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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May 20. 2024

그들은 오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시편

그들(악인)의 몸뚱이는 기름기가 번드르르 흐르고 그들의 입은 오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나를 뒤따라와 에워싸고, 이 몸을 땅바닥에 메어치려고 노려봅니다.
《시편 17편 10~11절》


일반적인 사람의 모임은 모임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구분 짓습니다. 이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해 일부러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제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 역시 이 특성에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공동체도 어쨌거나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기에 안과 밖을 구분하는 벽이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이 고백은 세상과 교회를 가르는 벽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이 벽이 우리를 규정하는 유일한 틀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신앙고백의 벽 외에도 우리는 여러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벽의 무서움은 얼마나 두터운지 알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벽 너머의 공동체 지체를 멸시하고 무시합니다. 심지어는 공동체 안에 있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주 쉽게 오만해집니다.


'다수의 횡포'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공동체의 결정에 있어서 보편화된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말입니다. 다수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한 해답이나 방향이라는 것은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수의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반대 의견에 강압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짓은 절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의 의견을 강요하고 그것을 이용해 벽을 쌓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되어 오만한 눈으로 상대를 깔보게 될 것입니다.


진리만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외의 모든 막힌 담을 무너뜨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렵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은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오늘 시편 기자가 말하는 '그들'에 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걸어가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지 않겠습니까.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 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진다면 그것을 무너뜨려 보기를 도전합니다. 또한 불편한 이웃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 보기를 도전합니다. 이런 도전 속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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