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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04. 2021

친절이 낯선 나

낯선 설렘: 일본

지금은 구글맵이 너무 잘되어 있어서, 

난생처음 가보는 길 위에 있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내 집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집까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지, 

몇 시간이나 걸리는지 등등, 잘 알 수 있다. 


무척이나 여행하기 편리한 세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빈틈없이 미션을 클리어하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서울동경>을 기획하고, 

도쿄를 돌아다닐 당시엔, 구글맵이 없었다. 

여행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지도가 전부였지만, 

눈뜨면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건물들과 상점들인지라, 

여행 가이드북은 늘 최신호를 준비해도 가끔 길을 잃게 되기 일수였다. 


촉으로 어떻게든 길을 다시 찾는 사람도 있지만, 

내 경우엔 그때마다 고민 없이 눈에 띄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물론, 그렇게 물어본 사람 중 

대략 70%는 영어로 물어보는 내게 아주 친절하게 일.본.어로 설명해줘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설명하는 정도야 손짓 발짓 보면서 대충은 알아듣기에 어려움은 그다지 없다. 

전혀 모르는 어려운 지식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지금 내가 가려는 곳이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답변 정도라서, 거의 알아듣는다. 


고마움에 내가 일본어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하면, 

순간 나에게 길을 알려주던 (거의) 모든 일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살짝 웃으며 날 살핀다. 

뭐랄까, 같은 일본인이 영어로 장난질을 한다고 생각하는 눈빛이랄까?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 아니야?" 할 때, 그 눈빛이다.

 

아무래도, 

나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는 네이티브의 발음인가 보다.


아무튼, 

나에게 친절히 길을 알려준 그 사람들도 사실은 정확하게 길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잘못된 길을 알려주기 일쑤 거나 (물론 고의는 아니다)

서로 생각하는 거리감이 달라서, 10분 정도?라는 의미가 나에게는 30분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에는 10분이 지나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으니, 

내가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되면서 2차로 길을 잃게 된다.


그 오사카에서 관광을 왔다는 그 커플도 그랬다. 

도쿄의 길을 오사카 사람에게 물어본 게 애당초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내가 오사카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사카 사투리를 아는 것도 아니니, 

일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도쿄의 골목골목 지리 정도는 다 알 거라고 생각한 게 진짜 잘못이었다. 


그래도 그 커플은 무려 500m 정도나 지나쳐 갔는데도, 

저 멀리서 땀까지 뻘뻘 흘리며 날 따라와, 자신들이 길을 잘못 알려줬다고 다시 알려줬다. 

그러니까, 나에게 길을 알려주고 나서도, 자신들이 정말 제대로 알려줬는지 확인을 해봤고, 

그러는 사이에 내가 500m나 가버렸는데도,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나에게 달려온 것이다. 

  

돌아서서 5미터 정도였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 소리쳐서 날 부를 수 있는 거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겠다. 

그런데, 무려 500m 라니. 


그것도,  500m가 가버린 탓에,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쫓아왔다는 게 놀라웠다.


뭘까?

책임감?

친절함?

자신들도 여행자이기에 느끼는 동질감?

 

뭐든,

그들의 친절이 고마웠다. 

수십 번,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가 저절로 나왔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기념사진도 찍자고 했고, 

악수까지 나눴지만, 


어라....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다.

결국, 난 그들을 다시 만날 생각이 없었던 거구나.


작은 인연이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난 친절에 그리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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