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교 Sep 09. 2024

각각의 이유-5화

그 말은 상태의 가슴에 비수처럼 깊이 박혔다. 그 한마디는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상태는 그 당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선은 그저 혼자 있고 싶다고,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혼자 산에 다녀오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상태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가끔 혼자 산을 오르며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 지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아무 연락 없이 사라진 지 하루가 지나자 상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갔고, 결국 그녀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벌어졌다. 지선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경찰까지 모두가 그녀를 찾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지선을 찾을 수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지선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절벽 아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상태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가 마주한 것은 끝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와, 그 앞에 선명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였다. 그것은 지선이 사랑했던 풍경이었다. 그녀는 자주 그곳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가 더 이상 그 푸른 바다를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이 상태의 마음을 산산조각냈다.


지선은 자신이 사랑했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남기고, 검은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상태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상태는 묻고 싶었다. 

지선은 정말 그곳에 가서 행복했을까? 그 검은 바다 속에서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났을까? 혼자 떠나는 것이 정말 그녀에게 좋았을까? 그러나 그 질문들은 답을 들을 수 없는 메아리로 남아 상태의 가슴을 때렸다.

상태는 분노와 슬픔 사이에서 지선을 미워하기도 했다. 왜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갔는지, 왜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혼란과 절망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지선의 부재가 그의 삶에 남긴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그를 괴롭혔다.


지선이 떠난 곳에는 그녀가 남긴 배낭과 신발, 그리고 작은 일기장이 있었다. 그 일기장에는 상태에게 남기는 지선의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지선의 일기장에는 그녀의 깊은 슬픔과 외로움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빚과 채무에 대한 압박을 견디며 어린 시절부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졌고, 지선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가 백수로 지내던 그 힘든 시간에도, 지선은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속 고독은 더욱 깊어져 갔다.


"상태 씨에게.


나는 항상 말없이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었어. 말하지 않으면 그 울음이 쏟아져 나올까 두려워서. 빚 때문에 시작된 이 고통이, 이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어. 나의 미래도, 행복도, 그저 평범한 삶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았어. 상태씨를 만나면서 나는 잠시나마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짓누르기 시작했어. 상태씨는 나에게는 전부였지만, 나는 당신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웠어. 우리 가족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떠나는 거야. 잘 살아."


그 짧은 글은 상태의 마음을 산산이 찢어놓았다. 지선이 그동안 얼마나 깊은 고통 속에서 홀로 싸워왔는지를 알게 된 순간, 그는 죄책감에 무너졌다. 그녀는 언제나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곁에 있었지만,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상태는 그녀의 아픔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지선이 말없이 웃던 그 순간들 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많이 울고 있었을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가 마지막 작별의 인사였다는 사실이.


지선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고통을 홀로 감당하려 했다. 그녀는 그 아픔을 품은 채, 결국 스스로 떠날 길을 선택했다. 상태는 고통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지선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왜 그녀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그는 끊임없이 자책했다.

지선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가 그토록 힘겨운 싸움을 홀로 감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이제 상태에게 남은 것은 지선의 부재가 남긴 깊은 상처와,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던 자책뿐이었다. 





 상태는 더 이상 직장에 나갈 수 없었다. 지선의 죽음은 그의 삶을 산산조각 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그의 가슴은 돌덩이처럼 무겁게 짓눌렸고, 숨이 막혀왔다. 결국 상태는 출근을 포기하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억눌린 분노와 슬픔이 끊임없이 뒤엉켜 폭발하고 있었지만, 그 감정들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상태는 자신이 점점 무너져가는 것을 느꼈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끙끙 앓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그 소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비명처럼 들렸다. 상태는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 답답함이 그의 더욱 옥죄었다.


문득 지선의 고통이 떠올랐다. 지선은 이 감정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그녀도 이처럼 억눌린 감정들 속에서 혼자 헤매다,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떠나버린 것일까? 상태는 지선이 그토록 '이유'를 찾으려 했던 것이, 사실은 이 고통을 설명해 줄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선은 그 답을 끝내 찾지 못했고, 알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투명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정을 억누를수록 사람들은 점점 그를 외면했다. 상태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사람들은 그를 보지 않으려 했고, 그의 감정을 드러낼 때는 눈에 띄게 불편해하며 피했다. 상태는 점점 더 깊이 가라안고 있었다.


결국 상태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떠나는 날, 그는 부장에게 사직서를 건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부장은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피곤하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꼭 치료받아. 치료받으면 나아질 거야. 그리고 다들 그렇게 살아."


그 말에는 진심은커녕 피곤함과 무관심이 엿보였다. 그 순간 상태는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버림받은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상태의 마음에 마지막 못을 박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장은 그동안 상태의 고통에 대해 한 번도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상태가 회사를 떠난다고 하자, 마지못해 던진 위로의 말이었다.

상태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모든 감정이 폭발할 듯 솟구쳤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동안 억누르고 억눌렀던 분노와 슬픔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상태는 부장을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


"씨팔."


그 한마디가 상태가 내뱉을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하지만 그 말조차도 그를 구원할 수 없었다. 부장은 무표정하게 상태를 바라봤고, 그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도, 위로도 없었다. 상태는 모든 감정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나며 상태는 지선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그녀도 이토록 고통 속에서 홀로 싸웠을 것이다. 처절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상태는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는 길 한복판에 멈춰 섰다. 세상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상태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서 있는 상태는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