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칼춤이 끝나자 남자의 허리는 다시 굽혀졌다. 남자는 굽은 허리로 숫돌을 집어 들고 푸른빛이 도는 칼을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은 마치 무협지에 나올법한 수백 년을 살아온 도인이 다가오는 거 같았다. 도인의 손에는 신검이 들려있었고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기운에 압도되는 거 같았다.
식당은 순댓국을 먹는 손님들로 붐볐다. 남자는 북적거리는 손님들 사이를 뚫고 나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말했다.
"오 천 원이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추는 칼춤에 홀린 것이 분명하다. 바쁜 와중에 잡상인 이라니. 짜증이 난 나는 남자에게 오천 원을 던지듯 건네주었다. 남자는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남자에게 받아둔 칼을 아무렇지 않게 식당밖에 던져두었다. 칼은 카랑 소리를 내며 골목 한구석에 처박혔다.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손님들이 먹은 순댓국은 국물 한 줌도 없이 비워냈다. 드디어 내가 만든 순댓국을 인정받는 거 같았다. 드디어 시작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자랑했다. 드디어 내 순댓국맛을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오늘 온 손님들은 분명 다시 찾아올 것이고, 또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올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는 구전동화처럼 세상에 맛집으로 소문날 것이라 말이다. 나는 아내에게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내일부터 식당에 나와 도와달라고 했다. 아내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루 살이야?, 하루 살았다고 내일도 살 수 있어?"
나는 하루살이라도 좋았다. 하루만이라도 누가 내 순댓국맛을 알아준다면 그것으로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같이 식당문을 열었다. 오늘은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다. 두 배 이상의 양을 만들어 장사준비를 했다.
장사 준비를 끝내고 식당문을 열어 손님을 기다렸다. 비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식당 안으로 비취는 햇살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정성껏 테이블을 닦고, 안 하던 골목길 청소까지 했다. 그리고 손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침식사 시간이 지나도, 점심 식사시간이 지나도 손님은 오지 않았다. 골목길에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김치찌개집과 중국집에는 손님이 꽉 차 있었지만, 내 식당에만 손님이 없었다.
나는 어제와 무엇이 다른지 고민했다. 국물이 짜지 않은지, 순대가 맛이 없는지, 김치가 쉬었는지, 아니면 식당이 더러워서 인지 고민했다. 다시 청소도 해 보았다. 국물은 더 진하게 우려냈고, 순대는 내가 먹어본 최고의 맛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역시 하루살이였던가? 어제의 삶은 끝나 지나갔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나는 식당문 앞에 쭈그려 앉아 좌절했다.
그때였다. 눈앞에 번쩍이는 물건이 있었다. 칼이었다. 어제 내가 던져놓은, 그 남자가 칼춤을 추며 갈았던 칼이었다. 칼은 푸른빛을 내고 있었고 나를 부르듯 웅웅 소리를 내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칼을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칼이 얼마나 잘 갈았졌는지 무심코 그 칼로 순대를 썰었다. 순대를 써는 순간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고, 옅은 쇠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순대에 칼날이 들어갈 때마다 순대에서는 푸른빛이 맴돌았다.
그 순간,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식당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사람들로 식당은 금세 꽉 차게 되었다. 만석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순댓국을 만들었다. 그 칼로 계속 순대를 썰었고 그때마다 손님들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순대가 다 떨어져 더 이상 순댓국을 만들 수 없을 때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하루살이가 아니었다. 나는 꿈을 이룬 것이다. 나의 순댓국맛을 사람들인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나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순댓국집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손님이 몰려든 이유를 몰랐다. 왜 하필이면 그 칼로 순대를 썰었을 때 손님들이 몰려든 것인가?, 순대를 써는 행위가 운동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경기 전에 갖는 징크스 같은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맛있다고 입소문이 난 것인가?
