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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16. 2021

멈춰! 빠라!

낯선 설렘: 필리핀

#동남아 #아세안 #필리핀 #마닐라 #지프니 #대중교통




지프니를 타기로 했다. 

지프니는 좀도둑이 많다는 말 때문에 현지인도 주의를 한다고 했다. 

특히 밤이 되면 잘 앉아있던 옆 사람이 강도로 돌변해 옆구리에 칼을 들이대며 귀중품을 요구한다고 했다.

또는, 교통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가 뛰어 들어와(지프니는 문이 없다) 

귀중품을 낚아채간다는 말도 있었다. 

그 바람에 귀걸이를 걸고 있던 귓불이 찢어지고, 

목걸이를 걸고 있던 목에 날카로운 상처가 생겼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지프니를 탈 땐,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지 말라는 조언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물론 그런 위험은 지프니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스스로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라, 

지프니도 주의만 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지프니는 버스와 달라서 숫자가 아닌 글자로 노선이 적혀있다.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은 쉽게 노선을 구분하지 못한다. 

재미있는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지프니는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정류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는데 

이를 두고 불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필리핀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움(?)은 엿볼 수 있었다. ㅡ..ㅡ

말이 좋아 여유로움이지 같이 있으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지프니는 속도도 느리다. 전혀 빠르지가 않았다. 

교통체증의 주범이라고 불릴 만큼 거북이 같은 속도였다. 


게다가 창문과 뒷문이 없는 탓에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비라도 내리면 영락없이 비를 맞아야 했다. 

간혹 신호에 지프니가 멈춰 서면 지프니 꽁지에 사람들이 매달리며 무임승차를 하기도 했다. 

운전사는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듯했다. 

위험천만하게도 꽁지에 매달린 사람들은 자신이 내려야 하는 목적지가 다가오면 훌쩍 뛰어내리곤 했는데,

스턴트맨이 따로 없다. 


이럼에도 지프니는 필리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타보고 싶어 하는 명물 중 하나다. 

이것만으로도 지프니가 주는 수많은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전달!”

엘리사가 10페소를 꺼내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에게 건넸다. 

지프니의 좌석은 지하철처럼 양쪽으로 길게 의자가 놓여있는데 

지프니 안은 좁고 낮은 공간이라 한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내릴 때 말고는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따라서 요금은 옆 사람에게 전달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전사에게까지 전달된다. 

운전사 역시 거스름 돈을 동일한 방법으로 전달한다.

 

“다 왔어. 내리자.”

엘리사가 지프니 천장을 손으로 두들겼다. 

벨이 없어서 세워 달라는 신호를 이렇게 수동으로 했다. 

 

하지만 운전사는 듣지 못했는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당황해하는 엘리사를 보며 나도 서둘러 천장을 두들기려는데, 

지프니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빠라’라고 외쳐 주었다. 


빠라! 멈춰!


정이 느껴진다. 

우리나라 시골에 가면 느낄 수 있는 따뜻함. 

이럴 땐 필리핀 사람들이 참으로 순박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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