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쭉 써 내려간 초등교사 K의 10년일기 1

1. 임용 시험 준비와 기간제 교사 생활

by 꿈몽글

1. 임용 시험 준비


글을 쓰는 지금, 딱 교생 실습 지도 기간이라 조금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가 있네요.


임용 시험을 준비하던 그 시기는 정말 지옥같은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느 시험이 그렇듯, 임용 시험도 '선별을 위한 시험'이라는 대전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든요.


그런 시험의 특성 때문에 참 힘들고 고달프던 시기도 많았습니다.


아직도 수능을 다시 준비하는 그런 꿈은 나름 깔끔하게 즐겁게 꾸거든요?


'와, 인생을 다시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이런 느낌도 들고요.


그런데 임용 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그런 꿈은 정말 지옥같은 기분이 들어요.


악몽 그 자체이더라구요.


교육과정 원문과 교육부 지도서, 각 검정 출판사 지도서, 교육학 및 교수학습방법 이론 책자가 한가득 쌓여있는 장면이 다시 제 눈앞에 펼쳐지면 진짜 식은 땀이 흘러요.


막상 시험지를 보면 그냥 난이도는 그럭저럭이다 싶은데, 문제는 교육과정 범위의 시험 내용이 조금 휘발성이 강한 그런 느낌이어서요.


수험 생활 내내 통암기를 온갖 방법을 활용해서 했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지요.






[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날씨: 구름 많음]


오늘은 국어 지도서를 보다가 눈물이 났다.


부모님의 사랑과 관련된 지문이었다.


난 얼마나 많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을까.


빨리 갚고 싶어 미치겠다.


근데 여기서 임용을 떨어진다?


와, 상상도 하기 싫다. 진짜.


괜히 광역시로 썼나?


어지면 어쩌려고 뭘 믿고.


난 죽일 놈이다.






음….


이런 일기가 나온 배경을 설명드릴게요.


그 사설 모의고사를 진행하고 결과 발표가 나온 이후일 겁니다.


그때 점수가 15점인가 나왔나.


합격 점수로 보려면 최소 60~65점은 넘어야만 하니까,


이 사설 모의고사가 아무리 어려웠다 한들 합격 선보다 50점은 낮은 점수였던 거죠.


내가 왜 건방지게 광역시 지역을 썼을까 후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하필 광역시 지역들이 서서히 티오 규모를 줄이던 때라, 도 지역을 전략적으로 쓰던 동기들도 많았거든요.


이런 종류의 시험에 강점도 없는 걸 뻔히 알면서 무슨 깡으로 광역시 지원을 했을까,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었는데….


사설 모의고사에서 결과가 이렇다보니 우울한 정도가 극악에 달해버렸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그 준비하는 시간이 막연히 우울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동기들과 소소한 행복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스터디 그룹을 운영하면서 같이 맛있는 것도 가끔 사먹고, 각론 준비를 하다가 이런저런 재미있는 썰도 풀고.


가끔 후배들이 뭐 챙겨주려 오기도 해서 고맙기도 하고.


아, 후배가 챙겨줬다니까 그 때 그 일도 기억나네요.






[2014년 7월 21일 월요일, 날씨: 구름 조금, 맑음]


오늘은 후배 다인이가 음료수를 들고 왔다.


열람실에서 조용히 공부하다가 정말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문앞으로 나섰다.


다인이 얼굴을 보며 눈빛으로 대화를 하며 나갔다.


그러다가 그만…!


어깨로 열람실 형광등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뒤를 돌아보니 조금 컴컴했다.


무슨 상황인지 의아해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황해서 허둥지둥 전원 버튼을 눌렀다.


형광등 몇 개가 더 꺼졌다.


아, 방향이 이게 아니구나.


정신을 다잡고 다시 반대로 눌렀다.


환해졌다.


마음도 환해졌다.


고개를 꾸벅,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나왔다.


그러자 휴대폰 알람이 연달아 울렸다.


[야 너 뭐하냨ㅋㅋㅋㅋㅋ제 정신이냐]


[미X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시켜줄게. 너 그거 해라. 우리의 명예소방관.]


창피했다.


민망했다.


미안했다.


열람실에서 계시던 모든 분들께 그 몇 초간의 당혹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어깨로 실수로 눌렀던 거였어요.


흐아.


그렇게 시간이 지나 수능의 달, 11월이 다가옵니다.


모든 국민이 수능에 관심을 갖고 뜨거울 때, 임용 준비자들도 덩달아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난 뒤 일주일동안 그들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보통 대학수학능력시험 한 주 뒤에 수능이 치뤄지더라구요.


