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현 Mar 06. 2019

06 퇴사하기 전 '꼭' 해봐야 할, 나만의 1km트랙

누군가의 퇴사 고민이 가벼워질 수 있기를, 팟캐스트 <내-일은 가볍게>

'묻지마취업'으로 시작한 회사생활에 불만이 쌓였다. 


 당초 내가 지원했던 세일즈 팀이 아닌, IT 운영팀에 배치가 되었다. 난데없이 개발자를 상대하는 일을 맡았고, 전화통화할 때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푹 푹 내쉬는 한숨소리에 식은땀 흘리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 일을 시작으로 나는 임직원 커리어를 1도 고민하지 않는 회사,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눈 감고 있는 사람들에게 점점 화가 났다. 100개의 이력서와 20번의 필기시험, 12번의 면접을 거쳐서 죽을 둥 살 둥 들어온 회사인데... 겨우 이렇게 일 하려고 개고생 했단 말이야? 실망감은 겹겹이 쌓이고 입사하자마자 금세 퇴사하고 싶어진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하루하루 퇴사 고민을 끌어안고 있을수록 어쩐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나 혼자만 끙끙 앓아야 하지? 내가 퇴사하고 싶은 이유는 99% 회사 때문인데, 회사는 왜 때문에 고민 안 해? 회사 안에서는 왜 퇴사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지? 퇴사는 금기어인가? 하는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광화문대로 옆 카페에서 본 문구, 작은사원을 건드리면 큰일 난다

 

 퇴사와 관련된 온갖 책을 뒤적인 것은 이때부터이다. 도대체 퇴사란 뭘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회사를 향한 내 불만은 합리적인 것일까,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매일 아침 첫 번째 하루 일과는 인터넷 창에 '퇴사'를 검색하는 것. 그 당시 나는 '퇴사'를 말하는 곳이라면 정말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기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 피드를 휙휙 밀어내리다가 한 광고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퇴사준비를 '잘'하면, 오히려 회사를 놀이터처럼 다닐 수 있다고? 
회사에서 갑질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월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고?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그래 여기다 여기. 분명히 이 곳에 답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퇴사학교 입학생이 되어 <액션창직랩>이란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고, 4주 간의 혹독한(?) 퇴사준비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 4주였지만, 수업의 꽃은 29금 직장인 파티에 있었다. 함께 클래스를 수강했던 직장인이 8명이 무려 한 달 동안 퇴근 후 다시 시청 스타벅스로 출근하는 이중생활을 오가며 작당을 꾸민 것이다. 눈물 젖은 사원증을 목에 걸어본, 사전수전 다 겪어본 평균 연령 29세 이상 회사인들을 초대해 직장인 토크쇼를 개최한 것이다. 

29금 직장인 파티 포스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점점 어려워지는 경기,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세대 간 격차, 곧 불어 닥칠 4차 혁명이라는 미래로 시작해 '퇴사'로 수렴되는 고민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심란한 마음을 가졌던 주제였기에 많은 공감을 샀다. 이십 대를 가득 채운 꿈과 열정은 왜 회사의 문턱을 넘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은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토크쇼를 한창 진행하는데, 객석 끝에서 나이 지긋해 보이는 분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젊은 팀원들이 자꾸 회사를 그만두는데, 진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팀장으로서 어떻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퇴사'는 신입사원 혹은 대리급 젊은 직원들에게만 고민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팀장님에게도 엄청난 고민거리였다. 이 자리까지 찾아와 주신 그분께 감사하고 대단하다며 감탄한 동시에 든 생각은 이랬다. 사무실에 함께 앉아있는 모든 이들이 고민하는 일이 퇴사인데,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문제의 시작 아닐까? 회사생활과 퇴사 생활을 건강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팟캐스트 <내-일은가볍게>는 언제 어디서나 퇴사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퇴사'라는 단어를 가볍게 만들어보자며 시작한 일이다. 액션창직랩을 이끈 강사와 우수졸업생 2명이 뭉쳤고, 각각 회사 안에서 길을 찾는 ‘회사러’, 퇴사를 꿈꾸는 ‘퇴사러’, 회사생활-퇴사생활을 끝에 스스로 직업을 만든 ‘창직러’로 변신했다. 매 회 에피소드마다 할 말 많은 단어(야근, 휴가, 시발비용...) 하나를 두고, 세 사람이 균형 있게 씹고. 뜯고. 맛보는 방송 -13개월 간 총 29편 에피소드- 을 제작하며, 인기 에피소드는 무려 재생수 8만 회를 넘기는 기록도 세웠다.  


