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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Mar 15. 2021

김밥 싸고 싶은 날

편지, 딸에게

창문을 열었더니 비단처럼 몸에 감기는 봄바람이 훅! 하고 들어오더라. 점심 나절 네가 전화를 걸어올 무렵

엄마는 김밥 만들 준비를 한창 하고 있는 중이었단다. 토요일인 데다, 며칠 전 우연히 tv 화면에서 미역국에다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 없던 식탐이 생긴 거 있지.


네가 서울로 간 이후엔 김밥 쌀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그건 아마도 달랑 식구 살면서 김밥을 두 줄만 싸서 먹기 어렵기도 하고, 문밖만 나서면 가성비 좋은 김밥집이 여러 곳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그래도 왠지 오늘만큼은 도시락을 싸서 봄 소풍이라도 떠나는 양, 김밥을 싸고 싶은 거야. 


속 재료들이야 집에 있는 대로 주섬주섬 준비하면 되는 거고. 아무튼 엄마 또래의 사람들은 이 ‘김밥’을, 여전히 아무 때나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여기기 힘들어. 언젠가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엄마나 이모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 김밥을 제대로 싸간 적이 많질 않았단다.


사실 70명이 넘는 반 친구들 중, 김밥을 싸 올 수 있었던 애들은 10명이 채 안 됐을 거야! 대부분의 아이들은 맨 밥에 반찬을 싸오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걸 삶아서 가져오기도 했었지. 노란 양은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긴 김밥은 어쩌면 그 시절 부의 상징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부러움의 대상이었어.


네가 들으면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그런 시절을 지나오다 보니 이젠 흔하디 흔한 음식이 돼 버린 김밥을 볼 때면 가끔 울컥! 하고 눈물이 가슴에 차오를 때도 있단다. 요즘 아이들은 현장학습 갈 때 김밥보단 다른 걸 싸 달라 주문한다고 하더구나. 한 줄을 제대로 싸기 위해 들이는 정성에 비하면 왠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이 김밥 아닌가 싶기도 하고.

김밥 한개에 담긴 꽉찬 영양

김밥보다는 다른 먹을거리들이 너무 풍부해져 이젠 소풍 도시락에서도 점점 외면받는 게 짠~하고 서글프기도 하단다. 그나저나 매운 어묵조림을 넣은 이 맛있는 김밥을 네게 먹이지 못해서 맘이 불편하네. 햇살과 바람과 커피 향마저 완벽하게 조화로운 이 봄날의 오후, 넌 무엇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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