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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16. 2021

옛 도시여행자

낯선 설렘: 필리핀

#동남아 #아세안 #필리핀 #마닐라 #옛도시 #구시가지 #도시여행자 #인트라무로스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역사를 한 번쯤 살펴보는 것이 ‘여행의 정석’ 일지 몰라도 

난 나의 소중한 시간을 과거 속에서 헤매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싫은 건 싫은 거다. 

ㅡ..ㅡ


하지만, 이런 나도 가능하면 가보는 곳이 있는데, 

바로 구시가지. 옛 도시다. 


원래 도시를 좋아한다. 

여행을 하더라도 대자연 속보다는 가급적 도시로의 여행을 좋아한다. 

원래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지내다 돌아오는 여행.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다. 


“그래도 박물관 하나쯤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마닐라 여행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 

엘리사는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든 모양에 이렇게 말하지만, 나의 대답은 ‘NO’였다. 

하지만 박물관에 꼭 가보고 싶다는 엘리사의 의지 또한 확고했다. 


우리는 합의점을 찾기로 했다. 

“좋아. 박물관은 싫지만 인트라무로스는 좋아.”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인트라무로스’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이국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어 신선할 것 같았다.

 

규모가 하도 커서 그 안에 들어가도 인트라무로스에 들어와 있는지, 

그냥 시내 한복판에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 안에 있는 대학만도 서너 개가 훨씬 넘는다고 하니,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엘리사가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스페인이 점령을 하고도 결국 스스로가 성벽을 쌓고 그 안에 갇혀버린 꼴이잖아요.”

“그거야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겠지.”

“적이 누군데? 외부의 적? 아니면 나라를 되찾으려 하는 내부의 적? 적이라고 말하기도 우습지만.”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했다. 


침입을 막기 위해 창마다 두꺼운 창살을 설치하는 현대의 주거공간과 다를 바 없었다. 

안전의 이유로 결국 감옥으로 직접 들어가는 모습. 

그 옛날 스페인은 똑같은 짓을 했던 것은 아닐까. 


왜 그랬을까? 

그렇게 불안해하면서도 왜 남의 나라를 침략한 걸까?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순 없는 것일까?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마닐라 대성당’에 도착해서는, 

모든 건 신의 뜻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우리 여기에 좀 앉아 있다 가자.”

나란히 앉아 아시아 최대 크기라는 파이프오르간을 바라봤다. 

처음엔 하도 커서 파이프오르간 인지도 몰랐다가, 

엘리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파이프오르간인지 깨달았고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마닐라 대성당을 나오니 독특한 복장을 한 마부가 다가왔다. 

진짜 말이 끄는 마차인 칼레사를 타고 인트라무로스를 한 바퀴 돌아보라고 했다. 

인트라무로스와 같은 관광지(?)에선 가격 흥정은 필수다. 


우리에게 다가온 마부는 인트라무로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데 

한 사람당 100페소를 달라며 그나마 양심적인 제안을 해왔다. 

100 페소면 적당하다고 생각됐다. 

물론 그 반 가격에 이용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흥정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남는 돈으로 무더위 속에서 묵묵히 인트라무로스를 달리는 말한테 각설탕이라도 사주길 바랬다.

 

말이 뛸 때마다 위아래로 흔들거리는 느낌이 경쾌했다. 

바람은 시원했고,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을 눈으로 담으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만 같았다. 

대로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잊고 있었다.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고,


엘리사는 곧 마닐라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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