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5시가 넘어 해가 떨어지자 산속은 칡흙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점 보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갔을 때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는 나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백구 한 마리가 똥을 싸놓고 그 옆에서 자고 있었다. 모자이크 모양의 유리문을 열자 진한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발을 벗고 발을 내딪자 나무계단에서 삐걱소리가 났다. 마루에 올라서니 어렸을 적 할머니집에 온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할머니가 누워계실 거 같았다. 할머니는 내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거라고 했다. 성공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일 하며 살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불쌍한 사람을 돕기는 커녕 내 몸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처지가 되었다. 어쩌면 이곳에 할머니가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신이 되어 나를 도와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보살님이 잠시 기도를 하시는 중이니 5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사이사이 옅은 아이목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남자는 보살님이 신과 대화중이라고했다. 나는 소리가 줄어들때까지 문앞에서 기다렸다. 어느 정도 잠잠해지니 남자는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라는 짧은 목소리와 함께 남자는 방문을 열었다.
들어올때 맞았던 향냄새와 달리 방안에서는 고급향수 냄새가 났다. 나는 남자의 안내에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점집과 마찬가지로 신당이 차려져 있었다. 할머니를 닮은 듯한 붉은 옷을 입은 불상이 가운데 있었고, 양쪽에는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장군 불상이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신당 앞에는 점집과 어울리지 않게 통통하고 아담한 아줌마 한명이 앉아있었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년여자같이 생겼는데 보살이라고 했다. 다른 보살처럼 한복을 입지도 않았고, 무당같이 진한 화장하지도 않았다. 내 앞에 앉지 않았다면 나와같이 점 보러 온 사람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보살은 나를 뚤어져라 노려보며 작은 밥상위에 쌀알을 뿌리고 방울을 흔들며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방문앞에서 들었던 아이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문이 끝나자 보살이 입을 열었다.
"장사가 잘 되고 싶어?"
어떻게 알았지? 역시 찾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네"
"운 좋네. 귀인이 찾아올 거야. 놓치지 말라고."
보살은 그 말만 남기고 늦으니 어서 가라며 시장바구니 같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보살이 떠난 밥상 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쌀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는 오래 기다렸다며 할인해 준 가격으로 오만 원을 달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원래 이렇게 짧게 끝내시나요?"
"저희 보살님이 영험하신 이유죠. 긴말 필요있나요"
허무했다. 귀인? 귀인이 찾아 온다고? 몇마디 말을 듣자고 하루를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만 원을 밥상위에 올려두고 방을 나왔다. 마당에 나오자 북적거리던 집은 고요했다. 보살도,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도 보이지 않았고, 백구만이 본인이 싸놓은 똥을 핥고 있었다. 알수 없는 기운에 오싹함을 느낀 나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어둠이 내려 산길은 검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산길에는 누군가가 쌓어놓은 돌무덤있었다. 아까는 정신없어 보지 못한거 같았다. 저 돌무덤 안에는 누군가의 염원이 담아져있을것이다. 나는 돌하나를 주워 돌무덤위에 올려놓았다. 어쩌면 정말로 귀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식당문은 열었지만 귀인은 커녕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골목에선 오래된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역겨운 냄새와 빗물의 비린내가 섞여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골목은 우울했다. 골목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내놓는 음식물 쓰레기조차 없어 길고양이들도 보이질 않았다. 며칠째 끓기만 하던 육수는 오늘도 팔지 못하고 버려질 거 같았다. 그나마 간간 골목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김치찌개집과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식당안은 순댓국을 먹는 손님들로 가득찼다. 자리가 없어 대기하는 사람들로 골목까지 줄지어 있었다. 나는 테이블을 오가면 연신 순댓국을 날랐다. 그때 부서질듯 식당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사람 몸짓만 한 하얀 거위가 서 있었고 귀가 찢어질듯 소리를 질렀다. 식사를 하던 손님들은 겁을 먹고 식당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나는 손님을 내쫓은 거위에 화가났다. 주방에서 식칼을 가져와 거위를 잡으려 쫓아갔다. 거위는 나를 피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식당을 마구 부쉬기 시작했다. 거위가 식당을 부술때마다 잔해속에서 빛이 났다. 나는 잔해속에서 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알이었다. 크고 둥근 알이 번쩍이고 있었고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알을 집어 들었을 때 묵직한 무게에 떨어뜨릴뻔했다. 거위가 낳은 알은 황금알이었다. 그세 식당 안은 거위가 낳은 황금알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황금알을 주워담고 있을때 식당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칼 갈아요! 카알. 모든 칼 갈아요."
