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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현 Jul 08. 2019

12 퇴사 후 365일 총 결산

일과 일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누구나 '일'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렌즈를 갖고 있다. 어떤 이의 렌즈는 한 가지 색깔의 일을 유독 크게 비추고, 어떤 이의 렌즈는 울퉁불퉁해서 일의 윤곽을 흐릿하게 보여준다. 퇴사 후 365일, 일과 일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동안, 나는 '일'을 바라보는 렌즈를 단단하게 장착하고, 그 해상도를 폭발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어떤 일을 손에 쥘 것인지, 혹은 거절할 것인지를 촘촘히 의식했던 행위는 곧 지금 여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감지하는 안테나가 되어주었다.  


 △내가 확인하고 실험하고 싶은 일을 △내가 연결되고 싶은 동료와 함께 △내가 일하고 싶은 장소에서 △되도록 반복하지 않고 △본업과 사이드잡의 구분없이 마음껏 해 본 1년. 알고보니 얼마나 다양한 카테고리의, 얼마나 많은 수의 일을 경험해보았느냐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다른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장 먼저 설명이 가능한 그런 일들을 골라낼 줄 알게 되었는지가 중요했다. 

그런 의미를 담아 일의 파도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이 곳에 총결산해본다. 


한 눈에 보는 365일


 지난 365일 동안 총 여덟가지 프로젝트를 굴리며 6개의 직업을 가져보았고, 서울과 강원 혹은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가능한 한 많은 장소에서 일 해보았다. 여덟가지 프로젝트 중 돈을 벌어들인 것은 다섯가지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공모전 혹은 정부지원금을 받아 예산을 집행하거나 내 돈을 썼다. 

 365일을 다시 12개월로 구분했을 때,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고 쉬었던 달은 없었다. 12개월의 절반인 6개월은 두 가지 일을 함께 병행했고, 나머지 절반인 3개월은 세 가지 일, 남은 3개월은 한 가지 일만 수행했다. 프로젝트 개수만을 두고 보았을 때, 나는 서로 중복되지 않는 2 개 카테고리의 일이 함께 돌아갈 때 최대 효율을 내는 사람이다. (세 건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간 시기, 그 때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글씨체부터 이미 지쳐있다. 반면, 한 가지 일에만 몰입했을 때에는 어떤 무료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발견은, 일이란 것이 대체로 그 일 하나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은 다른 일을 불러온다. 지금 일이 마무리되면서 다음 일과의 연결고리가 생겨나 자연스럽게 건너갈 수 있다면 베스트이다. 하지만 스스로 발전하거나 자가증식하는 일도 있고, 일 속에서 언제 만났는지도 모르는 인연이 새로운 일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일을 하다가 뜻밖에도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자원을 얻기도 한다. 그 때는 버킷리스트에 간직해온 일을 냉큼 꺼내어 빠르게 구체화할 수 있었다. 위 그림은 일과 일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을 대략 표현한 것이다. 외로운 섬처럼 동떨어져 존재하는 일은 없다. 일 위에도 일이 있고, 일 밑에도 일이 있었다. 



따로 떼어보는 일

 


 어떤 일을 할 지 말지 결정했던 가장 큰 척도는 내 호기심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경계선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그 것은 돈을 향할 때도 있었고, 함께 할 동료를 향할 때도 있었으며, 때로 내 역량을 향할 때도 있었다. 일의 끝맺음과 동시에 내가 확장된 느낌을 받은 적도 있지만, 물론 아직도 막혀있는 영역이 있다. 일 앞에서 품었던 질문들을 하나 씩 정리해보았는데, 굳이 답을 달지 않은 이유는 첫 째, 질문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더 주목하길 바라기 때문이며, 둘 째, 당신의 답과 나의 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웹기획자&PM | 서울시NPO지원센터

▷▶이전 회사를 통과하며 쌓아온 내 역량을 회사 밖에서 팔 수 있는가? 
▷▶퇴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인가?
▷▶퇴사생활동안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확보되는 일인가?

일의 내용 > 공공기관 홈페이지 개편/ 내부구성원-협력사 간 커뮤니케이션 코디
일의 리듬> 주2회/ 출퇴근/ 고정석/ 9 to 5
계약 형태> 용역수행
동료 유무> △ (주요 업무소통이 비대면)
보수 유무> ○
콘텐츠제작자 | 로컬인터뷰 프로젝트(어디가시나들)

▷▶주5일, 9 to 6, 52시간제 바깥에 존재하는 삶을 어떠한가? 
▷▶서울 바깥에는 진정한 워라밸이 있는가?