팟캐스트가 돈이 돼? 하면 한 달에 얼마 벌어?


 글 제목이 <퇴사하기 전 '꼭' 해봐야 할, 나만의 1km 트랙>인 이유는, 팟캐스트 제작이야말로 내가 했던 퇴사준비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퇴사 소식을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퇴사를 준비했느냐는 것이다. 팟캐스트를 제작했다는 대답에 이어지는 지인들의 반응은 열이면 열, 다 똑같았다.  


팟캐스트 그거 돈이 돼?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 아닌가? 그거 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벌어? 


 이다음에는 길고 긴 나의 해명이 이어진다. 팟캐스트로 한 달치 월급을 만들어서 퇴사했다는 말이 아니야..   

그럼 도대체 팟캐스트 제작과 퇴사준비가 무슨 상관인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겠다. 그래서 아래에는 13개월 간 팟캐스트를 제작했던 일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팟캐스트 <내-일은가볍게> 커버 사진

 첫 째, 조직 밖에서 한 최초의 일 경험이다. 우리는 20대가 훌쩍 넘을 때까지도 시키는 일을 하는데에 익숙하다. 학교가 시키는 공부, 가족들이 기대하는 역할, 회사에서 할당되는 업무까지. 팟캐스트 <내-일은 가볍게>는 내가 처음으로 자발적인 동기에서 만든 '내 일'이었다. 스스로 일의 의도를 세우고, 범위와 규칙, 수행방식 모두를 결정하면서 배운 것들이 많다. 작게는 이런저런 실무들 -이를테면 콘텐츠 기획, 예산집행, 대본 작성, 스튜디오 섭외, 프리미어 편집과 굿즈 제작 등)을 0부터 배워가면서 해냈고, 크게는 일이 되게끔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세 가지 1) 하고 싶은 마음, 2) 동료, 3) 돈 을 깨우쳤다. 


둘째, 내 회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여유이다. 실제로 돈을 벌진 못했지만, 조직 밖에서 먹고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마음에 여유가 일어났다. 분노는 가라앉고 이제 내 회사, 내 월급, 내 직무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팟캐스트 메인 주제인 '퇴사'는 내가 당면한 문제였기에, 방송 회차를 거듭할수록 내 생각도 점점 발전했다. 특히,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사연을 보고 들으며, 현 직장의 장단점과 내 위치를 촘촘히 정리할 수 있었고, 또 조직 밖에서 만들 수 있는 돈과 내 월급의 크기를 비교하며 현실감각을 일깨웠다.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다. 대기업은 몇 백 명의 직원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곳이기에, 한 사람의 생각이 변화할 때마다 1º 씩 움직이는, 체질적으로 변화가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조직임을 완전히 이해한 것.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퇴사 전 해야 할 일 목록을 정리했고, 이를 하나 씩 도장깨기 해가면서 퇴사완전체가 되기 위한 스텝들을 차근차근 밟았다. 


셋째, 회사를 뛰어넘는 다양한 연결고리가 생겼다. 오직 광화문의 사람이었다면 결코 닿을 수 없었을 다양한 인연들을 만났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간직해도 괜찮다고 말하며 내 세계관을 넓혀준 성우. 남들이 아니라고 말할 때 용감히 연차보장법을 주장하며 이 세상 신입사원들의 히어로가 되어준 갱님. 매거진 <월간퇴사>에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곽승희 편집장님과 팟캐스트 제작에 금전적인 도움을 준 여러 가지 지원들. <내-일은가볍게>를 통해서 만난 모든 것들이 퇴사 후 365일을 지탱해준 버팀목이 되었다. 


 스스로 내 일을 만들기 전과 그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조금 더 비장하게 말하면, 한 번 이 쪽으로 넘어온 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그 재미를 알아버렸고, 또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또, 곳곳에 좋은 동료들이 많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함께 작당해볼 많은 일들이 떠올라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게 퇴사해도 괜찮겠다는 감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모든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조언하고 싶다, 나만의 1km를 꼭 만들어보라고.    



그 밖에 더 하고 싶은 것들-

1. <내-일은가볍게>를 함께 해주었던 청취자 댓글


2. 언론에 소개된 <내-일은가볍게>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469&aid=000028383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69&aid=0000366773&sid1=001 


매거진의 이전글 05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희.로. 애.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