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뀨우 Oct 31. 2020

K를 앞장 세워 자전거 얘기를 꺼냈다.

2020년 10월 스무하룻날의 단어들

비 오는 날이 아닌 이상 대게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오늘도 시간에 쫓겨 자전거 주차장으로 달려갔는데 K와 M의 자전거가 아직 남아있다. 이 시각까지 아직 집을 나서지 않았을 리는 없고, 혹시 오늘 빨간날인가 싶었지만 그럴 리 없어 일단 잽싸게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큰길로 나서자 앞에서 K가 걸어가는 게 보인다. 나는 한참 뒤에서부터 따릉따릉 자전거 종을 울리면서 K 옆에 멈춰 섰다. 자전거가 펑크나는 바람에 전차를 타고 출근한단다. 아이고 안 됐다. 신호등 불이 바뀌고 이따 사무실에서 보자며 다시 페달을 밟는데 순간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스친다. 공기를 넣어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지 않는 자전거 바퀴가 언제 펑크가 날 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이 참에 자전거를 바꿔달라고 해야겠다고.


K는 예정에도 없던 전차를 타고 오느라 3분 지각했다. 나는 K에게 우리 자전거가 만 엔인데 자전거 바퀴 수리하는데 삼사천 엔이고 이미 한두 번 수리한 적 있으니 이번에는 수리하지 말고 이 참에 새로 사달라고 하자고 했다. K도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솔깃한 눈치였다. 나는 T, Y, N의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K를 앞장 세워 자전거 얘기를 꺼냈다. K 자전거가 오늘 펑크가 났다, 우리가 이미 자전거 한 대 살 돈을 수리비로 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 사주면 안 되겠느냐. 우리의 진심 어린 호소가 약빨이 있었다기보다는 원체 착한 사람들인지라 곧바로 그러자고 했다. 오히려 한 술 더 떠 지금처럼 바구니 자전거 말고 자전거 좀 탄다 하는 사람들이 타는 자전거로 알아볼까 하고 농담까지 던졌다. 꽤나 밀당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모두들 흔쾌히 동의해준 덕에 일이 쉽게 해결됐다. 이번에도 고작 만 엔짜리 자전거를 사주겠지만 나는 T의 아량이 하해와도 같다고 속으로 칭송하며 지화자 쾌재를 불렀다.


밥을 안치느라 저녁이 늦어졌다. 밥솥에서 갓 퍼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과 뜨거운 물을 부어 된장이 소용돌이치는 된장국,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과 카라멜라이징한 양파 위에 매콤한 소스를 끼얹고 유자겨자 소스를 듬뿍 뿌린 양배추 샐러드를 더하니 거나한 한상이 차려졌다. 스마트폰으로는 지난번에 보다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켰고, 이제 진짜 젓가락만 들면 된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M한테 연락이 왔다. 지금 E의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있는데 오겠냐는 것이다. 나는 차갑게 식을 밥과 국과 삼겹살이 신경 쓰였지만 가겠다고 답장했다. E는 본인의 짐만 챙겨서 이사했을 뿐인데 가 없는 의 집에서 의 물건들을 챙기는 것이 뭔가 께름칙하기도 했다. 나는 원래 체중계만 가져가려고 했는데 밀대, 전기난로, 삼단 책장 그리고 문 앞에 있던 우산꽂이까지 알차게 챙겼다. 금이 가않았다면 전신거울을, 내 안방이 조금만 더 넓었다면 고타쓰까지도 욕심내려고 했다. 이런 나를 보고 K는 몇 달 뒤에 한국 가는 사람 많냐고 물어봤다. 집에 돌아와 식어버린 저녁을 마저 먹고 새로 들인 물건들을 걸레로 닦았다. 삼단 책장은 옆으로 흔들리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책상 위에 무질서하게 쌓아놓은 책들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전혀 흠잡을 것이 못 되었다.


ママチャリ:바구니 자전거, 엄마를 의미하는 'ママ'와 자전거를 의미하는 'チャリンコ'의 합성어, 엄마들이 많이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傘立て(かさたて):우산꽂이

炬燵(こたつ):고타쓰, 책상 밑에 열을 내는 기구를 단 뒤 책상을 이불로 덮어 사용하는 난방기구.

매거진의 이전글 '네-' 하고 대답했으니 나를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