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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현 Mar 20. 2019

07 주 5일제 40시간 근무너머에, '로컬'로 향하다

<어디가시나들> 로컬 인터뷰 프로젝트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우리는 이른바 '성공한 인생'을 좇아서 더 큰 도시로, 더 큰 대륙으로 자꾸만 나아간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에는 왠지 모르게 뭔가 빠져있는 느낌. 나에게 맞는 자리,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한 고민이다. 어느 순간부터 삐그덕거린다. 애써 모른 척하고, 삐그덕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가다 보면, 머-리어깨무릎발 결국에는 마음까지 아파온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지점에서 그렇게 멈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야기이다. 


잠시 멈추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출처: Google)

 

 작년 2월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뜬금없이 시골앓이가 시작되었다. 주인공 혜원처럼 논에서, 밭에서, 직접 키운 농작물로 정성 가득한 한 끼를 만들어 먹다 보면 '아, 인생이란 이런 것이지' 하며 정답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퇴사하고 얇아진 주머니도 내가 서울 밖으로 눈을 돌리는 데 한몫했다. 직장인 시절에는 황금 같은 휴가가 아까워서 무조건 멀리멀리,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해외로 향했다. 주머니가 얇아지니 왕복 비행기 티켓 값으로 3박 4일을 먹고 놀 수 있는 '로컬' 무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내-일은가볍게> 사연함에 들어온 한 통의 소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블루칼라로 일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더 힘든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화이트칼라 사무직의 애환을 알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공장러'라는 청취자가 있었다. 3교대 스케줄 근무를 하는 생산직 직장인이다. 공장 근무 특성상, 회사에서 휴가를 줄 때 늘 하루 전 날 갑작스러운 휴가 통보(?)를 한다고 했다, '00 사원, 내일부터 3일 간 휴가야~' 그래서 본인은 단 한 번도 휴가 계획이란 걸 세워본 적 없단다. 추신에는, 본인이 지금까지는 블루칼라로 일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더 힘든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내-일은가볍게>를 들으며 화이트칼라 사무직의 애환을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고 전했다. 댓글을 읽으면서 움찔했다. 나 역시 막연히도 청취자 대부분이 사무직, 즉 9 to 6 오피스 책상 위에서 머리 싸매고 일 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라고만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일의 자리, 일의 형태, 일의 방식을 알고 싶다. 퇴사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오르자, 나의 욕구도 이렇게 모양새가 달라졌다. <내-일은가볍게>에서 회사생활에 대한 이모저모를 충분히 이야기했고, 덕분에 건강하고 안전한 퇴사(아니 회사 졸업)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일 안에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는 주 5일제, 9 to 6, 주 40시간 근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졌다. 

 특히, 도시가 아닌 곳에서 스스로 자원을 그러모으며 뿌리내린 젊은 친구들이 궁금했다. 새롭게 끓어오른 욕구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가 바로 <어디가시나들>이다. 로컬에서 자기 나름대로 일과 삶 균형점을 찾아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는 여행, <어디가시나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로컬 땅에서 자라난 좋은 것만 소개합니다!


 자, 전편 '06 퇴사하기 전 '꼭' 해봐야 할, 나만의 1km 트랙'에서 말한, 일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재료는?


1. 하고 싶은 마음
2. 동료
3. 돈


 셋 중에서 나는 '돈'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돈이 있으면 없던 마음도 생기고, 없던 동료도 생기기 때문이다, 라기보다는 일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특히 내 돈보다, 남의 돈에서 생기는 효과가 훨씬 탁월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어디가시나들은> 마찬가지로 돈이 확보되면서 일의 속도가 쭉쭉 붙었다. 우리가 확보한 돈 자원은 청년교류공간 '이음발굴단'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삼삼오오 인문실험'. '이음발굴단'은 원하는 지역 탐방 계획을 직접 짜고, 공간 혹은 청년들을 만나 네트워킹한 뒤 그 이야기를 인터뷰 콘텐츠로 제작하는 여행 프로그램이고, '삼삼오오 인문실험'은 해결하고 싶은 인문학적 문제를 설정해 직접 답을 찾아보는 실험 프로그램이었다. 각각 100만 원과 200만 원, 3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강원도는 감자다? 


