점과 신 김치로 저녁 밥상을 채비한다. 이번엔 엄마의 그 '신 김치 돼지고기 두루치기'의 맛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 시나브로 짙어지는 봄날의 그리움을 양념으로 써 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