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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Dec 28. 2021

패키지도 여행이다_가이드가 가이드했다

낯선 설렘: 터키

터키. 

무척이나 땅이 넓다. 그래서 이동이 꽤 길다. 

3~4시간은 기본이다.

5~6시간 이동하는 경우도 있고, 

이래저래 따져보면, 반나절 동안 이동만 한 날도 있었다. 

 

그러니까, 터키 패키지여행에서는, 

이동하느라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나 많다. 


그렇다고 이 시간을 아까워하느냐?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이 버스에서의 시간을 알뜰하게 이용하기 위해 진화했다. 


즉, 

밤에 안 자고,

버스에서 자기로 했다. 


서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한 일행끼리, 

밤마다 

누구 방으로 와라, 

각자 마실 술은 알아서 챙겨라, 

안주 있는 사람 우대한다....

등등 다양한 미션을 안고,

서로의 방에 모여서 수다와 게임을 즐기며 밤을 새웠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깔깔대다 보면 해가 떠올랐다. 


특히, 주당끼리 뭉치는 날에는, 

다들 꼼쳐두었던 술을 죄다 꺼내와도 모자랐다.

어느 정도 서로의 주량을 알게 되면서는, 

시작 전에 모인 술의 양을 보고, 미리 술을 사러 나갔다 오기도 했다. 

(터키에서는 술을 사기도 쉽지 않지만, 10시 이후에 산다는 건 특히나 더 힘들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우리는,

자라는 밤에는 안 자고, 

버스에 올라타면 숙취에 비틀비틀 잠들었고, 

개운하게 한숨 자면,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고는 했다. 


물론, 일행의 모두가 이처럼 지낸 건 아니다. 

가족끼리 온 일행은 늘 건전하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고, 

20대 어린 친구들은 또 자기만의 여행을 즐겼다. 


늘 새벽까지 노는 건, 

주로 사회생활 좀 해본 30대가 주가 되었다.

회식문화를 제대로 배운 직장인들이랄까. 


아무튼, 버스에서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깰 때마다 가이드가 열심히 마이크를 잡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총 3명이다. 

1명은 한국에서부터 우리를 인솔한 스케줄 관리를 맡고 있었고, 

1명은 현지인이다. 현지인 없이 가이드를 하는 건 터키에서는 불법이라고 한다. 

마지막 1명이 터키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해준 가이드였다.

구분을 하자면, 인솔 가이드. 현지 가이드, 해설 가이드....라고 할까? 

그리고 버스 운전사, 그리고 운전사의 조수.... 많다면 많은 숫자긴 하다.  


해설가이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터키에 대해서는 한 달 내내 이야기해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갈 곳은 터키의 옛 수도인....'

'터키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터키는 서로....'

'제가 처음 터키에 왔을 때....'

'터키 현지인들은 말이죠....'

'터키에서 물건을 살 때,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터키의 종교는....'

'이번에 터키에 유명한 배우가....'

  

생각해보니, 

가이드도 참 대단한 직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에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그건 터기에서 만난 가이드라서 그럴지도)

웬만한 역사 선생, 아니 역사학자만큼 유식했다. 


터키즈에 출연하면, 

상금 100만 원은 거뜬히 딸 것 같은 지식이었다. 


처음엔, 

숙취에 졸리고, 

또 재미없는 이야기라 섣불리 판단해서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보면서 잠들고는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가이드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그렇게 잠들면,

어김없이 꿈속에서 터키의 역사 속을 휘졌고 다녔다. 

꿈속마저도 터키 여행의 일부로 만들었다고 할까?


덜컹 거리는 버스 안에서 살짝 잠이 깼을 때, 

가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가이드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가이드가 아니라 마법사는 아니겠지? 

아니.... 마법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드림메이커이긴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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