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해 보세요, 삼성〉

by 쪼교


나는 한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삼성’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아홉 살 무렵부터 성우의 꿈을 꾸었다. 내 방 벽에는 유명 성우들의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각종 성우 오디션 공고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발성 연습을 했고, 밤마다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

“네 목소리 정말 좋아. 분명 훌륭한 성우가 될 거야.”

친구들은 자주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성우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방송국 입사 시험에 합격해야 했으며, 무엇보다 재능과 끈기가 필요했다. 대본을 보고 연기할 수 있는 연기력, 아나운서 못지않은 정확한 발음도 필수였다.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이는 목소리는 좋지만 연기를 못했고, 어떤 이는 연기는 뛰어나지만 발음이 부정확했다.

나에게도 작은 비밀이 있었다. 바로 ‘삼성’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삼성’이 ‘삼떵’으로 들렸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은 결함은 꿈을 향한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만약 삼성 광고를 해야 한다면 어떡하지?”
밤마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괴롭혔다.

“하필이면 삼성 발음이 안 되다니. 삼성전자 광고가 들어오면 어떡하지? 나는 엘지만 받아야 하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회사의 광고를 못할까 봐 괜히 걱정이 앞섰다.

돌이켜보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나 혼자 열심히 김칫국을 마셨던 셈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진지했다. 그 상상이 곧 내 현실을 압도했고, 미래를 설계했다. 발음을 고치기 위해 혀의 위치를 바꿔보고, 숨을 참으며 발음해 보고, ‘삼’과 ‘성’ 사이에 간격을 두기도 했다. 빨리 해봐도, 천천히 해봐도 ‘삼성’은 끝내 ‘삼떵’이었다. 심리적인 원인도 생각했다. 너무 집착하다 보니 오히려 더 안 되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삼성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발음해 보았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내게 삼성은 언제나 ‘삼떵’이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한 치과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의 영어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혀 밑의 설소대를 제거하면 혀 짧은 소리가 사라지고 발음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해결책을 찾은 듯 희망이 보였다. 의학적으로 고칠 수 있다면, 나도 드디어 ‘삼성’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지 않을까? 성우의 꿈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곧장 일산에서 가장 유명한 치과를 예약했다. 그리고 진료일이 다가왔다. 병원 앞에 서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여기서 내 꿈이 결정될지도 몰라.’ 깊은 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의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병원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어딘가 축제 분위기 같았다. 대기실 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설렘에 들떠 있었다. ‘삼성’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조규호 님?” 간호사의 부름에 벌떡 일어섰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눈부신 조명이 얼굴을 덮쳤다. 마치 무대 조명을 받는 배우가 된 듯한 기분. ‘이게 바로 스포트라이트인가?’ 순간, 내 치과 의자는 무대 같았다. 모니터에 비친 엑스레이 속 치아는 미로처럼 보였다. ‘혹시 저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황당한 상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더니, 하얀 가운을 입은 아홉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뮤지컬이라도 시작되는 건가?’ 잠시 후 이들이 노래라도 부를지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들은 정확히 내 주변을 둘러섰다. 마치 아홉 명의 헌법재판관이 입정하는 듯했다. 순간, 나는 발음 재판을 앞둔 피고인이 된 기분이었다.

머릿속에서 재판 장면이 그려졌다.

“피고인 조규호, ‘삼성’을 정확히 발음해 보시오.”
“삼… 떵…”
“음… 아직 개선이 필요하군요. 3개월간 발음 교정을 명합니다.”


내 상상 속 장면에 스스로 웃음이 났지만, 동시에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동물원 속 전시물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의 특별 전시: 삼성을 발음하지 못하는 신기한 인간!’ 스스로 농담을 던지며 웃어넘겼다.

그때 아홉 명 사이로 원장이 들어왔다. 구원자처럼 보였다.

“자, 어디가 불편하세요?” 원장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불편한 게 아니라 불가능한 거죠.’ 속으로 중얼거리다, 결국 용기를 냈다.

“저… 발음이 안 됩니다.”
원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통증 때문에 말하기 힘드신가요?”

“아니요… 혀 때문인 것 같아요.”

얼굴이 붉어졌다. 차라리 삼성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고 오는 게 나았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고백했다.

“‘삼성’ 발음이 안 돼요.”


진료실은 순간 고요해졌다. 그러다 이내 킥킥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장은 “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가 본 가장 특이한 환자군’이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덧붙여 설명했다.

“혀가 짧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혀 길이를 확인해 주시겠어요? 혹시 설소대를 잘라야 하나요?”

원장은 처음 듣는 케이스라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간호사를 불렀다.

“자 좀 가져와 주세요.”
그 순간,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진료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내가 지금 코미디 오디션을 보고 있나?’ 간호사가 자를 가져오자 원장은 내 혀 길이를 쟀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마치 올림픽 시상식처럼 정적이 흘렀다.

결과는 짧았다.

“혀 길이는 정상입니다.”

그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럼 뭐가 문제지? 내 혀가 정상이라면, 비정상은 나란 말인가?’ 허무감이 몰려왔다.

원장은 다시 물었다.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원장과 학생들이 나간 뒤, 혼자 남은 진료실에서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제 정말 성우의 꿈을 포기해야 하나… 아니면 삼성 발음이 필요 없는 LG 전문 성우로 남을까?’

스스로 농담을 던지며 허무를 달래봤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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