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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Sep 16. 2024

각각의 이유-7화

최팀장의 고백

최 팀장은 사무실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하늘 아래, 마치 자신의 마음속 깊이 묻어둔 과거의 기억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 기억들 속에는 김지선의 얼굴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 그리고 그녀를 향해 내뱉었던 가시 돋친 말들이 다시금 그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김지선은 최 팀장이 수많은 채무자 중 하나로 마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평범한 채무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복잡하고 얽혀 있었으며, 그 속에서 그녀는 점차 절망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김지선의 부모는 딸의 명의를 이용해 막대한 빚을 지었고, 그 부담은 모두 그녀에게 돌아왔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을 막 넘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최 팀장은 처음 지선을 만났을 때, 그녀의 눈에 드리워진 깊은 피로와 고통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녀는 겉으로는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지만, 눈빛은 지쳐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끝없는 터널을 걸어온 사람처럼 보였다.


"부모님이 남긴 빚을 제가 갚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상담받고 싶어요." 지선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최 팀장이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단지 그녀에게 현실적인 상환 계획을 설명하고, 법적 조치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지선에게 가능한 모든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어두워져 갔다. 마치 그녀의 미래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최 팀장은 언제나 업무를 처리할 때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왔고, 지선에게도 그 원칙을 적용했다. 그러나 그가 그녀에게 냉혹한 현실을 전달할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깊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선의 절망에 찬 표정은 그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날, 지선이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던 날, 최 팀장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그동안신경 써주셔서요."


그 말은 평범해 보였지만, 어딘가 섬뜩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 팀장은 그 소식을 듣고 무너져 내렸다. 그가 감정을 배제하려 했던 것이 결국 그녀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녀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그녀의 절박함을 외면하려 했다.


김지선의 죽음 이후, 최 팀장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죄책감에 휩싸였다.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더라면, 그녀의 삶이 달라졌을까?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녀가 죽지 않았을까?"


이제 최 팀장은 매일 밤 이 질문들과 씨름하며 잠들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이 맴돌았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정의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앞에는 이제 끝없는 어둠만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지, 혹은 영원히 이 어둠에 갇혀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은 김지선의 일만이 아니었다. 1년 전,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사건이 있었다. 폭설로 도로가 마비되었던 1월 중순, 박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날을 최 팀장은 잊을 수 없었다.




1년 전의 일이었다. 폭설로 도로가 마비되었던 1월 중순, 박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박 선배는 내일 일산에 갈 일이 있는데, 하룻밤만 그의 집에서 머물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지점 발령을 받았지만, 숙소를 아직 구하지 못했고, 눈 때문에 찾으러 다닐 수도 없다는 이유였다. 최 팀장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흔쾌히 박 선배를 집으로 초대했다.


최 팀장은 박 선배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본사에서 몇 번 술자리를 가진 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아내가 박 선배를 더 잘 알았다. 둘은 같은 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박 선배가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박 선배는 나이로는 최 팀장보다 두 살이 많았다. 결혼한 지는 10년이 넘었고, 아이도 두 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 주식 투자에 실패해 이혼당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날 저녁, 박 선배는 택시를 타고 최 팀장의 집으로 도착했다. 최 팀장은 박 선배를 반갑게 맞이했고, 박 선배는 눈과 신발의 물기를 털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최 팀장은 박 선배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 지점으로 발령이 난 거예요?"

박 선배는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나도 몰라. 오늘 일 마치고 퇴근하려는데, 내일 바로 일산 지점으로 출근하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왜 하필 일산 지점이냐고요? 박 선배가 사는 인천 지점도 있잖아요."


 최근 본사에서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다. 박 선배가 모시던 오 상무가 불명예 퇴직하면서 박 선배도 그와 함께 밀려난 것이었다. 하지만 인천 지점은 신임 상무 라인이라 발령이 불가능했다고 들었다.


"그래? 뭐,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일 텐데."

박 선배는 큰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최 팀장은 박 선배의 상황이 불안해 보였다. 회사 내 정치에 능했던 박 선배가 이번에는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점장 자리가 공석이었기에 박 선배가 그 자리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신임 지점장이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박 선배는 일찍 일어나 수선을 피웠다. 얼굴에 나타난 피곤한 기색은 어젯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내가 준비한 아침 식사도 거의 손대지 않았다. 정장을 차려입은 박 선배는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었지만, 낡은 구두 끝이 하얗게 바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최 팀장은 박 선배에게 물었다.


"정말, 어느 부서로 발령 났는지 따로 연락 없었어요?"

박 선배는 짐짓 거들먹거리며 대답했다.

"에이! 지점장이라니까."


하지만 최 팀장은 웃을 수 없었다. 최 팀장은 이미 다른 인사가 내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박 선배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면서도 불안했다.


회사에 도착한 최 팀장은 자신의 부서로 향했지만, 박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서야 나타난 박 선배는 최 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던 박 선배는 최 팀장과 함께 작은 책상과 의자를 사무실 안으로 옮겼고, 그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박 선배를 투명인간처럼 취급했고, 박 선배도 마치 존재감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며칠 후, 회사 내에서 고성이 울려 퍼졌다. 박 선배와 신임 지점장이 격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로 왔어?" 신임 지점장이 날카롭게 물었다.

"넌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지?" 박 선배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신임 지점장은 비웃으며 쏘아붙였다.

"이쯤 되면 물러나야 되는 거 아니냐? 회사가 널 버린 거 몰라? 언제까지 이렇게 버티고 있을 건데? 쪽팔리지도 않냐?"

박 선배는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싸움은 금세 끝났지만, 그 짧은 순간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최 팀장은 박 선배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을 직감했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 저녁, 박 선배는 최 팀장에게 술 한잔하자고 했다. 최 팀장은 박 선배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궁금했다.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박 선배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너한테만 줄 정보가 있어. 받아볼래?"


최 팀장은 그 순간 박 선배가 자신을 정치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박 선배의 제안에 응하면 처음에는 동지가 되겠지만, 나중에는 적으로 변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최 팀장은 박 선배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박 선배는 최 팀장에게 서류뭉치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온 최 팀장은 서류를 펼쳐보았다. 서류에는 부정한 거래 내역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는 신임 지점장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 선배는 그 서류를 자신의 보험으로 삼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곤경에 빠질 것을 알고 대비해 둔 것이었다. 최 팀장은 이 서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박 선배의 말대로라면, 이 서류를 활용해 최 팀장도 회사 내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며칠 후, 회사에 새로운 인사 발령이 내려졌다. 신임 지점장은 대기 발령을 받았고, 박 선배는 다시 본사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박 차장이 새로운 지점장으로 임명되었다. 최 팀장은 복도에서 박 차장이 박 선배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 선배는 여유롭게 웃으며 박 차장의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최 팀장은 회사 내에서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회사 내에서 최 팀장에 대한 수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가 신임 지점장의 부정행위에 연루되어 있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최 팀장은 당황했다. 자신은 그 서류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그 내용을 누설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결국, 최 팀장은 본사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박 선배로부터 받은 서류가 문제가 되었다. 최 팀장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박 선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 팀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최 팀장이 가진 서류가 오히려 그를 공격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결국, 최 팀장은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서류는 박 선배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덫이었고, 최 팀장은 그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박 선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 팀장을 배신했고, 그 결과 최 팀장은 회사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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