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덕후들이 각광을 받던 즈음, 나는 몹시도 우울했다. 누구는 뚜렷한 취미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서른인데 덕후들이 판을 치는 시대라니. 무색무취 인간으로 살아온 게 사회 탓은 아니지만 나는 자꾸 주변 탓을 했던 것 같다. 그저 그런 학교라서, 회사 때문에 일하느라 바빠서, 살기 바빠서, 그냥.. 그냥 그래서.
특히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던 회사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랑 똑같이 일하고 야근도 하면서 어쩜 저렇게 취미로 자기계발도 하는 걸까. 대체 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고 시샘하기도 했던 그때. 그리고 그런 나의 푸념을 따스하게 들어주었던 동료의 몇 마디.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다는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게 그날따라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리고 정말로 비교를 멈추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만 귀 기울인 채 지내왔더니 나에게도 몰랐던 에너지가 생겨났었다. 그때 깨달았다. 남는 에너지로 취미를 가꾸는 게 아니라, 취미를 가꾸다 보니 에너지가 나오는 거였구나.
없는 줄 알고 지내왔지만 사실은 방치해두고 있었던 내 소중한 취향들. 비록 뒤늦게 깨달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취향들이 오래오래 윤기날 수 있도록 앞으로 잘 가꿔나가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