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면 가 닿을까요 내 마음이?

김광석을 듣고, 읽는 밤 2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by 초린혜원

비가 내리면 음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음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힐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바람이 불면 음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바람이 불면 음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김광석/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일부 발췌-



매번 이 노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도입부에서 김광석이 예의 그 쓸쓸한 목소리에다 빛바랜 회색을 덧칠하고는 ‘비가 내리면.. ..’이라고 노래의 포문을 열 때 면, 가슴으로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동물원 초기의 감성이 ‘거리에서’와 더불어 가장 잘 드러난 곡이라 감히 얘기하고 다니기도 했다.

분지의 한낮이 여전히 뜨겁고 쨍쨍한데도, 가을의 숨결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 싶으니 다시금 이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는 중이다.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의 가을쯤에 도달해서인지 이 노래의 가사를 예전과는 달리 더욱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 데, 아뿔싸! 어렸을 때는 놓쳤던 굉장한 ‘자기 성찰’ 이 담겨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분명 이 노래를 만들 즈음의 김창기는 20대였을 터인데, ‘서글픈 상념’과 ‘시간의 숨결’ ‘안일한 만족’ ‘허위의 길들’ 같은 엄청난 사색 후에나 창출할 수 있는 표현들을 가지런히 곡 속에 배열해 놓고 있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군!’ 하고 감탄하게도 된다.


물론 이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가사들은 ‘흐린 가을 하늘’이라는 절묘한 전제 속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고, 김광석의 목소리로 울려 퍼졌기에 조금 더 그 메시지가 명료해졌지만.


가을이 오면 누구나 조금은 감상에 젖게 된다. 계절이 데리고 오는 이 귀하디 귀한 감수성을 애써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바람이 선선한 가을 저녁,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연속으로 울리게 해 둔 다음, 하루치의 삶을 꺼내보며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보아도 좋겠다.


지금의 삶이 예전에 꿈꾸던 그 삶이 아닐지라도 뭐, 어떤가! 우리가 띄우는 각각의 편지가 이미 하늘 어디쯤 근사한 집을 짓고 사는 누군가에게 닿을지도 모를 일이니.


그리고 조금 더 운이 좋다면 온통 주름진 얼굴로 ‘오늘도 참~~ 수고했어요.’라고 위로해주는 김광석의 나직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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