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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Dec 27. 2021

패키지도 여행이다_저 좀 데리고 다니실래요?

낯선 설렘: 터키

어딜 가든 눈에 띄는 사람은 있다. 

미모가 뛰어나서 일수도 있고, 배어있는 매너가 좋아서 일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렇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자꾸 들어오는 주관적인 이유들도 있다. 


인천공항에서, 패키지 일행이 모일 때부터 눈에 들어오던 2명이 있었다. 

나이차가 있어 보였지만, 서로 말을 편하게 주고받길래, 친한 선후배나 회사 동료 정도로 생각했다.  

띄엄띄엄 귀동냥도 하고, 오가면서 말도 섞다 보니, 둘은 자매였다.

외모가 전혀 달라서, 자매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말이다. 

언니는 나보다 누나였고, 동생은 나보다 동생이었다. 


지켜보니, 여행 좀 많이 다녀본 것 같고, 

들떠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난 정말 리플리쉬하러 가는 거야' 같은 노련한 여유도 느껴졌다. 

같이 어울리면 재미있겠다 싶었지만, 


대인관계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여럿이 있다가도, 금세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 

간간히 인사에 가까운 대화 정도만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도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풀고 있는데, 

환기 좀 시키려고 열어놓은 문 밖에서 자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갑 챙겼어?'

'얼른 나와. 왜 이렇게 늦어?'

'아, 그럼 먼저 나가 있던가. 왜 그렇게 급해?'

'여기 터키 시골이야. 상점들 금방 문 받는다고.'   


이윽고 자매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짐만 풀면, 나갈 생각인데.... 

혼자서 골목골목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와서 잘 생각을 하니, 

괜스레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차피 여행기간 내내 붙어 다닐 텐데, 

게다가 좀 어울려 봤는데 꽤나 죽이 잘 맞고 좋은 사람들이라면, 

기간도 정해져 있는데 하루라도 더 빨리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말이라도 걸어보자. 


서둘러 복도로 나가서 둘을 불러 세웠다. 

이미 둘도 내가 혼자 여행을 왔다는 것과 회사원이라는 것, 그리고 휴가차 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가시게요?"

"네, 좀 돌아다녀보려고요. 가이드북 보니까, 동네가 이쁘다고 해서요."

"저기...."

"네?"

"그럼.... 저 좀 데리고 다니실래요?"

".....?!"


자매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핏줄이라 그런가, 말로 하지 않아도 대화가 되는 듯했다. 

아마도. 


'어떻게 할래?'

'알아서 해.'

'내가 왜?'

'난 같이 다녀도 상관없어.'

'오늘 저녁만 일단 놀아볼까?'


이런 대화가 아니었을까?

둘은 이내, 함께 다니자고 했다. 


서둘러 풀고 있던 짐을 그대로 둔 채, 

대충 카메라만 챙겨 들고 둘을 따라 사프란볼루 동네 구경에 나섰다. 

   

사프란볼루는 꽤나 아기자기했다. 

정겹기도 했고, 푸근하기도 했다. 

한 달 살기를 해도 좋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동네 아이들은 우리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미소가 이국적인 풍경과 어울려져서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지금 내 눈에 들어온 모습을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 


운이 좋았는지, 

동네에 결혼식이 있었다. 

피로연 자리를 엿볼 수 있었다.  


사랑이 넘치는 날답게, 

모두가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낯선 이방인들에게도 흔쾌히 먹을 것을 나눠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여행지에서, 

늘 관찰자의 시점에서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데, 

잠시나마 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건 행운이었다. 


아마도, 

함께 다니고 있는 자매들이,

여행 운이 좋아서가 아닐까 싶었다. 

꽤나 여행을 많이 다녀봤던데, 

촉이 오나보다.


관광지는 관광지라서, 

상점들에서는 다양한 기념품을 팔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냉장고 자석이 가장 인기 있었고, 

패키지 일행 중 아저씨들은 회사에 돌린다며 싸구려 볼펜을 다량으로 샀다.  


난 자루모양의 방향제를 샀다. 

라벤더가 들어있는지, 향기가 꽤나 짙었다. 

함께 다녀주는 고마움으로, 자매에게도 한 개씩 선물로 주었다. 


고작해야 몇 푼 안 되는 기념품인데, 

선물은 선물이라면서, 

자매는 마지막까지 의리 있게 날 데리고 술집으로 향했다. 


"술 하죠?"

"그럼요."

"아까 봤던 술집이 있어요. 이 동네에는 그 집 말고는 없는 모양이더라고요.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한 잔 할 건데, 같이 가죠."

"아.... 그런데, 제가.... 지금 터키 돈이 별로 없어서요. 달러도.... ATM기에서 현금을 찾아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 올라타고, 여기에 도착하니까 벌써 해가 떨어지고...."

"오늘은 우리가 살게요."

"아.... 아니요. 그럴 순 없죠. 그냥.... 제가 마신 건 내일 드릴게요."

"뭐, 좋으실 대로."


그렇게 우리는 함께 술을 마셨다. 

자매는 술을 무척 좋아했다. 

잘 마시는 건 아니었지만, 술자리를 꽤나 좋아했다. 

특히 여행지에서 갖는 술자리의 로맨스를 아는 듯했다. 


그날 밤. 

우리는 말을 놓았고, 

둘은 내가 작가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깊지는 않지만, 많은 대화를 나눴고, 

우리는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술을 마시는 동안, 

패키지 일행들 중 몇몇이 합석을 하고, 

마지막으로 가이드가 한번 들어와 상황을 살펴보고는, 

내일 아침 모임 시간을 한 번 더 알려주고 갔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분명 그날, 문을 닫을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우리를 기다려줬다. 


한국인들의 주량을 모르고서.

곧 끝나겠지... 하면서. 


우리는 결국, 

가게 주인이 지쳐서 가봐야겠다며, 

농담으로 열쇠를 우리에게 넘긴다고 할 때까지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놀라워했다. 

단 한 명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당들.


느낌이 왔다. 

앞으로 매일 밤 우리는 술을 마실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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