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탐험이 취미인 사람에겐 골목에서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 이를테면 맛집이나 베이커리, 카페 등 새롭게 생긴 곳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예전에는 알고 있었으나 한동안 그쪽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가 다시금 들렀을 때 느껴지는 익숙함도 빼놓을 수 없는 행복함이다. 오늘의 기분이 이끈 그곳의 익숙한 장소엔 반찬으로 나오는 '열무김치'의 맛이 워낙 유명한 칼국수 집이 있었다. 해물칼국수나 들깨 칼국수를 먹으러 들렀다가 '열무김치'에 반해서 나온다는 동네 맛집이었다.
이 집의 열무김치는 물김치와 그냥 버무린 김치 그 중간쯤에 있는 비주얼을 하고 있는데, 붉은 고추와 감자를 삶아 으깨 넣어 걸쭉한 국물이 일품이다. 이 '열무김치'를 동네 친구의 손에 이끌려간 그곳에서 처음 먹었을 때, 목 뒤로 약간의 서늘함이 느껴졌었다. 친근하고도 잊을 수 없는 유일한 맛, 바로 엄마의 맛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음식으로는 근동에서 손꼽힐만한 솜씨를 자랑하는 엄마였지만 그중에서도 그녀의 손끝을 거친 다양한 종류의 김치는 더욱 유명했다. 어쩌면 그렇게 두툼하고 투박한 손끝으로 명장도 울고 갈 맛을 내는지, 당장 김장김치부터 시작해서 총각무김치, 얼갈이, 깍두기를 비롯해 주로 여름에 담아 먹게 되는 막김치나 열무김치까지 엄마의 손길을 거치면 배추나 무같은 가장 단순한 식재료가 훌륭한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품격 있는 김치로 거듭나고는 했었다.
사실 감사하게도 엄마의 솜씨를 3분의 2쯤 대물림해서 웬만한 김치는 담가먹을 수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열무김치만큼은 담아 놓으면 종종 풋내가 나거나 이상하게 싱겁거나, 가끔은 또 짜져서 포기한 적이 많았었다. '그래, 열무김치는 진짜 한때인데, 잘 담그는 반찬가게에서 사 먹으면 되지!'라고 선언할 만큼.
엄마는 '면으로 만든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었다. 좁은 의미에서는 '면'이었지만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선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버지가 좋아해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만두와 누른 국수로부터 시작해, 라면 반 국수 반인 '국시기'를 넘어 여름이면 '건진국수'와 '비빔국수'까지 엄마의 면사랑은 그칠 줄을 몰랐다.
특히 여름이 시작되면 일주일에 이 삼일은 면 음식으로 끼니를 이어가곤 했는데, 잔치국수에 물릴 때쯤 밥상에 오르는 음식이 바로 '열무 비빔국수' 였던 것이다. 먹을 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니 함부로 흉내 내지 못하는 맛임을 알게 된, 엄마의 열무 비빔국수.
어린 시절 살던 곳 동네 초입엔 지금은 김광석 길로 유명해진 꽤 큰 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겨우 김광석길 덕분에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인근여러 동네 사람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아주 큰 시장이었었다. 멀리서 버스를 갈아타고 저녁 장을 보러 올만큼 다양한 찬거리들이 넘치는 시장이기도 했고.
그 초입 중에서도 초입엔 우리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젊은 부부가 하던 '채소가게'가 있었는데 부지런하고 싹싹한 부부가 파는 '채소' 들은 꽤 깐깐한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지 늘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그래서 해가 넘어가고 파장할 무렵이면 채소가게엔 배추나 푸성귀에서 떨어져 나온 '시래기' 들이 수북했었다.
문간방 아저씨는 워낙 알뜰한 사람이었기에 이 '시래기' 들도 그냥 버리질 않고 집으로 가져와 엄마를 비롯해 다른 세입자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엄마는 그중에서도 집주인이라는 명목으로 조금 더 성한 '시래기' 들을 건네받고는 했었던 거 같다. 사실 요즘에는 있지도 않을 일이지만 당시엔 이런 나눔이 흔할 수밖에 없었다. 뭐든 귀하고 뭐든 아껴야 하는 시절이었기에 말이다.
그렇게 버려질뻔한 것들로 김치를 담궈내는 엄마의 손길은 뭐랄까, 거의 마법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특히 '저걸로 이런 맛을 낸다고?'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열무김치였었는데, 사실 밥상에 오른 열무김치는 말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버려지기 직전의 것들이었단 걸 그 누구도 모를, 훌륭한 비주얼을 항상 자랑했다.
엄마의 열무김치는 물김치와 그냥 김치 사이에 존재한다. 아마도 성한 것들로 담는 김치가 아니다 보니 나름 묘책을 부린 김치라 할 수 있겠다. 굵은소금으로 아주 살짝만 절인 열무와 팔팔 끓여서 식힌 물, 곱게 갈아 놓은 붉은 고추, 곁들일 양파 조금과 간 마늘 듬뿍. 이것이 엄마의 열무김치에 들어가는 재료의 전부였다. 아, 남은 하나가 바로 엄마의 열무김치의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여름이면 그래도 흔한 게 만날 수 있는 식재료인 감자를 삶아서 으깨 넣는 것이다. 사실 으깬다는 표현보다는 주물럭거려 넣는다는 표현이 더 맞기는 하겠지만.
그런데 이 비법이 기가 막힌 열무김치의 맛을 제대로 구현해주는 것이다. 감자에서 나온 전분기가 밍밍할 수도 있는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어주는가 하면, 고춧가루 대신 곱게 갈아 넣은 붉은 고추의 색감과 어울려 눈과 입을 동시에 자극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무심한 듯, 아닌 듯 엄마의 손길을 거친 '열무김치'는 똑같은 채소로 담근 다른 엄마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맛을 지니고 있어서 국물이 자박한 열무김치가 알맞게 익어갈 무렵이면 여기저기서 "아지매 열무김치 좀 주소, 비빔 국수 해 묵구로(먹게)" 라는 말이 들려오고는 했다. 혹자는 엄마의 레시피를 전수받아 그 맛을 내보려고 하다가 번번이 실패하고는 양푼이를 들고 열무김치를 얻으러 오기도 했고.
여름이면 열무김치와 육수를 이용해 '열무 물국수'를 말아먹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비빔 양념장이 제대로 들어간 '열무 비빔국수'를 더 선호한다. 맛있게 익은 '열무김치'만 있으면 세상 간단하고도 입맛을 돋우는 음식 이어서이기도 하고, 가장 하찮은 재료들로 최고의 맛을 이끌어낼 줄 알았던 엄마의 모습을 그릴 수 있어서이다. 국수를 삶을 때면 항상 4인 가족인데 10인분은 삶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몫까지 나누었던 엄마의 넉넉한 마음, 그 마음이 생각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당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열 부자 부럽지 않다고 만면에 웃음을 띠던 그 얼굴이 때마다 그리워져서일지도.
한 가지 음식에 담긴 단 하나의 의미와 추억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동네 맛집의 '열무김치'를 만난 순간 깨달았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엄마 손맛에 가까운 이 맛은, 그 시절 우리 가족이 지나왔던 숱한 일상들을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 놓더니, 이내 가슴언저리께를 뻐근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것이 살짝 알싸한 맛 끝에 딸려오는 숙성된 열무 본연의 맛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의 저 깊은 저장공간에 자리해있던 따스한 장면들 때문인지는 국수를 삶으며 확인해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