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매일같이 보는 건 아니지만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날들이 있단다. 3월 3일!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야.
‘3’이란 꽉~차 보이는 숫자를 좋아하다 보니 그 ‘3’이 나란히 둘인 오늘은, 왠지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신나는 일이 연이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해.
생각해보면 엄마도 이만큼 살았으니 이 3월 3일을 쉰 번 이상 보냈던 것인데, 그때마다 바람처럼 좋은 일이 있었던 가에 대해서는, 기억을 몽땅 소환해 봐도 정확히 확인하기란 힘들지 않을까 싶어.
아무튼, 이제부터는 어쩔 수 없는 봄이겠지? 햇살에 조금씩 단물이 들어 낮이 시나브로 환해짐을 느껴.오늘은 마침 날도 온화하니 따뜻한 것이 ‘외출’의 유혹이 넘실거렸지만, 이런 날 창으로 드는 봄볕을 독서 등 삼아 읽는 책의 맛은, 갓 구운 빵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의 그 맛보다 더 좋거든......
그래서 자리보전했단다.
최근 다시 읽고 있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 북.’ 그, 무거운 내용들이 가끔 어깨를 짓누르긴 했어도, 심각하지 않은, 가벼운 담론들이 더 환영을 받는 요즘 세상에선 이런 고전의 묵직한 문장들로 오히려 힐링 포인트를 얻어내곤 해.
물론 엄마 같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니 너무 괘념 치는 말고. 아! 쓰다 보니 오늘, 3월 3일이 ‘삼겹살’ 먹기를 권장하는 ‘삼겹살 데이’라고 하던 것이 생각났어. 오늘 하루쯤은 정말이지 책을 읽다 지칠 때쯤이면 물 오른 봄 미나리를 곱게 얹은 구운 삼겹살 몇 점 숙성된 장에 찍어 오물오물 오래~씹어 먹어보고 싶구나. 입 안 가득 퍼지는 건강한 봄의 풍미가 지쳐있는 삶의 세포들을 자극시켜줄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러고 보면 사는 게 참 별거 없다 그쟈? 좋은 책, 맛있는 음식, 더해 기억의 소환으로 풍만했던 하루를, 네게 보낸다.
※사진제공/손혜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