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The Ending Credit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영화가 계속된다면 그들의 삶은 행복할까?
당신이 사랑이라 믿은 잔혹한 진실
글·사진 감성현
#흔적_01
퇴원하고 돌아온 서재엔 사람의 온기라곤 없습니다.
차가운 냉동고 안에 들어온 것만 같습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느껴본 적이 없는데, 너무나 삭막합니다.
평소처럼 밥을 차려 먹습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간단하게 책상 위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합니다.
자기 전 양치를 합니다.
세면대 위에 놓인 머그잔에 두 개의 칫솔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것과 달리,
또 다른 하나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 새것입니다.
머리가 아픕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아닌지 좀처럼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공간 그 어디에도 이제 그녀는 없다는 것입니다.
#흔적_02
그녀가.
아니면 내가.
완성해 놓았을지 모를 그림을 바라봅니다.
그림 속 그녀의 얼굴이 다정하게 날 바라봐 줍니다.
햇살을 머금고 펼쳐진 커다란 날개로 날 감싸 안습니다.
힘들다.
이제 그만 해도 될까?
그래도 될까?
그렇게 할게.
나, 너무 힘들다.
그림 속에 그녀가 있습니다.
아기처럼 투명하던 볼.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입술.
작고 귀엽던 코.
그리고 날 바라보고 있는 눈.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숨이 멎습니다.
울컥하는 무언가가 가슴을 치고 올라와 마음과 달리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널, 어떻게 해야 하니.
왜, 저 유리 외벽에다 그리고 싶어했는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그리고 싶었는지 알겠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알겠습니다.
이렇게라도 말해주고 싶었니?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니?
사랑해줘서, 고마워.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마워.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섭니다.
그림을 투과한 햇살이 알록달록한 그림자가 되어,
낡은 나무 바닥 위에 잔잔한 물결처럼 비춰집니다.
영롱하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 눈동자 속엔 또 하나의 작은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내 얼굴입니다.
#흔적_03
몸으론 이별을 해도 마음으론 이별하지 못하는 사람이잖아.
가슴 아파하면서 애써 담담히 보내주는 사람이잖아.
그 마음을 알면서 이렇게 떠나는 거니까 미워하지 않아 줬으면 해.
그리고 아파하지 마.
아파하려고 하기 때문에 아파지는 거니까.
아픈 거,
이젠 그거 하지 마.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기억처럼,
이제는 다 잊고 살아.
그래도 우리.
제법 괜찮은 이별이지?
안녕…… 또 다른 나.
스토리디렉터 감성현의 신작 | <19 씩씩하게 아픈 열아홉>
육체적 고통을 통한 정신적 성장을 다룬 이야기.
"어른도 아니도 아닌, 열아홉.
달리기를 좋아하던 난,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다."
기억할게.
내 첫 기억.
내 기억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