꿈이었나? 내가 흐릿하게 눈을 떴을 때 식당문이 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인사릃 했다.
"어서 오세요!"
식당에 들어온 남자는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고, 허리는 굽어있었다. 피부는 거뭇해서 얼굴 윤곽이 잘 보이지 않았고,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씻지 않은 듯 꼬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남자의 손가락은 유독 뭉툭해 보였는데 작은 체격과 어울리지 않게 크고 거친 손을 가지고 있었다. 손만 비교한다면 내 손보다는 두 배는 커 보였다. 한 손에는 검은 돌을 쥐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1.5리터짜리 페트병에 담긴 물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잠이 덜깬 나는 남자가 순댓국을 먹으러 온 것인지, 구걸하러 온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자를 테이블로 안내했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남자는 내 얼굴에 대고 숫돌을 흔들어 댓다. 위협을 느낀 나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입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나가세요!"
남자는 폭발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놀란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을 쳤다.
" 칼 갈아드립니다. 대박 나실 겁니다."
칼을 갈다니, 이 어찌 해괴망측 한 일이란 말인가. 요즘 세상에 누가 칼을 간다고. 옛날엔 식당을 돌아다니며 칼 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직접 칼을 갈거나 날이 무뎌지면 금세 새것으로 바꾸는 시대이다. 안 그래도 장사도 안 되는 데 잡상인만 꼬인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리를 버럭 지르려는 찰나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림잡아 열댓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채워졌다. 한 달 만이었다. 장사를 시작하고 손님이 들어온 것도 처음인데 만석이라니. 나는 긴장감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밀려드는 주문에 정신없이 주문을 받았고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이 흘렀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칼 갈아준다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소리없이 입을 움직였다.
'칼 갈아요'
나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안 쓰는 칼을 가져다 남자에게 주었다.
"이거 하나 갈아주세요. 방해되지 않게 밖에 나가서 갈아주세요"
칼을 받아 든 남자는 식당 밖으로 나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구부정한 허리가 제자리를 찾은듯 남자는 숫돌과 한몸처럼 보였다. 가져온 숫돌 위에 칼을 올려두고 페트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칼을 향해 물을 뿜어댓다. 물먹은 칼은 번쩍거리며 푸른빛을 띠었다. 남자는 칼을 잡고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자의 거친 몸짓에 칼은 반항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결국 칼은 남자에게 몸을 맞긴채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온몸을 들썩이며 칼을 움직였다.
남자는 춤을 추는 거 같았다. 몸은 현란하게 움직였고, 얼핏보면 무술동작같기도 했고, 탈춤을 추는 듯 손을 덩실덩실 흔들었다. 칼은 남자와 한 몸이 된 듯 남자의 손에 안겨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꾸불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입에서는 신음하는 듯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고, 동시에 칼에서는 옅은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빗소리와 함께 남자가 내는 소리와 칼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한곡의 오케스트라와 같았다.
쓱싹쓱싹, 쏴아아
쓱싹쓰싹, 쏴아아
쓱싹쓱싹, 쏴아아
쓱싹쓰싹, 쏴아아
남자는 칼을 들고 굽은 허리를 폈다. 비는 남자를 흠뻑적셨고, 날에서는 푸른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칼 춤이었다.
- 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