 첫 탐방지로 강원도를 세웠다. 강원도는 '강원도=감자'라는 선입견을 스스로 깬 매력적인 지역이기 때문이다. 춘천은 더 이상 닭갈비가 아니다, 양양은 더 이상 연어-송이가 아니다, 속초는 이제 오징어순대가 아니다. 우리 시선에서 강원도는 힙한 곳, 밀레니얼 힙스터들이 이른바 '강원도 바이브'를 좇아오며 이제 막 들썩이기 시작한 동네였다. 초창기 제주도, 그러니까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모이던 그때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동네라고 판단했다. 인스타그램, Youtube, 그리고 각종 주간지 채널을 섭렵하며 사전조사를 촘촘히 진행했고, 탐방 스폿을 도장깨기 할수록 우리 예상이 적중했다는 감이 왔다. 

 감사하게도,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Guru와 같은 분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외지인은 알기 어려운 강원도 속사정, 역사, 여러 명의 청년과 배경들까지, 이 분을 따라다니며 많은 정보들을 압축적으로 얻었다. 덕분에 강원도에 대한 이해력이 순식간에 높아졌다. 강원도는 엄청 큰 땅에 걸쳐져 있다. 같은 강원도에 살더라도 만나기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교통편이 서울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있게도 우리가 인터뷰를 하며 만난 강원도 청년에게 또 다른 강원도 청년을 소개해주며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리하면, 2018년 7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총 11 차례 강원도를 오고 갔고, 도시 별로 따지면 아래와 같다.

평창 ●●●● 
태백 ●●●●●●
춘천 ●●●
속초 ●●●
고성 ●●
강릉 ●

 강원도에서 만나 친구가 된 젊은이는 14명이고, 총 10편의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으며, 5개의 행사에 게스트로 참가했다. 그리고 태백에서는 또 하나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강원도는 어떤 기운으로 우리를 계속 끌어당긴다.  



모든 젊은이들이 서울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반년간 강원도를 오가며 얻은 교훈이 많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내가 상상했던 목표는 정말 얇디얇은 것이었다. 그만큼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시야가 확장되었다. 이제는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린다. 뉴스로만 접해온 인구감소, 저출산과 고령화, 도농 간 격차와 부동산 문제가 이제는 구체적인 풍경, 동네 모습과 사람들의 얼굴로 다가온다. 강원도 전과 후로 내 삶의 가치관마저 달라졌다. 몇 가지 인사이트를 짚어보자면,


1. 모든 젊은이들이 서울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 사는 젊은이라면 누구든 서울을 동경할 거라고 넘겨짚었다. 서울토박이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이들은 서울을 무조건 동경해서 고향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교육시스템, 부족한 일자리, 부족한 자원으로 인해 일정 시점에 이르러 고향으로부터 튕겨져 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나고자란 곳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을 보았고, 지역에 스스로 판을 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편에서-


2. 서울과 강원도는 이중생활이 가능하다.

 강원도는 지리적인 이점이 정말 크다. 서울과 생각보다 아주 많이 가깝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효과로 동해안을 따라 KTX가 뚫렸고, 고속버스 스케줄도 웬만한 지하철 배차시간(?)만큼 빽빽하다. 심지어 춘천은 지하철-고속버스-ITX 까지 골라타는 재미가 있다. 실제로 춘천에 거주하며 서울로 통근하며 삶의 질이 꽤 높아졌다는 사람도 만났고, 서울 4일-강원도 3일 살면서 도시와 자연 양 쪽에 걸쳐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도 보았다. 강원도가 앞으로도 잠재력이 큰 지역인 이유이다.  


3. 지역을 여행하는 것과 지역에서 일하는 것은 다르다.

