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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책방 Feb 19. 2024

말하기와 듣기

짧은 글

방금 옆 테이블 사람이 일어나면서 의자를 바닥에 긁는 소리를 냈다. 끼익! 그 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렸다. 나도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낸 사람은 민망해하며 머리를 꾸벅거리며 인사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다. 아니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소음성 난청을 가지고 있다. 귀에서 나는 삐 소리가 다른 소음을 막아내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막아낸다기보다는 잡아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청력이 점점 약해져 주변의 소음과 내 목소리의 크기를 잘 가늠하지 못할 때가 있다. 조용한 곳에서 크게 말하거나 시끄러운 곳에서 작게 말할 때가 많았다.


 말할 때마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는 일은 번거로워졌다. 상대방의 말을 잘 못 들었는데 다시 묻기가 눈치 보여 알아들은 척할 때, 상대방의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픈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때, 혹 내가 잘 못 듣고 눈치 없게 굴고 있는 건 아닌지, 소리에 예민해져 무심코 인상을 쓰고 있어 상대방이 오해를 하고 있는지.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가끔 사람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은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고 저의 의도는 이것입니다. 당신이 오해한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그럴 수 없기에 세상은 오해로 가득 차 있다. 


-귀를 잘 관리해서 오래 써봅시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그러면 나는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이어폰도 안 끼고 볼륨도 최대한 줄인다. 커다란 음악이 있는 곳에도 가지 않고, 노래방에도 가지 않는다. 물론 헤비메탈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 귀를 위해서는 조용한 클래식음악만을 듣는다. 나는 가끔 고요, 정적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조용한 곳을 찾아가고, 홀로 있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그럴 때면 귀에서 들리는 삐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다시 그 소리를 피하기 위해 볼륨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러다가 결국 귀가 망가져버려 삐 소리만 남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듣기에 문제가 있다 보니 말하기를 잘하고 싶었다. 내가 잘 못 들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정확하고 또박또박 말하고 싶었고,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들은 척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내 말은 횡설수설하게 된다. 정확하게 못 들고 일방적으로 판단해 말을 하니 당연할 것이다. 


오는 날 독서 모임에서 독특한 사람이 나타났다. 말을 매우 유려하게 매력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이 사람은 듣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책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축구 선수가 패스를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슛에만 관심이 있듯, 빈 공간이 나와도 그쪽으로 공을 패스할 생각도 없이 수비수에게 막힐지언정 앞으로 달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이 드리블은 현란했다. 같이 뛰는 선수들도 감탄할 정도로 이리저리 공을 몰면서 결국 골대안으로 공을 넣고야 마는 집념에 박수를 받고 있었다. 모임의 구성원들도 결국에는 책의 주제는 잊은 채로 그 사람의 말에 푹 빠져있었다. 나는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의 말을 배우고 싶어 꼬인 마음 없이 그저 다가가고 싶었다. 




어느 날,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이 독서모임장소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그 사람은 이미 와 앉아 있었다. 그는 침묵하며 고요를 즐기는 듯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그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저기요.


불청객에 의해 깨진 고요가 불쾌한 듯 그는 나를 힐끗 노려보았다. 나는 위축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는지요?


그는 짤게 대답했다. 


-둘 중에 하나만 하는 겁니다. 잘 듣거나 잘 말하거나

-조규호 선생님은 잘 들으시는 분인가 봅니다. 

-네에?


나는 놀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잘 듣는 것이 아니고 잘 못 들어서 말도 못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일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 독서 모임에는 참 대단하신 분들이 많죠. 좋은 직업에, 끝없는 학벌에, 좋은 환경에. 규호 선생님도 훌륭하신 분이고. 근대 여기서는 그 좋은 능력들을 발휘하시는 분들은 없는 거 같아요. 다들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얘기들을 하죠. 조금만 기회를 주면 본인들이 가진 지식을 드러내려 하죠. 규호 선생님도 조금만 노력하면 그 능력들을 잘 쓸 수 있을 겁니다. 놓치는 쪽이 어리석은 거죠.


-저도 선생님처럼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해도 해도 안느네요 


-저는 선생님처럼 잘 듣고 싶은데요.


나는 놀랐다. 너무 놀라 대답하는 것도 잊었다. 


-저는 불안해서 말의 공백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말할까 봐 선수를 치는 거죠.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항상 후회를 해요. 너무 내 일방적이 얘기만 한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의 얘기도 들어줄걸 그랬나, 다른 사람의 말을 빼앗진 않았나 하고 말이죠. 그래서 항상 이렇게 일찍 와서 명상을 하며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네요. 하하


나는 말했다. 


-저는 잘 듣지 못해서 가만히 있는 겁니다. 


내가 듣지 못해 가만히 있는 건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구나 생각했다. 나는 시간을 10초 앞으로 당길수 있는 능력을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시간을 10초 앞으로 당겨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면 그런 능력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그 사람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대부분 놓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우리 서로 반반씩 섞으면 참 좋겠네요. 하하


그때 다른 회원들이 도착했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멈추었다. 나는 커피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가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은 다른 회원들과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것을 다 들을 필요는 없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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