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신자 May 17. 2024

지켜 주시고, 숨겨 주시고

시편

주님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에 나를 숨겨 주시고,
나를 공격하는 악인들로부터 나를 지켜 주십시오. 나의 생명을 노리는 원수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시편 17편 8~9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두 분 다 아주 늦은 시간까지 집에 안 오셔서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전화를 했습니다.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별일 있겠나 싶어 방 안에 들어와 있는데, 생각이 이상한 데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큰 사고를 당해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갑자기 경찰에서 전화가 오면 어쩌지? 이런 생각 속에 있으니 어마어마한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께 두 분 다 무사히 집에 오도록 기도를 간절히 했습니다.

제 걱정이 무색하게 두 분 다 금방 집에 오셨습니다. 어딜 다녀왔냐고 물으니 금요철야에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다가 조금만 멀어지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존재감도 그렇고 하나님의 존재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이런 존재감의 동질성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일 때에 마음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막을 때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좀 더 이기적으로 누리고 싶은데 나눠주라 말씀하시고,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사랑하라 말씀하시니 마음에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찾아오면 따지기도 합니다. '아니, 하나님! 저들이 제 선한 의도를 이용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들은 분명 제게 이것을 바라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적으로 마땅하고 상식적인 이유로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한 두려움과 외로움이 마음 가운데에 찾아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먼저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다가옵니다.

"나는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로 항상 너를 지키고, 우주를 완전히 덮는 날개로 사망의 악의에게서 너를 숨긴단다. 너를 이용하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반드시 지킬 것이니, 두려움에서 일어나 함께하자. 담대하게 나누고 용기 있게 사랑하자."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가 땅 끝에 서 있을지라도 동일합니다. 뒤늦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 후회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함께하셨고 지금도 함께하시며 계속해서 함께하십니다.


세상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상식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 포기를 종용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두려움과 마주한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부드럽고 은밀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지킬 것이고, 숨길 것이다."

이 음성을 붙들고 조금 더 나누고 조금 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쁘심을 드러내 주십시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