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며 내 동료와 상사는 어떤 유형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관찰했다.
그럴듯한 말만 있고 알짜는 없는 경영과제를 위해 머리 짜내고 스트레스받기
눈치 보며 연차 내기
몇 분 쉬었는지 휴식시간 시스템에 등록하기 (유치원생도 이렇겐 안 할 텐데...)
퇴근하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하기
회식이나 좋아하고 가정에 소홀해지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거 하나 없이 살아가기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딱딱하고 무미한 고체의 삶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 조차도 그런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 몰랑몰랑했던 마음과 머리가 굳어가고 있단 걸 느끼기도 했다.
나는 건설사에서 건축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매일 도면과 구조계산서를 보면서 틀린 그림 찾기처럼 틀린 걸 찾아내고 디테일을 그려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 회사에서 하라고 하는 잡다한 일들도 해야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건축물의 파일 기초 도면을 보고 있는데, 정말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파일이 어디에 꼽히던지 몇 개가 꼽히던지 도대체 이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지?"
당연히 엔지니어로서 안전하고 적절한 설계가 될 수 있도록 검토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는 원래 수학이나 역학보다는 소설, 산문, 미술, 음악, 체육 같은 것들이 재밌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 하루는 수업시간에 국어책에 나오는 소설을 읽다가 울어서 친구들이 웃었던 일화도 있다. 또 미술도 좋아해서 미술을 하고 싶기도 했고 음악도 그랬다. 그렇게 예술을 접할 때 재미있고 기쁨을 느꼈던 아이가 지금은 네모난 A3 종이에 출력된 네모난 선들과 까만색의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틀린 것을 찾고 숫자가 맞는지 아닌지 보고 있으니 내 삶에 가득 찼던 형형색색의 빛깔은 다 빠져버리고 화이트와 블랙의 무채색만이 현재 남아 있는 기분이랄까. 또 언젠가부터는 매너리즘에 빠져 그저 하루를 보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일명 그 '파일 사건'으로 인해 나는 조금 다른 삶을 살기로 했다.
기상 알람으로 얼굴 찌푸리며 일어나지 않아도 저절로 기쁘게 눈이 떠지는 아침 맞이하기
생산성 높은 시간에만 일하고, 졸리고 피곤한 오후는 억지로 일하기 않기
주말의 번잡함은 피하고, 평일의 여유로움 만끽하기
사진, 영상, 그림, 글로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 놓을 작가 되기
내 인생 제2막은 고양이 같은 액체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