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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Mar 25. 2021

층간소음과 싸우는 중

편지, 딸에게

엄마는 늘, 자신이 인내심의 결정체인 줄 알고 살아왔단다. 물론 생애 몇 번쯤은 그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단 걸 느낄 때가 있었지만 요즘처럼 그것이 극대화된 적은 없었을 것 같구나. 바로 ‘층간소음’ 때문이지.


빌라 식 4층 주택을 지어 최고층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결심했을 때, 공동주택에 사는 만큼 어느 정도의 불편과 소음에 대해 짐작도 했었고 나름 각오도 단단히 했었거든. 그리고 지금의 집에서 한 7년쯤은 그럭저럭 조금씩 견디며 살아왔고. 그런데 최근 2년 정도는 ‘층간소음’의 실체와 맞부딪혀 아주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중이란다. 너도 방학 중에 잠시 내려와 경험한 바 있잖아.  요즘은 그 강도가 지나치게 세졌단다. 그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만큼.


러닝머신을 뛰는 일, 슬리퍼도 신지 않고 양껏 쿵쿵 거리며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요즘은 손녀딸인지 목요일 오후에 와서 월요일에 가는 데, 아주 거실을 운동장처럼 활개 치며 다니는구나. 엄마가 정말 화가 나는 부분은 이런 사항에 대해 두어 번 항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 어린 사과는커녕 조심을 하지 않는 윗집 사람들의 태도란다.


몰상식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행위들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망각한 사람들이 굳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사는 이유는 또 뭐고? 몇 달 동안 관리사무소나 이웃사이 층간소음센터에 고발을 할까, 매일같이 고민을 하다가도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또 조금만 더 참으면 되겠지 하고는 오늘까지 이러고 있단다.


누구 말마따나 참고만 있으면 당연시하는 것 같아, 이번 주말에도 계속 소음이 울리면 행동을 개시하려고 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네.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크고 작은 소음들 속에서 마음속 평화를 찾는 건 엄마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할 거 같아.


혹여 우리 딸이 사회로 나와 이런 상황을 맞게 된다면, 불편함을 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가끔은 적나라하게 부딪혀 깨져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싶다. 아무튼 저들(윗집 사람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는 날까지 이번엔 엄마도 멈추지 않을 것이야. 건승을 빌어주렴.     

%커버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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