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다 Jun 21. 2019

열. 조용히 나의 영혼을 기다립니다.

괜찮아요, 영혼은 돌아올거예요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영혼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현명한 의사의 처방에 따라 도시 변두리 작은 집을 구해, 매일매일 의자에 앉아서 기다립니다. 자신의 영혼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요.

과연 이 남자는 자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영혼은 안녕한가요?

사실 저도 나의 영혼이 항상 나와 함께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 힘겹게 눈을 뜨고 가족들의 아침을 챙기고 저도 정신없이 하루를 준비합니다.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점심시간이 되고 사람들로 가득한 식당에 가서 함께 간 동료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서둘러 오후 일을 처리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습니다. 저녁 시간은 더 정신이 없습니다. '저녁이 있는 일상'은 그저 꿈입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짜증에 똑같이 짜증으로 맞대응해준 게 후회되지만, 미안하다고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녁 식탁에 남겨진 음식을 버리며 문득 굶주린 아이들이 떠올랐지만 죄책감은 1초도 마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지 않을까요? 

나의 영혼이 나와 함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살아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나의 영혼이 온전히 내 안에 있는 채로 하는 말, 행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요. 

나의 영혼은 딸아이의 짜증에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너도 모를 감정들이 훅훅 올라오는 거 알아. 엄마도 니 나이 때 그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너도 모를 감정들을 쏟아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옳지 않아. 짜증이나 화가 나는 감정을 먼저 바라봐. 네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것까지는 좀 힘들다면 잠시 멈추렴. 그 감정이 잦아들 때까지. 쉽지 않겠지만 엄마랑 함께 노력해 보자."

또, 나의 영혼은 저녁을 지을 때 남기지 않을 만큼 적당한 양의 음식을 만들 겁니다. 늘 소량의 음식에 감사하며 먹도록 하겠지요. 어디 음식뿐일까요. 아마 일명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있을 겁니다. 영혼이 저와 함께 한다면요. 

그러고 보니 나는 영혼을 잃어버린 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나의 영혼은 나를 찾아 헤매고 있겠네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외로워지기도 하고요.     


남자, 영혼을 기다리다

남자는 작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영혼을 기다립니다. 아주 많은 날들을요. 

남자는 아주 긴 시간을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많은 생각들이,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잊었던, 잊으려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요. 그러다 영혼을 잃어버린 그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남자는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만납니다. 자신이 외면했던 영혼을요.

그림은 흑백의 낡은 사진 같습니다. 연필로 그려진 세밀화가 어둡고 침울한 느낌을 줍니다. 영혼을 잃어버린 그 느낌, 딱 그거네요. 수풀로 가득한 숲,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공원의 벤치, 어두운 거리를 바라보는 소년의 뒷모습......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의 세상은 천연색을 잃어버린 무채색이겠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그럴까요?     


어느 오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앞에 그가 잃어 버린 영혼이 서 있었습니다. 영혼은 지치고, 더럽고, 할퀴어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영혼은 숨을 헐떡였습니다.    


영혼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림책으로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영혼을 만나고 그림은 색을 찾았습니다. 음침하고 우울한 작은 집의 거실이 환해졌습니다. 작고 큰 초록 식물들이 보이네요. 저는 이 그림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식물들을 키우는 재미에 빠진 저희 집 거실을 보는 것도 같았습니다. 작가는 왜 식물을 그려 넣었을까요? 

다음 장에는 집안이 온통 초록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남자의 작은 집 창밖으로 높이 자라 올라간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아주 멋진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가 느껴집니다. 영혼이 함께하는 것만 같습니다. 


조용히 기다리기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지요. 잃어버렸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잃어버릴 만큼 우리는 다른 무언가에 열중했을 겁니다. 그 무언가가 잃어버린 영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영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안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조용히 나의 영혼을 기다려봅니다. 나의 영혼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시간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것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요.

식물을 기르는 시간을 마련할 수도,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낼 수도,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시간들은 영혼을 지켜내거나 찾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단, 조용히 기다리기를 꼭 함께 해야겠지요.


by ggudaggum.


사계절출판사의 그림책 <잃어비린 영혼>


매거진의 이전글 아홉. 견딜 만큼의 아픔이라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