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과 율희가 그다음으로 도착한 학교는 새로 지은 아파트 숲 사이에 위치한 곳이었다. 지난번에 다녀온 학교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학교 자체도 새로 지은 것 같고, 운동장과 놀이터는 좀 더 작았다.
"좀 다르네, 많은 게."
"맞아. 지난번 학교는 주변에 아파트들이 자리 잡은 지 좀 됐었지. 그런 학교들은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고유의 분위기나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안정적인 느낌이 있어. 그렇기에 1학년 아이들을 타깃으로 했던 거야. 기존에 자리 잡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의 정서에서 자유로워야 하거든. 불신의 정서를 심어줘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학교는 안 그래도 돼. 학교 구성원들의 구심점이 아직 잡혀있지 않거든. 충격적인 사건 하나면 커뮤니티 자체가 거기에 휩쓸릴 거야."
율희의 설명을 쭉 듣고, 서준은 질문했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할 계획이야?"
"친구 관계를 파탄 낸다, 그거 하나는 똑같아. 그런데 이번엔 감정과 정서가 아니라, 제도에 기댈 거야. 아주 편할 거야."
얼마 뒤 율희는 이번 학교에서 활용할 아바타의 데이터 수식 및 결과 값을 전달했다. 서준은 아바타를 생성했다.
아바타 2 이름: 주영
나이 설정: 만 11세
주요 특징 1: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김
주요 특징 2: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음
주요 특징 3: 타인의 말과 행동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능력이 좋음
아바타 형성을 위한 초기 데이터 환산 값
X+90
Y-10
Z+70
A-30
B+70
C-30
"상당히 지적 수준을 높여 놨네?"
서준의 말에 율희는 다시 되물었다.
"응, 왜 그랬을 것 같아?"
서준은 별생각 없이 질문을 했었기에,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글쎄, 우리가 의도한 결과 값을 잘 가져오기 위해?"
율희는 또 그 특유의 조롱하는 듯한 눈빛을 실실 보내며 말했다.
"또 작전에 대충 임하는 건가. 이러니 선배 대접을 계속해줄 수가 없다니까. 아까 내가 뭐에 기댈 거라고 말했어?"
"하, 그래. 제도. 알고 있어."
"제도를 이해해야 아바타가 제도를 잘 누릴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정도의 지능 수치는 부여해야 해. 똑똑한 아이가 Y와 A의 값을 적절히 상실했을 때의 결과가 제일 잔인한 법이거든."
아바타 주영은 학교에서 잘 지냈다. 데이터 값을 보았을 때에 알겠지만, 딱히 모난 구석은 타인에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 성향이다. 어쩌면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도 쉽게 얻을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점은 교실 내의 위기를 쉽게 가져올 수 있는 활용도가 높은 특징이기도 했다. 평가가 안 좋은 인물이 일으키는 반향은 예상된 부정적인 바운더리에서 끝나지만, 평가가 좋은 인물이 주는 영향은 그 파급력이 더욱 큰 것이 일반적이니까. 율희가 의도하고 있는 아바타 주영 활용법도 그 점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급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내 생각엔 여기서 주인공이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뒤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랑 완결성이 쭉 맞아떨어질 것 같아."
아바타 주영은 모둠활동 중에 친구들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제삼자가 볼 때에도 그 아이디어는 꽤나 괜찮았다. 역할놀이 중 도둑 역할의 악역이 술 한 잔을 마시고, 여기에 기반해 술 취한 연기를 하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은 상당히 실감이 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모둠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쓰는 대본이니까, 우리가 굳이 술을 소재로 써야 하나 싶어. 다른 소재를 쓰면 안 될까? 괜히 쪼끔 걱정이 되어서 말이지."
술이라는 소재가 초등학생이 활용하기에 괜찮은 소재냐는 원준의 질문이었다. 사실 큰 상관없이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써도 문제는 없지만, 자라온 환경에 따라 그런 것에 대한 예민도는 다를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냥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넘어가면 좋으련만, 아니지, 율희와 서준 입장에서는 곤란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바타 주영은 그 내용을 정서 및 기억 데이터에 정확하게 기록했다.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박을 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두 시간 뒤의 일이다. 체육 시간에 축구 시합을 하게 되었다. 모둠 활동을 기반으로 수업이 이루어지기에, 지난번 연기 대본을 함께 쓴 친구들을 또 같은 팀을 이루게 되었다. 주영은 X 및 Z의 값이 높았기에, 주전 공격수로 활약할 수 있던 터였다. 하지만 이 시간에 주영의 만족도는 낮았다. 왜냐하면 국어 시간 연기 대본을 쓸 때 자신의 의견을 반박했던 원준이 유난히 자신에게 패스를 안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 결과로는 그 아이가 패스를 3번 시도하여 2번 연결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런 객관적 결과는 아바타 주영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나의 의견에 반박을 한 타인'으로 기록되어 정서 수치가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바타 주영이 가진 고유 성질 중 C 수치가 적절히 마이너스의 값을 가진 덕분이기도 했다.
"C의 수치가 적절하네. 고마워, 선배. 나는 더 낮게 부여한 값으로 계산했던 것 같은데."
"네 제안서를 꼼꼼히 읽었는데, 이게 더 나을 것 같더라고. 혹시 일 꼬이나 걱정했는데, 이게 맞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면서 율희가 말했다.
"응, 선배 예상이 맞아. 너무 낮았다면 여기서 바로 싸움이 났을 거야. 다행히 혼자 부글부글 속만 끓이고 일단은 마무리되겠어."