일의 내용> 강원도 로컬 청년들을 인터뷰하고 콘텐츠 제작 및 발행 (청년교류공간 <그 곳, 청년> 발간)
일의 리듬> 출장/ 디지털노마드
계약 형태> 지원사업
동료 유무> ◎
보수 유무> X
강사 | 외롭지 않은 방과 후 학교

▷▶팔리는 콘텐츠를 내 안에서 스스로 길어낼 수 있는가? 

일의 내용> 일과 커리어계발에 관한 본인 경험을 강의콘텐츠로 제작 및 진행
일의 리듬> 출장/ 일회성
계약형태> 프리랜서
동료유무> X
보수 유무> ○
문화기획자 | 무브노드 '로컬트립x존재명상' 

▷▶ 정부지원금이나 공모전이 아닌 '시장의 돈'을 벌어올 수 있는가? 
▷▶ 서울과 인적/물적자원이 다른 환경에서 일 한다는 것은?
▷▶ 디지털노마드로 일 할 때 내가 갖춰야 할, 일 기준과 태도는?

일의 내용> 1박2일 간 태백 로컬트립 + 명상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일의 리듬> 출장/ 디지털노마드
계약형태> 프리랜서
동료유무> ○
보수 유무> ○
문화기획자 | 골목콘서트 <별 일 있는 하루>

▷▶ 내 힘으로 모객할 수 있는 참가자 최대 규모는 얼마인가?
▷▶ 함께 일 하는 동료에게 보수를 챙겨줄 수 있는 사업을 해낼 수 있는가?
▷▶ 사람을 쓸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일의 내용> 송파구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2030세대 대상으로 '일' 관련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일의 리듬> 정신노동으로 시작해서 육체노동으로 끝남
계약형태> 공모전
동료유무> ◎
보수 유무> X
웹기획자&PM | 공공기관(재계약)

▷▶ 재택근무로 일 할 때 내가 갖춰야 할 일 기준과 태도는?

이하 상동
바리스타 | Index 서점

▷▶ 육체노동이 가진 일의 리듬은 어떠한가?

일의 내용> Index 서점 내 까페운영 및 핸드드립 음료 제조 
일의 리듬> 주2일/ 시간제/ 현장직
계약형태> 파트타임
동료유무> ◎
보수 유무> ○


일과 일 사이를 유영하면서


일과 일 사이를 유영하는 동안 단편적인 생각들도 함께 떠올랐다. 그 내용을 키워드 중심으로 옮겨본다. 


지원금에 대하여

 본인이 일 단계 어느 지점 쯤 서 있느냐에 따라서 지원금은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초보 독립활동가로서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쌓여있지 않다면, 지원금은 안전한 비빌언덕이 되어준다. 경제적인 부담없이 내가 하고자하는 바를 충분히 실험할 수 있고 또 실패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칭을 조금만 해 보아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그러한 목적으로 설계된 정부지원금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예산을 받은만큼의 행정업무와 결과보고를 감수해야한다. 또, 예산에는 본인의 인건비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일이 진행되는동안 내 스스로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기본 여유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프로젝트 당사자도 인건비를 집행받는 지원금이 생겼다고 하지만 매 년, 매회 규정이 달라지므로 복불복인 셈이다.)  

 

 나는 팟캐스트 <내-일은가볍게>를 제작할 때 정부지원금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원금 예산안을 짜고-집행하고-결과보고하는 사이클을 몇 번 반복하다보니 어떤 회의감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청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런저런 지원을 받을 수 있겠으나, 몇 년이 흐르고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뗐을 때는 지원금 없이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가? 정부지원금은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행위에 사용될 수 없다. 따라서 지원금을 사용하여 제작한 결과물은 시장에서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욕구는 점점 시장을 향해 나아갔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시장에서 재화로 교환가치가 있는 것인지, 가치가 없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평가받고 싶었다. 냉혹한 평가가 있어야만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원금은 양 날의 검이다. 쓰다보면 결국 의존하고 안주하게 된다. 내가 특정 단계까지 발전하면 지원금으로부터 반드시 자립하겠다는, 그런 구체적인 시점을 정해놓고 지혜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돈에 대하여

 돈을 버는 것, 그리고 돈을 쓰는 것. 사실 돈을 버는 것은 여전히 도통 방법을 모르겠다. 내가 뛰어넘지 못한 단계인 듯 하다. 그러나 돈을 쓰는 데만큼은 확실한 기준이 생겼다. 

