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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07. 2021

여행을 하면 꼭 생기는 자투리 시간

낯선 설렘: 중국

#중국 #상해 #상하이 




C는 지난번 공항에서의 엇갈림이 못내 미안했는지, 

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굳이 땡땡이를 치고 나오겠다며 평일 오후 4시에 약속을 잡았다. 

회사란 게 어딜 가도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텐데 싶어서 내가 다 불안했다. 

하지만 C는 너무나 자신 있게 괜찮다고 하기에, 그냥 그러자고 했다. 


나야 뭐 좋지.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도 나타나지 않던 C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도 뭐라 할 말이 없다면서, 정말 미안한데 약속 시간을 두 시간 정도 미루자고 한다. 


이쯤 되면, 상해 친구긴 해도 만나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갑자기 찾아온 한국인 친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천천히 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두 시간의 자투리 시간.


여행을 하면서 이런 자투리 시간은 의외로 많이 생긴다. 

아니, 꼭 생긴다. 

대부분 교통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러하고, 

지금처럼 약속이 어긋나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늘 미리 책을 준비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다면 스마트폰을 보겠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의외로 인터넷이 연결 안 되는 곳이 참 많다. 


이럴 땐 책만큼 좋은 게 없다. 


갑작스럽게 생기는 자투리 시간은 묘한 여유로움을 준다. 

나는 이런 자투리 시간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성격인데, 

시간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멍 때리고 있기에는, 나 자신이 세상에 필요치 않은 잉여인간이 된 듯해서 금세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이날은 다행히 상하이박물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터라, 

혼자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석상들에 시선이 멈췄다. 

왠지 마음이 끌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얼마나 그곳에 멈춰 서 있었던 걸까? 

어느덧 멀리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C가 보였다.

 

“늦어서 미안, 뭐 하고 있었어?”

“저 석상이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보고 있었어. 이거 무슨 동물이야?”

“사자야. 건물 입구에 주로 세우는데 화재를 막아준다고 믿어.”

“한국의 해태랑 비슷한 건가?”

“관심이 가는 모양이네. 그럼 여기서 문제! 지금 보는 저 돌사자는 암컷이게 수컷이게?”

“암수도 구분할 수 있어?”

“응. 암컷의 발 밑엔 새끼 사자가 한 마리가 있어. 후손의 창성을 바라는 의미야.”

“수컷은?”

“수컷의 발 밑엔 공이 있어. 공은 권력을 의미하고.”


C의 설명을 듣고 난 후부터는, 

여행 중에 만나는 돌사자들을 유심히 보게 됐는데, 

대부분의 경우 입구 오른쪽엔 수컷이, 왼쪽엔 암컷이 세워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C의 설명이 없었다면, 

중국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건물 입구에 세워져 있는 사자상을 

그냥 중국스러운 조형물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화재를 막기 위한 바람을 담고 있다니.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알게 되는 정보들이 즐겁다. 

수시로 만나게 되는 사자상을 보면, 이상하게 반가웠고, 가벼운 인사까지도 나누게 된다. 

 

“방금 전에 저쪽에서 너희 사촌을 만났는데 안부 전해 달라더라.”

“집 잘 지키고 있지? 불나지 않게 잘해.”


누가 보면 이상하게 보겠지만, 

그런 대화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주는 외로움에서 잠시 벗어나는 좋은 활력소가 된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가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기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돌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고, 

그것은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되기도 했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도 

그것을 제대로 알게 되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되어 돌아온다. 

정말 여행은, 

아는 만큼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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