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 일본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女_과거: 서울, 이태원
하고 싶어?
하고 나면 뭐가 남는데?
뼛속까지 밀려드는 피곤함.
가슴속까지 시려오는 공허함.
알잖아.
그런데도 하고 싶어?
좋아, 그럼 대답 잘해.
지금 앞에서 모두 벗을 수도 있고,
두 번 다시 널 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깐.
나라서 하고 싶은 거야?
하고 싶어 날 찾은 거야?
女_과거: 서울, 이태원
그 남자가 첫사랑은 아니었어.
별 볼 일 없는 남자였기에 숨길 이유도 없었지.
너를 만나는 동안,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것도 아니고,
너를 만나기 전, 다른 누군가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이,
너를 그토록 화나게 할 줄은 몰랐어.
화로 인해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추며
여유 넘치다는 표정으로 비꼬듯 말했지.
너도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고,
그것도 첫 경험을 한 여자라고 말이야.
그런데, 모르겠더라.
나도 그 남자처럼 화를 냈어야 했던 걸까?
왜 화를 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데도.
“응, 그렇구나.”
그게 나의 대답이었어.
상관없었거든.
내가 너의 첫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 따윈.
너는 당황했어.
한 동안 멍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못 했지.
그러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멋대로 단정 지어버렸어.
그렇게 끝.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후론 나의 과거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아.
차라리, 거짓말을 하라는 남자에게 말해주고 싶어.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아.
차라리.
男_현재: 동경, 롯폰기
그거 알아?
하늘도 나라마다 다 다르다는 걸.
특히, 아프리카 하늘은 전혀 다르데.
어떻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직접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데.
그래서,
가 보려고.
아프리카.
동경의 하늘을 보면서,
언젠가 내게 했던 당신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지금,
넓은 아프리카의 초원을 자유롭게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아프리카의 하늘을 마음껏 만끽하며.
그래, 이제 당신은 자유니까.
男_현재: 동경, 롯폰기
당신은 매 순간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하늘을 좋아했다.
어쩌면 당신은 하늘을 닮아있었다.
아니, 하늘이 당신을 닮아있었는지도 모른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서 일을 벌이는 당신을 난 좋아했다.
언젠가 비가 내리던 날에
작업실에 놓여있던 유리로 된 테이블을 밖으로 끌고 나가
그 아래에 머리만 넣은 채 누운 당신은
내게 손짓하며 옆에 누우라 했다.
함께 누워서 유리에 떨어지는 비 사이로 바라본 하늘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늘이었다.
비 오는 날에 하늘을 바라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마에 떨어질 듯한 짜릿함과 그러는 사이,
내게 떨어지는 당신의 입술에서는
달큼한 향이 났다.
당신을 잊으려 이 여행을 택한 건 아니다.
어떻게 해도 이렇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당신의 기억에서 어떻게든 무뎌지고 싶을 뿐.
하지만 그러기엔,
당신의 향은 잔인할 정도로 짙다.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