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팀장의 고백
최 팀장이 회사에서 쫓겨난 후, 그의 삶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자신이 믿고 따랐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직장을 잃은 충격과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 그는 일자리를 잃은 것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왔던 신뢰와 명예도 함께 잃었다. 결국, 그는 낙담한 채 길을 잃은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집에만 머물렀다.
몇 달 동안 그는 이력서를 보내며 다시 일어설 기회를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때 그는 회사 내에서 신망을 받는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쫓겨난 이유가 회사 내에서 부정적인 소문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스스로의 무능함을 자책하며, 점점 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최 팀장은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친구는 현재 한 채권추심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팀장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친구는 최 팀장의 능력과 경험을 높이 평가하며, 그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권유했다. 처음에 최 팀장은 망설였다. 채권추심이라는 직업은 그가 이전에 해왔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고, 사람들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오랜 실직 기간 동안 그의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었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다. 비록 낯선 분야였지만, 그는 이 일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며칠 후, 최 팀장은 친구가 소개한 채권추심 회사 '미래신용정보'의 면접에 참석했다. 면접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회사는 그의 경력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에게 팀장직을 맡길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복잡한 정치나 인간관계가 아닌, 단순히 채무를 회수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면접관은 최 팀장에게 물었다.
"우리는 실적이 가장 중요합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최 팀장은 잠시 망설였다. 감정을 배제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 그것은 그가 이전에도 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네, 저는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의 대답에 면접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곧바로 그는 채권추심팀의 팀장으로 임명되었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최 팀장은 복잡한 감정을 안고 첫 출근을 준비했다. 예전 회사와는 달리, 채권추심 회사의 분위기는 딱딱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각자의 책상에 앉은 동료들은 바쁘게 전화 통화를 하며 채무자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사무실은 분주한 전화 소리와 대화 소리로 가득 찼다.
최 팀장은 그 풍경을 보며 잠시 멈춰 섰다. 그가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던 압박감이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맡은 일을 차분히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팀원들을 만나 그들의 업무를 파악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썼다.
업무가 시작되자, 최 팀장은 이전과는 다른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했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채무자들에게는 단호하고 냉정하게 접근했고, 그들이 어떤 사정이 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채무는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과 김지선의 죽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일을 처리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 일을 계속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최 팀장은 자신의 새로운 역할에 점점 더 익숙해져 갔다. 그의 팀은 회사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내기 시작했고, 그는 경영진의 신뢰를 얻어갔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매일 아침, 최 팀장은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매만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피로와 공허함이 가득했다. 한때 그의 얼굴에 있던 따뜻함과 연민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갑고 무감정한 표정이 대신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는 완벽한 팀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결정은 신속했다. 채무자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그들의 눈물에도 그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규칙은 규칙입니다. 채무는 반드시 상환되어야 합니다."라는 그의 말은 이제 기계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밤이 되면, 사무실에 홀로 남은 최 팀장의 모습은 달라졌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에는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비쳤고, 그 불빛들은 마치 그가 놓쳐버린 무언가를 상기시키는 듯했다.
"내가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 질문은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성공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채무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면서도, 그는 그것을 외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속 공허함은 커져만 갔다.
최 팀장은 자주 김지선을 떠올렸다. 그녀의 절망에 찬 눈빛, 마지막 통화에서의 희미한 미소, 그리고 그녀의 비극적인 선택. 이제 그는 매일 수많은 '김지선'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했다. 그것이 그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는 더 이상 냉정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죄책감과 후회가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그가 잃어버린 것들 - 연민, 따뜻함, 인간성 - 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최 팀장은 평소보다 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코트를 걸쳤다. 사무실을 나서며,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후회와 결의,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작지만 단호했다. 최 팀장은 그 순간 무언가를 결심한 듯했다. 그는 아직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일과 삶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빗속을 걸어가며, 최 팀장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김지선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녀의 죽음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상처를 통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의 중얼거림은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작은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희망이었고,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였다. 최 팀장은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길이 어떤 것일지, 어디로 그를 이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빗줄기를 뚫고 걸어가는 최 팀장의 뒷모습은 외롭지만 결연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많은 도전과 갈등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이제 그것들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그의 내면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그 바람은 그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빗속을 걸으며 최 팀장은 지선에게, 그리고 자신이 상처 준 모든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달라지겠다고, 조금은 더 인간적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빗물이 그의 얼굴을 적셨다. 차가운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오랫동안 굳어있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최 팀장의 책상 위에는 새로운 직원의 인사 발령 서류가 놓여 있었다. '이상태'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최 팀장은 잠시 망설이다 서명을 했다. 새로운 직원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그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