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인정하면 타인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냐!
<···아나톨의 작은 냄비>
이자벨 카리에 지음 / 권지현 옮김 / 씨드북 / 2014
달그락달그락.
참 거추장스럽지?
이 냄비 말이야, 정말 우스꽝스럽지 모야. 도무지 내게서 떨어져 나가질 않아.
이 냄비 때문에 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정말 골칫덩이야.
어?!
근데 너도 냄비를 달고 있네?
그 냄비 언제부터 달고 있었던 거야?
오래됐다고?
그런데 왜 그동안 난 그 냄비를 못 봤지? 너를 알고 만난 지가 수년은 됐을 텐데 말이야.
내 냄비도 처음 봤다고?
에이~ 설마.
널 만날 때마다 니가 계속 내 냄비만 쳐다보는 줄 알았는데...
속으로 얼마나 창피하고 속상했는지 몰라. 그래서 내게 제대로 내 모습을 보여줄 수도, 네 얘기에 집중할 수도 없었어. 사실이야.
뭐?? 넌 니 냄비를 신경 쓰느라 내 얘기에 집중을 못했다고?
우리 정말 바보 같다.
너도 있고 나도 있는 이 냄비 때문에 서로에게 이렇게 소홀했다니....
어?! 저기 저 사람들 좀 봐! 다들 냄비 하나씩 달고 다니네. 어떤 건 크고 어떤 건 작고. 어떤 건 머리 위에 어떤 건 가방 속에.
아~~~ 다들 냄비가 있었구나.
다들 자신의 냄비만 신경 쓰느라 남의 냄비는 안 보였던 거야.
아니면 남의 냄비만 신경 쓰느라 자신의 냄비는 보지 못했을지도.
그래. 우리 까짓 냄비 따위 잊어버리자.
많이 불편하고 많이 거추장스럽지만 어쩌겠어.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면 냄비를 감추는데 에너지를 쓰는 거 보다는 어떻게 이 냄비를 잘 써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