아닐 때도 있을 수 있지만.


임용을 보러 갈 땐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초등학교 1-2학년군 내용체계표를 달달 외웠습니다.


여긴 아직까지도 공부를 제대로 못했거든요.


외워도 외워도 안 외워지던 부분이라서,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봤습니다.


근데 수험장에서 이 부분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전 아직도 수험 생활에서의 막판 스퍼트를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본 것도 시험지에서 나올 수 있다는 그 희박한 가능성을 직접 경험해버려서.


아직 1차 시험 결과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2차 스터디를 또 준비해야 했지요.


수험 생활을 하면서 친해진 친구 한 명, 실습 메이트였던 친구 한 명과 함께 팀을 꾸려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2차 시험은 수업 시연, 영어 수업 시연 및 지도안 작성법에 대한 내용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이라서 더더욱 스터디 멤버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서로의 수업 시연을 보고 냉철하게 평가해주어야 하거든요.


저는 마음도 여려서 평가에도 참 예민하게 마음이 흔들렸는데, 좋은 스터디 친구들을 만나 부드럽고도 정확한 평가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차 시험 점수가 발표되었어요.


다행히 합격 지지선을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사실 믿을 수 없는 점수였습니다.


그때 점수가 83점대였던가.


그러니까 임용 시험 한 달 남짓한 시간이 남은 때에 치룬 모의고사에서도 과락도 면치 못할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었던 저였잖아요.


그런데 충분히 합격을 노릴 수 있는 점수라니요.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의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 중 몇 명은 시험 당일 컨디션 난조로 결과가 평소 실력에 비해 안 좋게 나와서 너무 슬프기도 했고요.


사실 교육대학교가 특수목적형 대학교 중 하나인지라, 졸업자가 초등교사가 아니면 할 게 없습니다.


또 실제로 초등교사가 되려는 목적을 이미 가진 사람들이 목표로 하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이다보니 임용에 모두가 모든 것을 거는 분위기인데, 결과가 서로 이렇게 다른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유쾌하지 않은 슬픈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 더욱 어려운 상황에서 임용 시험을 맞이하는 수험생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요.


지금도 교생 실습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 중 한 명이기 때문에,


현재 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분들이 또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체감하고 있거든요.


밖에서 뭐라고 떠들든 간에, 우리 재학생 여러분들이 교사에 대한 충분한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수험생 분들을 향한 응원도 이 글을 통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잠깐 현실로 와버렸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가서 회상을 이어갈게요.


2차 시험은 또 운이 상당히 중요해요.


수업 시연과 영어 수업 시연은 기다리는 순서가 정해져요.


문제는 끝 번호는 진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거든요.


아무 물건도 지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맨 몸으로 책상에 앉아서 바들바들 떨면서요.


스마트폰은 당연하거니와, 책도 읽을 수 없는 그 환경.


약간, 그 뭐랄까, 갑자기 독방에 갇힌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 제 친구 중 한 명은 마지막에 가까운 번호를 뽑아서 제 기량을 제대로 못 펼쳤대요.


저는 중간 정도 번호를 뽑았는데, 그래도 그 기다림의 순간이 힘들었거든요.


후,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열심히 기다려서 평상시에 준비한 발문 등을 잘 활용하여 시연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또 기다림의 끝에 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합격이었어요.


그 고달픈 시간을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참 감사했어요.


가족들은 물론이고, 임용 합격을 진심으로 응원해준 선배, 후배님들.


함께 으쌰으쌰 힘든 시기를 이긴 동기들.


정말 정말 고마웠어요.


특히 임용 준비 기간 내내 여러 선물을 준비해줬던 한 후배에게도 진짜 많이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어요.


과분하게도 많은 마음을 표현해주었는데, 그 때 제 눈앞에 닥친 상황들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잘 대해주지 못했거든요.


당장 제가 언제 군대에 가도 모를 상황이기도 했기에 불확실한 미래에 무서웠기도 하고요.


저보다 훨씬 좋은 분 만나 잘 살고 있다고 건너건너 잘 듣고 있으니 걱정은 없습니다만,


고마움과 미안함이 정말 컸습니다.


뭐,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임용 준비 기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기수는 임용 발령 정체 기간에 해당하였던지라 그 기간을 어떻게 채우냐 결정해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백수 생활을 진하게 즐길 것인가, 아니면 기간제 교사로서 일할 것인가.

이전 01화하루 만에 쭉 써 내려간 초등교사 K의 10년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