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곳이 없어 글을 썼습니다

캘리그래피를 만나는 두 번째 계절

by 꼬야책방

# 캘리그래피를 만나는 두 번째 계절

사람들은 50대가 되면 삶이 자리를 잡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제 길을 찾아가고, 직장에서는 중견의 위치에 서며, 모든 것이 안정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시기에 무언가가 텅 비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공허함이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이면 익숙한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났다. 평온하고 안정적인 일상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직원으로만 존재하는 삶.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블로그에서 캘리그래피 수업 안내문을 보았다. 손글씨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글자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신청했다.

첫 수업날, 먹을 가는 냄새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붓을 쥐고 종이 위에 첫 획을 그었을 때,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떨리는 손끝에서 번져나가는 먹물이 마치 오랫동안 꽁꽁 얼어있던 무언가를 녹여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말했다. "글씨는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예쁘게 쓰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을 글자에 담으면 됩니다."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서툴러도 괜찮다는 것을 오랜만에 들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글씨가 떨렸다. 붓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삐뚤삐뚤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붓 끝에서 흘러나오는 선들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천천히', '있는 그대로'라는 단어들을 쓰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관심이 있으면 보인다. 직장 내에 캘리누리 동아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주 목욕일 저녁은 캘리그래피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먹물에 담아 종이 위에 내려놓았다.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조용히. 붓질 하나하나가 내 감정의 결을 따라 흘러갔다.

캘리누리 동아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소중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모두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왔다. 누군가는 퇴직 후 새로운 취미를 찾아서, 누군가는 자식들이 독립한 후 빈 시간을 채우려고. 우리는 글씨를 쓰며 삶을 이야기했다.

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붓을 들었다.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써서 냉장고에 붙여두기도 하고, 좋아하는 시구를 써서 액자로 만들어 걸기도 했다. 남편은 처음엔 무심했지만, 어느 날 내가 쓴 '사랑합니다'라는 글씨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당신, 요즘 표정이 밝아졌어요."

그제야 깨달았다. 캘리그래피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붓을 쥐고 먹을 갈며 종이 위에 마음을 담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시간.

50대의 삶이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캘리그래피가 알려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인생의 어느 계절에서든 새로운 꽃은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꽃은 때로 먹물 향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붓을 든다. 종이 위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 획 한 획 그어가며 나만의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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