나는 칼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칼에서는 여전히 푸른빛이 돌고 있었고, 옅은 냄새가 났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자 녹슨 쇠 냄새가 났다. 나는 칼로 순대를 썰어 먹어보았다. 감칠맛이 돌았다. 이건 내가 그동안 맛보았던 그 어떤 순대보다 맛있었다. 그럼 칼 때문인가? 저 칼로 음식을 썰면 맛있어지는 건가? 나는 믿을 수 없었지만 장사가 잘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믿어야 했다.
다음날 식당문을 열었을 때 식당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회색기운이 돌았다. 황금빛이 돌던 식당은 무언가 빠져나간 듯 달라져 있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달라진 점은 찾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움직여 피로 때문 일 거라 생각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칼을 들었다. 칼은 무게가 빠져나간 것처럼 가벼웠다. 죽은 듯 축 쳐져있었고, 촛불이 바람에 훅하고 꺼지듯 칼에서 돌던 푸른빛이 사라졌다. 칼에서 나는 쇠냄새도 사라졌고, 미새한 진동도 사라졌다. 칼은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처럼 회색빛이 돌았다.
그날은 문 닫는 시간까지 단 한 명의 손님은 오지 않았다. 골목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내 식당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다른 식당으로 들어갔다. 빛을 잃은 칼로 아무리 순대를 썰어도 손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칼은 이미 죽어있었다. 힘을 잃은 나는 불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렇다. 귀인이다. 보살이 말한 귀인은 칼 가는 사람이었건 것이다. 칼 가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나는 다음날부터 식당문을 닫아두고 칼 가는 남자를 찾아다녔다. 동묘를 뒤져가며 더 나아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칼 가는 남자를 찾아다녔다. 식당이란 식당은 모두 찾아가 칼 가는 사람을 봤냐며 물어보았다. 모두들 요즘 세상에 칼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비웃었다. 남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좌절했다. 마지막 희망마저 무너져 버렸다. 나는 더 이상 손님이 없는 식당을 유지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다. 보살이 말한 귀인을 나는 놓친 것이다. 나는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졌다. 손님이 없는 식당은 이제 지옥 같이 느껴졌다. 희망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사흘 후 저녁까지 손님이 없는 식당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그 남자가 들어왔다. 귀인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는 남자를 보자마자 칼을 갈아달라고 했다. 밖에 나가지 말고 식당 안에서 갈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식당문을 잠가두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남자를 위해 테이블을 치워 칼을 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었다.
남자는 다시 굽은 허리로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숫돌 위에 칼을 올려두고 칼을 갈기 시작해다. 아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자의 칼춤은 저번보다 더 역동적이고 화려했다. 칼을 가는 소리는 더 크고 또렷이 울려 퍼졌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서걱서걱, 서걱서걱
키익키익, 키익키익
소리는 청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몸을 격렬히 흔들며 입에서 소리를 냈다. 남자의 목젖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치 스피커같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식당 안을 둥글게 돌아 칼에게 되돌아갔다. 칼이 소리를 흡수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계속 칼춤을 추었고, 천장을 뚫고 하늘로 승천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춤이 멈추고 칼 가는 소리가 줄어들 때쯤 칼은 다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에서 나는 쇠냄새가 진동했다. 칼이 살아난 것이다. 영롱한 푸른빛을 띠며 식당 안을 밝혔다. 식당은 다시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내게 칼을 내밀었다. 나는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칼을 잡았다. 칼이 내는 푸른빛과 함께 미새한 진동이 느껴졌고 쇠냄새가 코를찔렀다. 나는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칼을 들고 순대를 썰었다. 동시에 식당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들이닥치는 손님을 제치고 나는 남자를 붙잡았다. 놓치면 안 된다. 이 남자는 귀인이다. 남자가 갈아주는 칼이 손님을 부르는 것이다.
나는 남자를 자리에 앉히고 순댓국을 주었다. 남자는 며칠이나 굶은 사람처럼 순댓국을 먹어치웠다. 나는 한 그릇을 더 주었다. 남자를 잡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손님이 모두 빠지고 영업을 끝마칠 때쯤 나는 남자에게 제안을 했다. 매일 식당에 와서 칼을 갈아준다면 돈은 열 배를 줄 것이고, 식사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남자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재워줄 수 있나?"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