화폐, 즉 돈을 오로지 내 욕망을 채우기위해 사용하는 것은 소극적인 사용양식입니다.
화폐지출은 마땅히 관계에 투자하는 것이어야합니다. 그것을 구입함으로써 어떤 관계가 만들어지는지 생각하는 것이 곧 자신을 중하게 여기는 것과 이어집니다.  
                                                                                                            - <단단한 삶>, 야스토미 아유무

  <단단한 삶>의 저자 야스토미 아유무 교수는 '화폐, 즉 돈은 타인과 신뢰관계를 만들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큰 영감을 얻은 후, '장기적으로 누구와 연결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예산 집행의 기준으로 세웠다. 내가 동료로서 함께 일 하고 싶은, 혹은 무대에 세워 빛을 비춰주고 싶은 그런 인물들과 연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장치로 '돈'을 사용했다. 앞으로도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이 기준은 유효할 것 같다. 


동료에 대하여

 있어도 탈, 없어도 탈인 것이 동료라고 생각해왔다. 먼저, 회사 안에서는 조직이 정해준 사람과 동료로 묶여 좋든 싫든 맞춰가면서 일을 했어야했고 그게 탈이었다. 그러나 회사 밖에서는 동료가 잘 구해지지 않는 것이 탈이었다. 나와 핏이 맞는 동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율성이 있었지만, 이러저러한 지향점과 일하는 성향, 무엇보다 일의 조건이 맞는지 간(?)을 보는 것이 지난한 과정이었고 그게 점점 피로해졌다. 

 처음 스스로의 일을 시작할 때는 혼자서 A to Z를 다 직접 챙기고 싶었다. 그게 진정한 자립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진정한 자립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잘' 받아야 가능한 일이며, 나는 동료가 있을 때 훨씬 더 멀리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아이디어를 보태주고, 잘잘못을 짚어주고, 또 내가 어디 쯤에서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지 지켜봐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아마 퇴사 후 365일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동료는 내가 일에서 유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디지털노마드와 재택근무에 대하여

 얼마나 낭만적인 단어인가. 디지털노마드와 재택근무를 직접 경험해보니, 이는 조직의 성격과 나의 성격에 더해 일의 성격, 그리고 생애주기 4박자 합이 맞아야떨어져야 찰떡같이 굴러가는 라이프스타일이더라. 


 2019년 초, 4개월 간 재택근무 형태로 웹 기획 업무를 했다. '웹 기획'은 일 특성 상 인터넷만 연결되어있다면 어느 장소에서든 업무가 가능했고, 조직 역시 새로운 형태의 근무방식을 용인해주었기에 시도해볼 수 있었다. 4개월 간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째, 나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업무협의를 상당히 답답해하는 사람이었다. 둘 째, 일하는 풍경이 바뀌어도 일하는 나의 바이오리듬은 변하지 않았다. 어디서 일하든 일은 일이었다. 더불어 재택근무자의 하루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조직의 반응도 상당히 신경쓰였다. 

 

 어떤 하루를 예로 들어보자. 오전 10시에 이메일을 체크하고 답변을 하는데 1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서 급한 일로 11시 반 쯤 카톡이 와 다시 답변을 작성하는데 15분 간 업무를 보았다. 그리고 협력사로부터 14시에 테스트 결과를 받아 이를 다시 1시간 쯤 정리한 후 결과보고 이메일을 발송했다면, 나는 그 날 하루 총 2시간 15분 일을 한 것일까? 

 

 애석하게도, 일에 대한 내 주의력은 스위치를 껏다켰다하는 것처럼 심플하게 제어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을 숫자로 보았을 때 나는 하루 2시간 15분 일을 한 사람이지만, 일하는 당사자인 내가 체감한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4시까지 4시간에 걸쳐 내내 이 일에 신경을 쏟은 느낌이다. 이 간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은 업무에 더해진 플러스알파였다. 

