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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Sep 10. 2021

미안합니다, 쓰미마셍

낯선 설렘: 일본

양동근의 랩 중, 

스미마생 영계와 이마생 아리마생 와까리마생요~

라는 이상한(?) 가사의 곡, <흔들어>(2010.11.09 발매)가 있다. 


가사 중에 '씨박새까'라는 찰진 욕이 들어가서, 

당시 , 욕을 하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일본 하면 또, 머리를 조아리며 하는 "쓰미마셍(すみません)"이 떠오른다.

일본에 살고 있는, 옛 직장의 선배 형은, 

일본인이 입버릇처럼 하는 쓰미마셍을 굳이 번역해서 듣지 말고, 

그냥 "어이쿠" 정도의 추임새 정도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해줬다. 


그만큼, 

일본 여행을 하면서, 마주치던 일본인들이

툭 치면 툭 하고 튀어나오는 말이 쓰미마셍이었다. 


그날은 들고 있는 짐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중심을 잃고 실수로 '바닥에 내려놓은 누군가의 가방'을 사정없이 밟고 말았다. 

그런데, 그 가방 주인은 화들짝 놀라며 오히려 나에게 쓰미마셍이라고 했다. 


가방을 거기에 내려놓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의미일까?

물론 그럴리는 없었다. 

얼굴 표정에서, 미안함보다는 당혹감이 더 보였으니까.


그래도, 

다짜고짜 짜증을 내고, (혼잣말이라도) 욕을 퍼붓는 상황보다는 괜찮아서, 

실수를 해놓고 많이 민망하거나, 죄스럽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고의가 아니고 실수 아닌가. (다행히 망가진 것도 없고)


한 두 마디, 그 나라의 언어를 외웠다고, 

낯선 나라에 방문한 이방인으로써의 예의를 다 갖췄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한 탓에, 

(영어권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에 비하면 일본에서는 대화가 좀 통했던 편이다. 


그 덕에 종종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묻곤 했었는데, 

그때도 첫마디가 "쓰미마셍"이었다. 

실례합니다(しつれいします。) 보다는 쓰미마셍(미안합니다)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의 "저기요.."정도로 사용되지만, 분명, '저기요'가 아닌 '미안합니다'이다.

그러니까, '저기요'라고 말을 붙이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말을 붙인다는 의미인 게 아닐까?


그나마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 나에게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건 익숙한데,

백발의 노인까지도 나에게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건 왠지 당황스럽고 황송하기까지 하다.


전철에서 옆자리에 앉으시려고 하기에 살짝 옆으로 공간을 만들어 드리면, 

어김없이 미안합니다라고 한다.


그리고는 신문을 읽으시는데, 

그 신문도 에이포 사이즈로 접어서 절대로 나에게 닿지 않도록 하고,

간혹 닿기라도 하면 바로 '미안합니다'라고 한다.


이쯤 되면, 정말 미안한 건지, 

그냥 입버릇일 뿐이지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미안합니다'는, '미안합니다'다.

 

뭐랄까.... 

우리나라에서 마주쳤던 노인들은, 

원래부터 자기 자리인 양 손으로 툭툭 치면서 기분 상하게 밀거나,

분명 나에게 닿은 걸 알면서도 시치미 떼는 분들만 만나서 그런가.


일본에서 만난 분들의 

'미안합니다'라는 말에서 고풍스러운 품격이 느껴져서 

괜스레 내가 미안해진다.

물론,

모든 한국의 어르신들이 그런 것도 아니고, 

모든 일본의 노인들이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아무튼 또 다른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길에서 내가 만났던 일본인들도 내가 길을 물어보면,

거의 다 특유의 친절함으로 어떻게든 길을 알려주려고 했다. 


비록,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쓰미마셍' 이후로 더는 일본어로 대화는 어렵지만 말이다. 


그들은  일본어와 아는 영어를 마구 섞어서, 

얼굴까지 빨개지면서까지 손짓 발짓으로 알려준다. 

마치, 나에게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지 않으면 3대가 저주받기라도 하는 듯, 

매우 진중하게 친절을 베푸는 그들을 보면서,

아, 이래서 일본인이 친절하다는 말이 생긴 모양이구나 싶다.  


아무튼, 그런 그들의 모습이 고마워서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된다. 

길 한 번 물을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세 번 네 번을 더 많이 하게 만드는 친절함. 


누구는 그 친절함이 가식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본인의 친절함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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