 중요한 지점이다. 나 역시 강원도로 이주할까 본격적으로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역을 여행하는 것과 지역에서 사는 것은 완전 차원이 다르다. 여행을 할 때에는 좋은 것만 보인다. 약간의 불편함 혹은 사건사고도, 여행기간 중 운 좋게 경험해본 특별한 어떤 것으로 포장된다. 왜냐하면 나는 곧 내가 살던 도시로 돌아갈 거니까! 

 진짜 이 동네에 이사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다시 보자. 버스 배차간격, 대형마트, 편의점, 각종 문화시설 등, 내가 공기처럼 누리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일 것이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열린 마음,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 특히 우악스러운 시골 어르신들께 귀염 받을 수 있는 붙임성 또한 내 안에 진짜 있는가? 살펴보자.

 

4. 그래서 지역에서는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혁신적인 일이다.

 서울과 지역은 리소스 차이가 크다. 하지만 매사에 장과 단이 있듯이, 부족한 리소스는 불편함이자 기회이다. 특히,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무브노드 김신애 대표는 인터뷰 중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행복한 것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그 느낌 때문이에요. 태백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 여건이 되니까요. 이제 비로소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대, 그곳이 지역이다. 


5. 지역에 생겨나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재발견하다. 

 지역마다 코워킹 스페이스가 생겨나는 추세이다. 강남 테헤란로를 걷다 보면 열 보에 하나 씩 보이는 그런 코워킹 스페이스와는 다르다. 이를테면, 춘천 제일약방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제공하면서도, 로컬 청년과 외지 청년들이 자연스레 섞일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는 관광객과는 또 다른 접점인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코워킹 스페이스가 로컬 생태계에 미칠 파급력이 궁금하다.   

 


취향과 즐거움도 자꾸 계발해야 인생이 풍부해진다


 지난 반년간 내 안에서 탁월해진 것들이 있다. 단단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공간도 다르게 만든다, 열정을 가진 사람이 만든 제품은 에너지가 다르다. 강원도를 오고 가며 눈 뜨게 된 감각이다. 부동산이나 사업, 어떤 전망 같은 것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애정이 담긴 것과 아닌 것, 열정을 쏟아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예전에는 내 손에 주어진 모든 것 -음식과 옷, 또는 공예품- 이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흐릿하거나 삭제되었는데, 이제는 누가 어떤 수고로움을 보탰는지 안다. 감사한 마음이 부쩍 자랐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막연하게 피어난 귀촌 낭만이 거품처럼 걷혔다. 이제 나는 서울을 벗어나서 먹고사는 일이 어떤 모양새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상상할 수 있다. 서울에서 지역으로 건너오려면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이제 막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강원도 사람이 되는 그 날을 꿈꾸며- 


 마지막으로 글 쓰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어디가시나들> 인터뷰 글을 만지는 일이 사실은 엄청나게 괴로웠다. 마감 날까지 매일 머리털을 뽑았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은 10,000 만큼인데, 내 글에는 10 만큼도 담기지 않아서 속상했다. 아마도 인터뷰이와 나눈 내용 모두를 담으려는 내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욕심을 좀 내려놓고 진짜 기억에 남는 한 가지, 내 가슴을 쿵 치고 지나간 한 마디를 포착해서 글을 시작했다. 그러자 내 글이 독자들에게 싹 흡수되는 것 같았다. 나만의 시선으로 인터뷰이에게 빛을 비추고, 인터뷰이를 멋진 인물로 일으켜 세우는 모든 과정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을 인터뷰이가 좋아해 줄 때,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그 날 하루가 행복해졌다는 피드백을 받은 그 순간, 이 작업을 멈출 수 없겠다는 느낌이 왔다. 




<어디가시나들> 로컬 인터뷰 프로젝트 전문은 브런치 매거진에 실려있습니다. 


<어디가시나들>은 서울토박이 & 경기토박이로 자란 두 가시나들의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평일에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다가, 주말이면 로컬 청년들을 만나러 기차를 탑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의 용기 있는 시도들을 응원합니다. 가시나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좋은 것들을 계속 모아나갑니다.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은데 스스로 정한 마감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가시나들은 일감을 사랑합니다 ♡ 
함께 작업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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