 

 따라서 재택, 혹은 디지털노마드로 일하는 사람이, 그 일의 리듬을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거나, 조직 또한 그러한 형태로 일하는 구성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이는 도리어 성가신 장애물로 돌변할 수 있다. 겉으로 좋아보이는 것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는 일 환경을 디테일하게 알고 있어야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다.  


프리랜서에 대하여

 프리랜서에 대해 이만큼 잘 정리된 글이 또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읽은 글을 옮겨와본다. 

 <둘이 함께 프리랜서> 저자 윤이나님의 서문 챕터이다.

 그러니까, 프리랜서는 되고자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프리랜서는 직업이 아니고 상태거든요.
(중략)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없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프리랜서라는 삶의 상태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프리랜서를 굳이 정의하자면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물론 대개 선택되지만), 일상을 스스로 꾸리며, 일과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을 스스로 정할 자유가 있고, 대신 모든 선택을 오롯이 책임져야하는 사람. 프리랜서의 자유란, 이런 것이다.
(중략)
 어떻게든 프리랜서라는 상태의 직업인이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프리랜서다운 생활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소하게는 카페에서 일하기 좋은 자리 찾기라든가 가계부 정리의 기술로부터 종합소득세의 달 5월을 넘어서는 법부터 일을 거절하는 기술이나 건강 챙기기, 억지로라도 휴가 만들기 등의 기술이 없다면 프리랜서의 삶은 마감 때마다 밤을 지새우고, 동틀 때 잠들고 노을이 질 때 눈을 뜨다가 몸이 망가져 버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짧게나마 내가 경험해본 프리랜서란, 고도로 숙련된 '나 조련사'이다. '나'라는 인간을 잘 어르고 달래서 일을 하게 만드는, 그냥 일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탁월한 성과를 내는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여러 레벨이 존재한다면(회사에 완전히 소속되거나, 반만 소속되거나, 완전히 독립하는 단계 순으로), 프리랜서는 최고점에 위치한 삶의 기술자이다. 


조직에 대하여

 그리하여 프리랜서인 '나 조련사'가 혹독하게 나를 굴리는데에 비하면 조직은 아주 관대한 것이다. 일단 매 달 먹고살 수 있는 월급을 준다. 그런데 정말로 그 월급에 비례한 성과를 냈는지는 생각보다 까탈맞게 평가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어디로 출근해야할지 걱정하지 않도록, 내 자리를 정해진 곳에 마련해준다. 출출할까봐 간식도 챙겨주고, 혼자 일하면 외로우니까 동료도 붙여주고, 의욕이 떨어질 때 즈음 소소한 용돈도 챙겨주며, 있어도 그만이지만 없다면 섭섭한 복지도 있다. 이 쪽 세계와 저 쪽 세계를 넘나들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다. 


사람을 쓰는 일에 대하여

 거꾸로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된다면 나는 어떨까? 2019년 1월, 골목콘서트 <별 일 있는 하루> 행사를 기획할 때 내 목표는 '동료들에게 금전적인 보수를 챙겨주는 사람되기'였다. '금전적인 보수를 챙겨준다'는 것은 나와 동료 사이에 돈이 오고간다는 것에 더불어서 '동료에게 일을 맡긴다'라는 행위가 발생한다.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내가 되게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큰 제목 정도로만 가이드를 제시하고 지켜봐주기. 상대가 어떤 스타일로 일을 수행하든 1도 괘념치 않으며 믿고 맡길 수 있는 큰 그릇. 경기도 오산도 이런 오산이 없었다. 나는 촘촘한 주기로 일의 경과를 알고 싶어했고, 결과물이 예상과 다르면 크게 불만족스러워하며 배포도 간장종지만 한 사람이었다. 한 프로젝트 안에서 실패한 고용도, 성공한 고용도 있었지만 되도록이면 앞으로는 사람을 쓰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고, 나 같은 사장님을 아직까지 만나지 않은 것에 몹시 감사하게 되었다.      


자유와 책임에 대하여

 자유와 책임이 얼마나 끈끈히 묶여있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인지를 체감한다. 과거에는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책임도 감내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라는 단어를 하나의 상으로만 넘겨짚지 않는다. 그 것이 어떤 자유인지, 그 책임의 무게는 얼마나 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줄 알게 되었다. 내 깜냥을 고려했을 때 진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유인지 고민하는 지혜도 생겼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단단한 확신이 바로 섰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짐을 안다. 그런 자유에 수반되는 책임만을 오롯이 내가 지고갈 수 있음을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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