둘의 대화처럼 아바타 주영은 그날 있던 일에 대해 바로 다툼을 일으키거나, 담임교사에게 불만을 말하거나 하는 그런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개인적인 감정을 부정적으로 전환시키면서 분노나 멸시와 같은 정서를 극대화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날, 아바타 주영은 그날 자신이 입력한 감정 값을 응축하여 행동으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거기 117이죠."
학교폭력 신고는 언제든지 걱정 말고 117로 신고하라는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요새 자라나는 학생들은 언제나 손쉽게 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제도를 똑똑하게 잘 활용하는 아바타 주영이었다.
"아니, 근데 여기서 나 질문. 이게 학교폭력 신고로 신고가 된다고 해도 뭐가 있나? 누가 때리거나 하다못해 싸운 것도 아니잖아."
그 말에 또 율희는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 이번 작전에 너무 관심 없던 거 티 팍팍 내는 거 아냐? 적어도 학생을 망가트리는 방법으로 방향이 잡혔으면 대한민국 교육 관련 제도나 법률은 좀 살펴봐야지. 선배,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상태인지 알아? 복도에서 나랑 선배가 마주쳤어. 근데 선배는 나한테 인사를 안 했어. 그렇다고 선배가 날 때리거나 괴롭힌 건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내가 이 악물고 학교폭력으로 선배를 신고하면 선배는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신고가 되는 거야."
율희의 말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의아해하며 서준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래. 신고가 된다는 건 뭐 당연하겠지. 그런데 되지도 않은 일로 신고를 한다면 누가 받아주냐고."
"너무 순진하네. 선배, 학교폭력이라는 게 증거가 명확히 남는 경우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SNS로 괴롭히거나 길거리 CCTV에 폭행 장면이 찍히지 않는 이상 증거를 잡기란 원래 어려운 게 학교폭력이겠거니 싶었다.
"아, 그러면 증거가 없이 그냥 우기는 전략인 건가?"
"쉽게 말하면 그거지. 그런데 그게 통해. 왜냐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벌벌 떨거든. 미디어에서 나오는 집요한 괴롭힘, 뉴스에서 간혹 터지는 끔찍한 사건들을 떠올리거든. 그리고 그건 학교폭력이 분명히 맞지. 처벌도 받아야 할 거고."
말을 마치고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아바타 주영이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는 장면을 메인 화면에 띄우며 율희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 잔인한 학교폭력으로부터, 혹시라도 신고를 못하고 벌벌 떠는 아이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학교폭력 제도가 몇 번 바뀌어. 웃긴 게 진짜 잔인한 범죄여도 처분은 별 거 안 나와. 진짜 피해받는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건진 모르겠네. 하여튼 그런데 신고는 무조건 다 받아줘. 증거가 없어도 우기기만 하면 학교폭력 심의위원회까지 직행이고. 거기에서 아무 처분도 안 내리면 학교폭력 은폐를 했다는 패러다임으로 공격당할까 봐 만만한 처분 조치는 근거 없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 지금 이렇게 축구를 하다가 몸이 부딪히거나 그런 일 하나 없어도 말이지. 지금 우리 아바타 주영의 심기가 불편하시다잖아. 신고가 가능한 거야. 크크."
제도의 특징을 쭉 들으니, 상당히 이용해 볼 가치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거 하나로도 학교 여럿 끝장 낼 수 있겠는데?"
서준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율희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맞아. 그리고 여러 학교에서 이미 우리가 손 안 대도 지들끼리 그러고 있고. 그냥 아무 일이 없어도 아이가 상대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로 학교폭력 신고를 걸면 돼. 무고죄니 뭐니 그런 거에 걸리지도 않아. 신고 즉시 아무 근거가 없어도 상대 아이를 최대 7일까지 교실에서 쫓아낼 수 있고, 한결 같이 우기기만 하면 상대 아이에게 처분을 받게 할 수도 있지. 진짜 재미있는 제도야."
아바타 주영은 '모둠 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며 인격을 훼손했음. 축구를 할 때에 자신을 무시하고 패스도 해주지 않고 왕따를 시켰음.'이라는 내용으로 117로 신고했다. 경찰 측에서는 학교로 신고 내용을 전달했고, 학교는 아바타 주영과 원준, 그리고 각자의 보호자가 의견을 서술하여 제출하도록 했다. 담임교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원준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교사와 학교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대한민국의 제도에서 교사와 학교는 어떤 교육적인 접근도 할 수 없었다. 도리어 신고가 접수된 이후 아바타 주영과 원준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면, 그것은 학교폭력 은폐로 처벌받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준과 율희도 담임교사가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 즉시 제도를 활용하여 담임교사를 학교폭력 은폐 및 아동학대로 신고할 계획까지 세웠기 때문에, 어쩌면 담임교사가 법률을 잘 지킨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이후 원준은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지목되어 7일 동안 교실에서 쫓겨나 즉시분리가 되어 별도로 수업을 들었다. 아바타 주영은 서준과 율희의 명령어를 충실히 이행하여, 한결같은 진술을 했다. 아무 근거가 없고, 사회에서는 이게 학교폭력으로 신고될 일인가 납득이 안 갈 사안이었지만, '축구를 하다가 패스를 안 했고, 모둠 활동 중에 반박을 했음.'이라는 사유로 원준은 서면 사과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교실 속의 모든 아이들은 이 과정을 지켜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학교폭력 신고를 당할 수 있고, 학교와 교사는 이걸 막아줄 수 없다는 것을 학습했다. 제도를 통해 불신을 또렷하게 체득한 셈이다.
"쉽네?"
"그치? 괜찮은 작전이라니까. 학생을 망가트릴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이미 알아서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가 잘 이용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